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의 무게와 마음의 무게
7월 8일. 여행 기념품으로 청실홍실과 ‘세계평화의 종’ 모형의 책갈피, 2018평창동계올림픽 기념 배지, 한복 차림의 핸드폰 고리를 준비했다.
원주에서 예식장 폐백 일을 하는 분한테 부탁해 청실홍실 백 개를 준비했다. 청실홍실은 결혼 전 예비 신랑이 신부 집으로 예물을 보낼 때 예물함 속에 함께 넣어 보내는 건데, 내 결혼식 때는 어땠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변명하자면 추니를 처음 만나 50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청실홍실은 남색과 붉은색의 명주실을 두 뼘 길이로 엮은 실타래인데 남색은 신랑, 붉은색은 신부를 뜻하는 것으로 음양의 조화를 색으로 표현했다. 명주실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질긴 실이라서 오래오래 잘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신랑 신부의 소중한 인연과 가정의 행복을 바라는 뜻을 담고 있어 좋다.
금박의 고급스러운 ‘세계평화의 종’ 책갈피는 강원도 화천군에 부탁해서 스무 개를 얻었다. ‘세계평화의 종’은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에서 수집한 탄피들을 모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화천 평화의 댐 옆에 건립된 것이다.
한복 입은 신랑 신부의 모습을 한 핸드폰 고리도 백 개를 준비했다. 오방색의 아름다움에 외국인들이 아마 감탄할 거다. 또 한복은 넉넉한 옷이라서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상관없이 입을 수 있어 비만이 심한 서양인들에게 안성맞춤일 테지.
마지막으로 2018평창동계올림픽 기념 배지는 서른 개를 준비했다. 유럽 사람들이 한국에서 지구인들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이 열린다는 걸 잘 알고 있을까? 하여간 기념품이 짐은 되겠지만 현지에서 소중하게 쓰일 걸 생각해서 많이 가져가야겠다.
7월 12일. 가져갈 살림살이를 챙겼다. 이것저것 한군데 쌓아 보니 트럭 한 대 분량이다. 어휴! 하나하나 모두 필요한 것들이지만 다 가져갈 수 없어 과감히 골라냈다.
텐트는 부피가 가장 크지만 기본 품목 1순위다. 자전거 두 대가 쏙 들어가는 2인용 텐트다. 방 역할을 하는 ‘이너텐트’와 지붕 격인 ‘플라이’가 있고, 바닥으로부터 습기와 냉기를 막아 주는 ‘그라운드시트’, 기둥 격인 ‘폴대’를 포함해 총 무게는 3.8kg이다. 덩치는 크지만 가벼운 편이다. 그 외에 매트와 침낭, 베개도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만 가져가야 할 필수품이다.
사용하던 취사용 버너를 챙겼다. 가스는 현지에 가서 구입해야겠다. 밥그릇은 겹겹이 들어가는 플라스틱 제품을 챙겼고, 수저 한 벌과 냄비 한 개, 수세미 한 개, 그리고 세척제는 조금 덜어 담았다.
엊그제 인터넷으로 라면 스프도 서른 개를 구입했다. 입맛 잃었을 때 매콤한 스프를 끓여 휘휘 저어 마시면 좋을 듯하다. 그런데 현지 마켓에서 라면을 살 수 있을까? 포장지마다 외국어로 적혀 있을 텐데 내용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옷은 라이딩용과 외출용 각 두 벌씩만 가져가기로 했다. 석 달 후면 계절이 바뀌는데, 추워지면 현지에서 두툼한 옷 한 벌씩 사야겠다. 양말과 운동화는 가져가지 않고, 신발은 물속에 그냥 신고 들어가도 되는 아쿠아 슈즈를 아예 처음부터 신고 가기로 했다.
이동통신사에 들러 스마트폰 인터넷 무제한 이용 서비스를 신청했다. ‘원패스’라는 건데 하루 9천 원이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을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인터넷 지도를 활용해 길을 찾아야 하고, SNS로 친구들과 사진을 공유하려면 어디에서든 인터넷을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8기가 메모리 외에 32기가짜리 칩을 추가로 삽입하고, 배터리 3개를 별도로 구입했다.
더불어 신형 카메라도 구입했다. 화질은 기존 DSLR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앱을 이용해 자료를 손쉽게 스마트폰으로 옮겨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릴 수 있다. 무거운 노트북을 가져가는 부담을 덜 수 있어 다행이다. 삼각대는 부피와 무게를 감수하고 가져가기로 했다. 지나가는 이에게 사진을 부탁할 수도 있으나 일일이 그러기도 부담스럽고, 흔들림 없이 제대로 찍기 위해서다.
“화장품은 뭘 가져갈까?”
추니의 고민이다. 두툼한 화장품을 꺼냈다가는 서랍에 다시 넣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작은 샘플용 스킨과 로션, 그리고 선크림 두 개만 가져간다.
7월 15일. 자전거 가게의 도움을 얻어 평소 타던 산악자전거에 여섯 개의 가방을 걸 수 있도록 ‘가방 거치대’를 부착했다. 자전거 두 대에 열두 개의 가방이 모두 걸리니 마치 ‘화물 자전거’ 같다. 뒤따라오는 추니가 멀리 있는지, 혹은 힘겨워하는지 수시로 살피기 위해 핸들에 붙일 동그란 백미러도 구입했다.
다음은 자전거 분해다. 대형 박스 두 개를 얻어 항공기 화물칸에 실을 것과 기내로 갖고 들어갈 것을 나누어 포장했다. 화물칸에 실을 짐은 1인당 23kg을 초과하면 추가 비용이 많다고 해서 무게를 딱 맞췄다.
짐의 무게는 자전거를 포함해서 모두 80kg이다. 각자 40kg인데 자전거 무게 15kg을 빼면 실제 짐의 무게는 25kg이다. 자전거 바퀴는 운항 중에 기압 차이로 인해 터질 수 있기 때문에 공기를 모두 뺐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 출국 전날이니만큼 저녁에는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엄니한테는 그저 즐겁게 여행하고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잠은 캠핑장에서 자고, 밥은 직접 해 먹고, 예약은 못하고, 세부적인 코스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았다. 엄니는 추니와 함께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좀 놓인다고 하셨다.
7월 16일. 드디어 출국이다. 어젯밤까지 수차례 짐을 풀었다가 싸기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추니는 베란다 커튼을 반쯤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잠긴 가스밸브를 열었다 잠그고,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다시 바꿔 놓았다. 3년 만에 꽃대 솟은 호접란이 옹골지게 입술을 오므린 채 촘촘한 계획 없이 떠나는 우리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다.
“물이 고갈되더라도 걱정 마라. 옆집에 부탁해 놓았으니까.”
추니는 꽃을 보며 어린애 달래듯이 말을 건넸다.
“이제 됐어요. 그만 갑시다.”
이제 됐다 싶어 전원을 내렸다. 추니는 잠시 승강기가 내려간 틈을 이용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들어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막을 지나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섰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공항 가는 길이 확 트였다. 유럽도 가는 곳마다 이렇게 뻥뻥 잘 뚫리면 좋겠다. 치악산 녹음이 짙다. 석 달 후 시월에 돌아오면 단풍이 물들고 있겠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 짐이 가장 크다. 자전거를 넣은 대형 박스는 화물로 부치고, 좌석은 통로 쪽으로 배정받았다.
상의를 벗고, 허리띠 풀고, 신발은 벗어 바구니에 담고, 양팔 벌려 선 채 뒤따르는 추니를 돌아보니 불안한 듯 상기된 얼굴이었다.
면세점 라일락 향기 속을 지나다가 딱히 뭐 살 것도 없으면서 매장으로 들어갔다. 눈길은 진열된 상품을 향해 있지만 마음은 허공에 있었다. 저만치 27번 탑승 게이트가 보이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데 발걸음이 재다.
도나우 강 물길 따라(오스트리아~독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7월 16일 저녁 6시 27분. 10시간을 비행해 오스트리아 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기내 선반에 넣은 가방이 많아 우리는 맨 뒤에 내렸다.
화물이 빙빙 돌면서 하나둘씩 주인을 만나 벨트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짐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다른 나라로 잘못 간 게 아닐까? 가슴 조이며 안내센터를 찾아갔다. 알고 보니 대형 화물은 다른 벨트에서 나온단다.
캐리어에 짐을 싣고 대합실로 나오자 ‘CHOI’라고 쓴 A4 용지를 들고 서 있는 픽업 차량 기사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지요?”
입국 수속이 좀 늦어서인지 차량 기사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 픽업 차량이 주차된 곳으로 이동했다. 해 저문 공항은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가 시원한 저녁 바람과 뒤섞이면서 뒤숭숭하고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20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한인이 운영하는 ‘비엔나스위트호텔’은 다가구 주택인데 건물이 낡았고, 내부로 들어가는 이십 미터 남짓한 통로는 어두컴컴했다. 층은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네 번째 층인 ‘D층 407호’에 방 배정을 받았다. 자전거와 짐을 방으로 옮기느라 작은 승강기를 이용해 여러 차례 오르내리는 동안 추니는 밖에서 다른 짐을 지키고 있었다.
샤워장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이용했다. 빈에서의 첫날 밤, 우린 시내 구경을 하려고 호텔을 나섰다가 괜히 길을 잃을 것 같아 얼마 안 가서 갔던 길을 되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곱 명의 한국인 관광객들과 식탁에 둘러앉았다.
“처음 뵙겠어요. 여행 오신 거예요?”
“네, 대학 다니다가 휴학하고 놀러 왔어요. 빈에서 사흘간 머문 뒤 독일과 프랑스로 갈 거예요. 보름 동안 여행해요.”
여행 기분에 잔뜩 들떠 있는 표정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코스군요. 우린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데 도나우 강을 따라 독일로 들어갈 거예요.”
“밥은 더 드셔도 되는데 계란과 소시지는 1인당 두 개씩만 드세요.”
옆에 지키고 앉아 있던 주인아주머니의 말이었다. 어쩐지 좀 부담스럽다.
식탁에서 커피 한잔 하며 스마트폰을 인터넷 무제한 서비스 모드로 전환하기 위해 메시지대로 버튼을 눌렀다. 몇 번 시도해도 잘 되지 않는다. 통신사에 전화했더니 기계 음성으로 이것저것 시켜 놓고는 상담원이 통화량이 많아 연결을 예약해 두겠다고 한다.
“학생, 이것 좀 도와 줄 수 있어요? 인터넷 무제한 서비스? 메시지대로 해도 잘 안돼요.”
옆에서 식사를 마친 학생에게 스마트폰을 건네며 물었다.
“한국에서 이동통신사에 신청을 하셨나요? 메시지는 뭐라고 떠요?”
“예.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메시지가 계속 이렇게 떠요.”
불만 섞인 말을 하자 학생은 혼자 뭐라고 중얼대며 만지작거렸다.
“네, 이제 됐어요. 인터넷 환경이 한국처럼 좋지는 않아요.”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도해 보니 연결됐단다. 덧붙여 ‘핫 스팟(Hot Spot)’ 기능도 설정해 주었다. 와이파이(Wi-Fi)가 안 터지는 지역에서도 데이터 서비스를 공유 상태로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인데, 추니가 이 기능을 이용해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됐다.
식사를 마치고 가져온 짐을 모두 꺼내 재분류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곤 12개의 가방에 차곡차곡 다시 넣었다. 라이딩 도중에 수시로 꺼내야 하는 것을 가방 위쪽으로 정리한 뒤, 각 가방에 들어간 품목을 일일이 적어 겉에 붙였다.
오후에 쇤브룬(Schonbrunn) 궁전을 찾았다. 1인당 입장료는 2만 5천 원. 내부에 들어서자 꽉 들어찬 관광객들에게 떠밀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관람 순서대로 한 발짝씩 저절로 옮겨졌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이었던 이 궁전은 아름다운 정원과 저명한 미술 작품들이 가득했고, 권력과 허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졸리고, 피곤하고, 더워서 별로 흥미롭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서 탄산가스 섞인 물을 잘못 사는 바람에 마시지 못하고 미네랄 생수 한 병을 다시 샀다. 또 카페에 들러 ‘비엔나 커피’를 주문했다. 가격은 한 잔에 7천 원, 아메리카노 위에 하얀 생크림을 듬뿍 얹었는데 맛이 밍밍해서 실망했다.
자전거를 타고 호텔을 나와 도나우 강 답사에 나섰다. 빈 중심가 레오폴드슈타트(Leopoldstadt)에서 국제센터 쪽으로 한 시간 정도 달리니 도나우 강이 나타났다.
“와우! 도나우 강이다.”
많은 사람들이 강가에 나와 있었다. 인터넷 지도에서 본 것과는 달리 강폭이 넓었는데, 그 크기는 얼핏 한강과 비슷해 보였다. 도나우 강은 한가운데 긴 섬이 물길을 두 갈래로 나눈다. 한쪽의 인공 물길에는 유람선과 화물선이 오가고, 다른 한쪽의 자연 물길에는 시민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강변엔 남녀노소 누구나 아슬아슬하게 속옷 하나만 걸친 채 선탠을 하고 있었는데, 그 옆을 지나며 시선을 가누기 어려웠다. 추니는 날보고 “뭘 그리 유심히 보느냐”고 따졌다. 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실은 내가 그들을 유심히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낮선 동양인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도나우 강변에 있는 안내센터에 들러 ‘유로벨로(EuroVelo6)’ 자전거 길을 찾았다. 바로 도나우 강변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 길은 유럽의 자전거 길을 대표하는 12개 루트 가운데 하나인데, 동쪽 흑해 루마니아에서 시작해 빈을 경유한 뒤 서쪽 대서양까지 연결되는 노선이다. 내일 첫출발 입새를 찾아서 다행이다.
7월 18일. 아침 맑음. 섭씨 28도, 바람이 조금 분다. 숙소에서 자전거와 가방을 들고 내려와 도로 갓길에서 출발 준비를 했다. 가방 열두 개를 추니와 여섯 개씩 나누어 실었다. 뒤에 두 개, 앞에 두 개, 핸들에 한 개, 짐받이에 한 개로 모두 여섯 개다.
국내서 자전거 캠핑하며 여행할 때 뒤에 가방 두 개는 싣고 다녀 봤지만 여섯 개를 싣고 달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핸들이 마구 흔들리고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우리는 익숙해질 때까지 천천히 조심스레 달리자고 서로를 챙겼다.
“도나우 강 물길 따라 출발!”
어제 미리 가 본 도나우 강변을 향해 추니와 나란히 페달을 밟아 나아갔다.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달렸다.
‘이번 여행이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닥치지도 않은 일에 미리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예측하지 못했던 환상적인 장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파란 하늘에 미루나무 그늘이 길고, 나무 사이를 스쳐 나온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요 며칠간 비가 내리지 않아 많은 시민들이 강가에 나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강변 우거진 숲 속엔 뾰족한 빨간 지붕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아이들은 뜀틀에서 차례로 물속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노면에 자전거가 그려진 유로벨로를 따라 이정표를 보면서 서쪽으로 달렸다. 이곳 빈에서 출발해 물길 따라 계속 달리다 보면 독일 국경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도나우 강 한가운데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유람선 갑판 위에서 손을 흔드는 노부부에게 우리도 손을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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