삼성그룹이 한 번도 못해낸 '세계 퍼스트 무버'의 업적을 일궈낸 '샐러리맨 신화'가 탄생했다. '바이오시밀러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서정진(59) 셀트리온 회장이 주인공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의 복제약을 뜻한다. 하지만 화학 합성 의약품의 복제약과는 달리 바이오 의약품의 복제품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똑같은 화학 성분의 약이라기보다는, 생체 물질로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등한 수준을 인정받는 비슷한 약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2020 세계 10대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 vs. 삼성?)
우리 시각으로 6일 새벽 셀트리온이 만든 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전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미국에 진출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램시마의 미국 내 판매를 승인한 것이다.
램시마는 '세계 최초의 제2세대 항체 바이오시밀러'다. 오리지널 바이오 약품으로는 세 종류가 이미 나와 있다. 램시마는 그 가운데 시장 점유율 3위인 존슨앤드존슨의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다.
램시마는 류마티스관절염, 강직성척추염, 성인궤양성대장염, 소아 및 성인크론병, 건선, 건선성관절염 등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로 레미케이드의 적응증과 똑같은 수준으로 판매 허가를 획득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해 3분기부터 미국을 포함해 총 71개 국가에서 램시마가 전 세계에 판매될 전망이다. 앞서 램시마는 2012년 7월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획득했으며, 2013년 8월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은 바 있다.
이 약품의 세계 시장은 약 35조 원 규모다. 미국 시장은 그중에서 20조 원을 차지한다. 휴미라(애브비), 엔브렐(암젠) 그리고 레미케이드가 분점해온 이 시장에서 램시마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단숨에 10%의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램시마 하나만으로 연간 3조50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대박 상품이 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셀트리온은 이미 지난해 유럽 허가를 신청한 비호지킨스 림프종 치료제 트룩시마, 연내 허가 절차에 돌입할 예정인 유방암 치료제 허쥬마를 램시마를 이을 '퍼스트 무버 바이오시밀러' 후속작들로 대기시켜 놓고 있다.
또 6일 셀트리온 김형기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2018년 허가 신청을 목표로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 CT-P17,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의 바이오시밀러 CT-P16을 후속 제품으로 개발하고 있고, 항체 독감 치료제 CT-P27과 유방암 치료용 항체 ADC(Antibody-Drug Conjugate) CT-P26 등을 '바이오 신약' 군으로 개발하여 글로벌 톱 10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해 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현재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2019년이면 300조 원이 넘는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셀트리온이 '퍼스트 무버' 후속작들을 계속 터트린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연간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의 투자 외면과 흔들기 견뎌내며, 창업 14년만에 재벌 등극
셀트리온 램시마의 FDA 판매 승인 소식을 계기로 "삼성도 못한 퍼스트 무버 도전에 성공한" 서정진 회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샐러리맨 신화의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재벌이 밀어주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주지 않는 한국의 풍토에서 샐러리맨 출신이 이뤄냈다고는 믿기 힘든 성과를 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한 서정진 회장은 당시만 해도 '바이오 의약품'의 세계에 문외한이었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삼성전기, 한국생산성본부, 대우자동차를 거쳐, 외환 위기로 대우그룹이 붕괴되면서 실업자가 됐다. 바이오 산업과는 거리가 먼 경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2005년 램시마의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 기간 만료가 임박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램시마 개발에 뛰어들었다. 바이오시밀러는 복제약이지만 선점 효과가 중요한 시장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램시마 개발 착수 7년만인 2012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아냈지만, 본격적인 시련이 이때부터 닥쳤다. 바이오 의약품이라는 전문 분야 제품을 중소기업이 만들어봤자 세계 시장을 넘볼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과, 셀트리온을 헐값에 인수해 이 기술을 날로 먹으려는 대기업들의 유혹과 압박이 거셌다.
주식 시장에는 셀트리온이 곧 망할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대대적인 공매도 공세가 가해졌다. 공매도로 이익을 보려는 세력에 지친 서 회장은 "외국에 지분 다 팔고 경영권을 포기하겠다"며 공개적으로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과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는 주변의 흔들기를 버텨냈다. 오히려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해외에서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또 코스닥 시장에서는 시가 총액 13조 원이 넘는 1위 기업으로 군림하던 셀트리온은 지난 3일 흔히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서 회장은 돌연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서 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셀트리온이 성장 단계에 들어서면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선언했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그의 행보는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기업을 사유화한 삼성그룹의 오너 일가와 사뭇 다르다. 삼성이 좀처럼 '퍼스트 무버'가 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차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시밀러 분야는 삼성그룹도 스마트폰 시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차세대 사업으로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 역시 삼성은 '퍼스트 무버'가 되지 못했다.
뒤늦게 삼성그룹은 바이오 의약품 개발을 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해 셀트리온을 추격하고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무게중심은 바이오 의약품의 위탁 생산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그것이다. 삼성이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퍼스트 무버'로 성과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면, 세계적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한 셀트리온으로부터 바이오시밀러 생산 주문을 위탁받는 하청 업체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셀트리온 측은 삼성도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어 세계 시장을 함께 공략하는 든든한 파트너가 되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 선점이 중요한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삼성이 뒤늦게 움직여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려를 시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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