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노점(百年老店). 유구한 역사를 가진 상점이나 음식점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정당이나 조직에 대해 사용하기도 하는 중국식 표현이다. 비록 조그만 상점이라도 오랜 시간 명맥을 유지했다면 그 가치를 평가하고 인정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어법이다. 최근에는 중국 공산당에도 이러한 호칭을 붙인다. 중국공산당이 5년 뒤면 창당 100주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조 백 년 정당은 따로 있다. 공산당보다도 20년이나 더 긴 역사를 자랑하는 대만(타이완)의 국민당(國民黨)이다.
국민당은 동맹회(同盟會 : 국민당 전신)가 창당한 1895년을 창당의 해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당의 현재 나이는 120살이 넘는다. 1921년 창당된 공산당보다 26년 더 먼저 창당되었고 1949년까지는 중국 대륙을 대표하는 정당이었다. 공산당에 의해 대만으로 밀려나 일당 체제를 유지하며 대만을 통치했던 정당이다.
'훅 가버린' 대만의 백 년 정당, 무엇이 문제였나?
이 정당이 최근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다. 올해 1월에 있었던 총통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를 했기 때문이다. 민주 사회의 선거에서 정권 교체는 당연한 일이다. 정당이 선거에서 졌다고 존폐의 위기라고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장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당은 2000년 정권을 잃었다가 2008년 재집권을 했기 때문에 첫 패배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00년의 패배와는 상황이 다르다. 2000년에는 민주화의 열기와 함께 국민당의 후보에 비하여 민진당(民進黨)의 천수이볜(陳水扁) 당시 후보의 개인적 지지도가 훨씬 앞섰고 국민당 진영이 분열되었기 때문에 민진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 국회 선거에서는 여전히 국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지방 선거에서도 민진당이 압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진당이 정권과 국회를 모두 장악하는 전면적인 집권을 하게 됐다. 2014년에 열린 지방 선거에서의 압승까지 포함하면 최근 3~4년간 대만의 정치 지형은 완전히 뒤바뀌어 국민당은 완전히 열세에 처해 있고, 존립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경제적 실패다. 세계 어떤 정당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 책임은 당연히 집권당이 지게 된다. 대만도 2008년에 국민당이 재집권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민진당 집권 시절의 경제 상황이 지속적으로 좋지 않았고, 2004년도의 1인당 GDP가 한국에 역전 당하게 된 것도 그 이유다.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당시 후보는 이점을 공략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고 이것이 선거 승리의 주요인이 됐다. 2012년 선거에서는 ECFA의 효과가 2010년 잠깐 반짝이면서 10%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하여 마잉주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이후 대만의 경제는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빈부 격차 심화와 청년 실업 증가 등으로 국민당에 대한 민심은 돌아서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이유는 국민당 내부의 권력 투쟁과 모호한 노선에 있다. 두 번째 집권하자마자 차기 주자를 위한 암투와 국민당 내부의 본성인 엘리트와 외성인 엘리트 사이의 갈등 등으로 마잉주 총통은 재임 기간 내내 레임덕에 가까운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마잉주 총통의 정치력 부족도 이런 상황을 부추겼다.
그 사이 대만의 정치적 분위기는 민주화 이후부터 지속된 탈중국화 혹은 대만화가 가속되고 있었고, 국민당은 그러한 분위기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채, 내부 권력 투쟁에만 집중했다. 게다가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상황, 빈부 격차 심화, 높아지는 실업률, 세대 간 갈등 등이 '해바라기(太陽花) 학생 운동'으로 표출되었고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국민당은 결국 이후의 선거에서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총통 선거에서는 중간에 후보를 바꾸는 해프닝을 겪으면서 안간힘을 썼지만 참패하게 되었다.
세 번째, 세대 교체의 실패이다. 국민당은 마잉주 총통 이후 정치적 스타를 키워내지 못했다. 또한 입법원(국회) 선거에서도 진부한 인물들이 재선에 도전하여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못했다. 사실 이전에 있었던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롄잔(連戰) 명예주석의 아들 롄성원(連勝文)을 내세워 나름 세대 교체를 꾀하였으나 금수저 논란만 가져오면서 그마저도 실패했다. 전 국민당 원로들의 2세들이 이번 입법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손자인 장완안(蔣萬安)만이 당선된 것을 보듯, 국민당의 세대 교체는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말했듯이, 정당이 정권을 잃으면 절치부심해서 되찾아오려고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국민당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혹자는 국민당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고도 한다. 주도권을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 최초의 여성 주석, 국민당을 구할 수 있을까?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맞은 국민당은 최근 당 주석(총재)에 지난 선거에서 강제로 대선 후보 자리에서 쫓겨난 홍슈주(洪秀柱)를 선출했다. 선거의 희생양이 되었던 여성 정치인에게 국민당 재건의 중임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홍 주석에 놓여 있는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아니, 앞으로 더 험난한 여정이 예고되고 있다.
우선, 시간이 홍주석 편이 아니다. 전임 주석이자 대선 후보였던 주리룬(朱立倫)이 물러난 후의 잔여 임기를 맡은 터라 재임 기간이 길지 않아 제대로 당을 추스를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주석직에 재선될 수 있을지도 1년 반 뒤의 상황에 달려있다.
당내 분열도 홍주석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56%의 지지를 얻어 주석에 선출되었지만, 국민당 내 본토파(本土派)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들이 이반(離反)할 수 있다는 보도가 이미 여론을 달구고 있는 등 당내 분열의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세대 교체 문제도 있다. 2000년대까지는 국민당이 과거 레닌식 정당 체제 시스템에서 배출해온 인재들이 국민당을 지탱해 왔지만, 그 이후에는 그러한 시스템이 청년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민주 정당인 민주진보당에 더 호감을 갖고 있다. 새로운 시스템과 청년들을 끌어들일 만한 새로운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 국민당의 당면 과제일 것이다. 이를 통해 미래의 정치적 스타를 배출해야만 향후 선거에서 대만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위기에서 벋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거청산의 화살이 국민당을 향해 있다는 것도 큰 압박이 될 것이다. 민진당은 과거 천수이벤 시절에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국민당의 반대로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면적 집권을 하게 된 지금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하려고 벼르고 있다.
그 첫 번째 목표가 바로 국민당의 당 재산 청산이다. 과거 레닌식 정당 시절의 국민당은 사회 위에 존재하며 국가 재산과 당 재산을 혼용해 왔다. 민주 정당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당 재산에 대한 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민진당은 이 기회에 국민당이 불법으로 점유하여왔던 당 재산을 청산하려고 벼르고 있다. 물론 과거 청산이란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이기 쉽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국민당이 커다란 상처를 입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국민당이 이처럼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해야만 비로소 100년 정당의 명맥을 이어나갈 희망이 보일 것이다. 만약 그러지 못하고 새로운 비전 제시에 실패한다면 정권 재창출은 요원할 뿐만 아니라 국민당은 존폐의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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