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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연금, 이런 X 같은 경우가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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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연금, 이런 X 같은 경우가 있냐?"

[작은책] 아버지의 노인연금

아버지가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셨다. 81세 나이에 경비로 일하다가 발을 못에 찔려 산재 치료를 받은 후 복직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그만두신 것이다. 회사에서 계속 나와 달라고 요청이 와서 돌아간 건데, 며칠 만에 그만두신 이유는? 황당하게도 '노인을 위해 만들었다'는 노인연금 때문이다.

산재요양을 하는 동안 퇴직할 생각으로 노인연금을 신청해 매달 16만 원을 받게 되었는데, 직장에 다시 나가면 연금을 받을 수 없다고 복지과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평생 보수 여당 지지자이던 아버지도 이번에는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머니 몫까지 치면 32만 원을 못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니, 이런 더럽고 치사한 놈들이 어디 있냐? 한 달에 16만 원 갖고 어떻게 사냐? 근데 먹고살려고 딴 일을 하면 안 준다고? 이런…!"

"아버지, 면사무소 직원이 무슨 죄가 있어요? 노인연금 준다고 공약해서 당선되어 놓고 딴소리하는 박근혜가 문제지요."

'이번 기회에 야당 좀 찍게 해 볼까?' 하고 넌지시 말해 보지만, 평생 박가네 지지자였던 아버지는 그 말에는 답이 없다. 24시간 맞교대로 고생해서 겨우 100만 원 받는다고 연금도 못 받고 의료보험까지 내느니, 차라리 그만두겠다고 했다. 얼른 그러시라고 했다. 돈 계산 때문이 아니라, 노인네를 더 이상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진심으로 말이다.

자, 여기까지가 며칠 전에 있었던 제1절이다.

▲ 2014년 3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은퇴자협회, 한국노년유권자연맹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제도를 철회하고 모든 노인들에게 20만 원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초연금을 도입하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나만 모르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얼마 전, 취재차 일본에 갔을 때 안내를 맡은 일본 교민이 일본 노인들은 월 200만 원 넘는 연금을 받는다기에 깜짝 놀랐다.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일본이 노령연금 때문에 망한다고 떠드는데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다. 오히려 노령연금 때문에 내수가 탄탄하니 일본 경제가 살아 있는 겁니다. 작년에 노령연금을 대폭 올린 것은 다름 아닌, 보수 우파인 아베 총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베가 한국인들에게는 미움을 받지만 일본에서는 인기 좋습니다."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그 말을 옮기니, 다들 오히려 의아해한다.

"아니, 여태 그걸 몰랐어?"

"정말 몰랐어, 나는. 우리네 야당과 진보세력은 왜 일본의 노령연금에 대해 널리 알리지를 않는 거지?"

말하다 보니, 어쩌면 진보 내지 야당이란 사람들도 연금의 증액이나 대상자 확대를 주장하는 일에 은근히 부담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연금의 폐해를 주장하는 '조중동'의 융단 폭격에 주눅이 들어서 말이다.

일본에는 해마다 6만 명의 노인들이 실종된다는 텔레비전 방송도 있었다고 한다. 노인이 죽어도 가족들이 노령연금을 계속 수령하기 위해 사망 신고를 하지 않고 미라로 놔두거나 암매장한다는 것이다. 연금의 폐해를 보여 주기 위한 방송이었던 듯하다.

사회주의 70년 동안, 소련의 학교와 방송에서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으로 사는 영웅이 되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자본주의보다 더 극악한 이기주의와 마피아 폭력이 난무하는 무서운 나라가 거기 있었다.

나는 사람의 본성은 원래 선한 건데 자본주의가 망쳐 놓았다거나, 교육으로 본성을 바꿀 수 있다는 따위의 거짓 설교를 믿지 않는다. 사람은 그저 두뇌가 좋은 동물일 뿐이지 신의 자녀일 리가 없다. 단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는 방법을 체계화할 줄 아는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일 뿐이라고 본다. 교육은 그 점에서 필요한 것이지 본성을 바꿀 수는 없다고 본다.

연금이든 기금이든 돈이 있으면 부작용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를 핑계로 연금을 받으려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직업의 유무는 물론 빈부의 차이에도 구별을 두지 말고 누구에게나 주는 게 옳다고 본다. 일하면 못 받고 놀아야 돈을 받는 이상한 제도는 자본주의 이념에도, 사회주의 이념에도 맞지 않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나이와 직업, 빈부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명수당을 지급해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본다.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노숙자부터 재벌까지 모든 이에게 소액이라도 공평하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부자에게 왜 돈을 줘야 하냐고? 기본소득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적선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진 기본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오늘의 부자가 내일은 부도를 맞아 거지가 될 수도 있고 수급자의 자격을 심사하기 위해 투여하는 엄청난 인력비용이면 숫자로는 얼마 되지도 않는 부자들에게 나눠 줄 연금이 나오고도 남을 것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두 직장에서만 55년 장기근속과 83살 퇴직이라는 기록은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아, 여기부터는 제2절이다.

그리하여 정식으로 퇴직하고 연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공무원으로서 퇴직금을 받았기 때문에 노령연금을 줄 수 없다는 통보였다.

아버지는 33년을 철도청에서 일했지만, 대부분의 기간은 비정규직이었다. 막바지 12년만 정식 공무원으로 일을 했고 공무원연금은 20년 근속자에게나 나오니 일시불 퇴직금으로 1500만 원을 받았다. 그게 벌써 20년 전이다. 그런데 10년 이상 공무원으로 일하고 퇴직금을 받는 사람은 노인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법조항을 담당 공무원이 뒤늦게 찾아낸 모양이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냐? 더러운 놈의 새끼들. 그걸 법이라고 만들어 놓고 노인연금을 준다고 생색을 내냐? 이 썩어빠진…."

이렇게 욕을 하는 아버지는 과연 이번 투표에서 야당을 찍으실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여당 지지자들의 특징은 권력자는 잘하는데 '밑의 놈'들이 개판이라고 믿는다는 거다. 그들은 늘 약자만 욕한다.

봄이다. 아버지 모시고, 아들들 데리고 인천 연안부두에 홍합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나 어렸을 때 철도청 직원 명찰만 보이면 기차를 공짜로 탈 수 있었던 아버지가 늘 하시던 대로 말이다. 내게는 아버지의 속을 다 태워 가며 감옥에 드나든 덕분에 얻은 국가유공자 무료승차권이 있으니….

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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