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조용한 구조조정이 무섭다. 삼성 계열사는 노동조합이 없거나 유명무실하다. 그래서 인력 감축에 따른 조직적 반발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계열사에서 대규모로 감축이 이뤄진다. 많은 기업 경영진이 국내 1위 삼성을 본보기로 삼는다. 따라서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 역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가 계획 중인 감축 규모는 파격적이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모두 1265명을 줄일 계획인데, 이는 지난해 9월 기준 직원 수 1만1000명의 11.5%에 달한다. 나이가 많거나 수익성 낮은 사업 부문에서 일하는 직원이 감축 대상이다. 최근에는 내부 감사도 진행됐다. 직원들은 퇴직 압박을 위한 감사라며 불안해한다.
삼성그룹 간판 격인 삼성전자 역시 인력을 줄이고 있다. 지난 2008년 이후 첫 감소세다. 2014년 말 9만9382명이던 삼성전자 본사 소속 임직원 수는 지난해 말 9만6902명으로 2480명 줄었다.
눈에 띄는 건 연구개발 조직 축소다. 연구소 통폐합이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가 연구개발 비용을 줄인 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이는 정보기술(IT) 분야의 성장 동력 약화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인력 감축에서 자유로운 계열사는 없다.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 역시 대규모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임직원을 1000명 이상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엔지니어링, 삼성SDS,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생명, 제일기획 등도 직원 숫자가 줄었다. 제일기획은 해외 매각이 기정사실이다. 삼성물산·삼성전자 등이 보유한 제일기획 지분(28.44%) 중 일부를 프랑스 기업인 퍼블리시스에 매각하려 한다.
문제는 감축 이후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쇠퇴기, 성숙기에 다다른 업종에서 구조조정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의 씨앗을 뿌리는 시도 역시 안 보인다. 삼성 직원들에 따르면, 그룹 수뇌부가 과거 장기적인 시야로 추진했던 연구개발 사업 역시 축소 및 폐지되는 분위기다. 그 자리를 메울 투자 계획은 없다.
반면 주주 배당은 늘었다. 삼성 계열사의 배당 성향이 워낙 낮았으므로, 주주 친화 정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해 엘리엇 사태에 따른 학습 효과라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그룹 경영권의 안정적인 승계를 위한 분위기 조성 목적이라는 것. 그러나 삼성그룹 3세 체제가 완성된 뒤엔 무엇으로 먹고살지에 대한 그림은 아직 안 보이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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