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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공무원, 자전거 메고 유럽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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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공무원, 자전거 메고 유럽 가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① 무모한 도전

청년 일자리 부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 은퇴를 시작한 요즘, 한 퇴직 공무원이 자전거를 분해해 비행기에 싣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 도나우강 물길따라 페달을 밟기 시작해 독일과 룩셈부르크, 프랑스와 영국 등 모두 5개국에서 캠핑과 취사를 하며 3500킬로미터를 횡단하면서 겪은 여정을 20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담아 <집시 부부의 수상한 여행>을 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씨 부부가 자전거 유럽 횡단 동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과 시시각각으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난관을 헤쳐 나가며 얻은 이 여행기가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에게는 청춘의 불씨를 살리는 기회가 되고, 장년들에게는 나이를 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희망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은 매주 1회 실린다.

필자 최광철 씨는 공무원 9급과 7급 공채를 거쳐 행정자치부 지방재정팀장, 화천군 부군수, 강원도 문화관광체육국장, 원주 부시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무모한 도전, 자전거 세계 일주를 꿈꾸다


또 가슴이 쿵쿵 뛰면서 갑갑하고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하기야 어설픈 ‘자전거 세계 일주’ 계획을 세워 놓고, 행여 마음이 흔들릴까 6개월 전에 항공권까지 끊어 놓았으니 걱정과 후회가 심장을 억누르고 있는 거겠지.

내가 왜 ‘자전거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거기다 고생하려면 혼자 하면 되지 물귀신처럼 왜 추니(아내의 애칭)는 끌고 들어가려는 거지?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굳어져 버렸다. 불현듯 나도 모르게 ‘계획을 원점으로 되돌릴 만한 명분이 없을까? 아니면 출발 일자를 무기한으로 늦출 만한 구실은?’ 하고 궁리에 빠지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단한 용기’라고 운을 떼고는 걱정스런 조언들을 늘어놓으니 어쩐지 외롭고 우울하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으나 장거리 여행은 불과 3년 전부터였다. 여름휴가 때 춘천을 출발해 6박7일 동안 자전거 캠핑을 하면서 해남 땅끝마을에 가고, 다음 해는 부산 을숙도로, 또 작년엔 비무장지대 155마일을 횡단했다.

2011년 여름엔 태풍 '무이파'를 뚫고 중부지방을 통과했고, 재작년에는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속에서 진부령을 넘었다. 엉덩이에 잡힌 물집이 터지는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도전의 성취감으로 힘겨움에 대한 보상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자전거 세계 일주’라는 꿈이 솔솔 싹트기 시작한 것은.

지구 한 바퀴 4만 km, 자전거로는 몇 년이나 걸릴까? 3년? 아니면 5년? 그런데 태평양은 어떻게 건너고, 사막은 자전거로 달릴 수 있을까? 너무 춥거나, 폭우 혹은 토네이도가 닥치면 어떡하지? 상상의 나래는 어느새 자전거를 타고 세계 구석구석을 달리고 있었다. 히말라야를 넘고, 안데스 능선에 올랐다. 황하를 거슬러 오르다가 시베리아 사막으로 핸들을 돌렸다. 나도 모르게 점점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었고, 3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언제 떠날까?’

38년 동안 몸에 밴 출퇴근 모드가 멈춰지면 생활 리듬이 깨지고, 또 아침에 뒷동산 오르다가 출근하는 동료들을 만나면 갑자기 우울해질지도 모르니 가급적 일찍 떠나자.

퇴직일은 2014년 6월 30일. 그로부터 보름 후인 7월 16일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기 위해 퇴직 6개월 전인 1월에 티켓팅을 했다. 행여 그때 가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일정 변동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결심을 다질 무언가와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시기는 정했고, 다음은 누구랑 가지?’

여행의 원칙 하나! 친한 친구와 가지 말 것. 원칙 둘! 아내, 남편과 절대 가지 말 것. 가까운 사람일수록 쉽게 말하고, 쉽게 거절하고, 쉽게 상처를 입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추니와 떠난다. 원칙이야 어쨌건 10년 동안 추니와 늘 자전거를 함께 탔으니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함께 떠나야 한다.

‘첫 출발은 어디서 할까?’

순조로운 다음 여정을 위해 비교적 자전거 타기 쉬운 유럽에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유럽에도 수많은 자전거 길이 있다. 그중에서 한 개의 노선만을 선택해야 하므로 남들이 좀처럼 갈 수 없고, 오랜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루트로 가닥을 잡았다. 유럽 여행 서적을 읽기도 하고, 인터넷 지도를 열어 유럽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동에서 서로, 또 남쪽 이탈리아에서 북쪽 노르웨이로 여러 차례 왕복하며 노선을 선정하느라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점차 거미줄 같은 유럽의 자전거 길이 서서히 두꺼운 형광펜으로 단순해지면서 드디어 ‘자전거 유럽 횡단’의 골격이 드러났다.

‘자전거 유럽 횡단’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해 독일의 로만틱 가도와 마인 강, 라인 강, 모젤 강을 거슬러 오른다. 그다음 룩셈부르크를 경유해 프랑스로 들어가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 서쪽 대서양까지 횡단하는 루트다. 5개 국가인 오스트리아, 독일, 룩셈부르크, 프랑스, 영국을 가로지르는 거리는 어림잡아 3500킬로미터.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덟 번 가는 거리다. 쉬는 날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50킬로미터 정도 달리는 셈이다.

여행 기간은 석 달로 정했다.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에 따라 유럽에서는 90일 이내에서만 자유롭게 국경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예약을 할 수 없는 것이 걱정이다. 자전거 여행 특성상 타이어에 펑크가 나거나, 길을 잃어 예약한 장소에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뒤에 예약한 것들을 줄줄이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 경비는 얼마나 들까? 잠은 캠핑장에서 자고, 식재료는 마트에서 사고, 이동은 자전거로 하니 그리 많이 들지는 않겠지만 예측하지 못한 돈이 쓰이기도 할 것이다.

의사소통 또한 문제다. 아침에 10분씩 전화 영어 회화를 2년간 공부했지만, 여전히 왕초보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기야 각 나라의 언어를 다 익히기는 어렵고, 그 나라 사람들이 한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손짓 발짓으로 부딪쳐 봐야겠다.

7월 1일 새벽. 자전거를 타고 반곡관설동 집을 나섰다. 치악산 중턱 영원사 입구까지 갈 때는 오르막길이고, 집에 올 때는 내리막길이다. 보름 후면 대장정에 오르는데 하루에 겨우 두 시간 운동해서 될까? 하기야 체력이 한두 달 사이에 부쩍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우물쭈물하다 보니 출국 날짜가 가까워졌다. 이제 출근하지 않으니까 횡성댐에도 가고, 남한강과 섬강의 합수머리인 흥원창에도 갔다 와야겠다.

매년 여름휴가 때 추니와 자전거 여행을 며칠씩 다녀오긴 했으나 평소에는 주말에 한 번 타기도 바빴다. 남들은 우리가 자전거 세계 일주를 한다고 하면 체력이 엄청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안춘희 부부 ⓒ최광철

공직을 마감하고 오늘 새 명함을 만들었다. 쓰다 남은 명함은 쓰레기통에 넣었다. 원주 부시장이라는 남부럽지 않은 직위까지 오르고, 원 없이 일했는데도 미련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분명 집착일 게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차츰 벗어나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쳐 줄 사람들이 주위에서 사라지는 게 두려운 걸까? 필시 속물근성일 것이다.

새 명함은 ‘자전거 집시, Bike Bohemian. 최광철·안춘희’다. 소박하고 쾌활하게 유랑 생활하면서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 보려는 부부 자전거 여행가란 뜻이다. 해석이 너무 거창한가 보다.

ⓒ최광철
7월 5일. 유럽 자전거 지도책을 구하려고 서울 종로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갔다. 점원에게 부탁해 인터넷을 통해 지도책을 구하려고 한참 동안 검색을 해 봤으나 헛수고였다. 현지에 도착해서 지도책을 구할 수밖에 없겠다.

오스트리아 빈을 출발해 첫 캠핑은 어디서 하는 게 좋을까? 캠핑장을 찾았는데 이미 만원이거나, 예약을 하지 않아 텐트를 칠 수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도나우 강변 잔디밭이나 경찰서, 주민자치센터 앞마당에 텐트를 치겠다고 해 봐야겠다. 그것도 안 되면 호텔을 찾아가야겠지.

구글 지도를 펴 보면 도나우 강변 따라 길이 나 있고, 희미하게 승용차와 자전거가 달리고, 걷는 이들도 보이지만, 몇 장의 거리 모습만으로는 이 길로 가야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책상머리에 앉아 이역만리 현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도 없고, 미리 해결할 수도 없어 답답하다.

추니가 허리가 아파 걱정이다. 석 달 전 무거운 짐을 들다가 허리에 통증이 와 병원에 갔더니 디스크의 일종인 ‘척추협착증’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발이 저려 왼쪽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닌다. 무실동 정형외과에서 석 달째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물리치료와 뜨거운 찜질을 하는 정도다. 자전거도 무리하게 타지 말고, 평소와 다른 행동은 일절 하지 말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여행을 뒤로 미룰까? 아니면 여행 포기 선언을 할까? 아쉽지만 이 상태로 강행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리인 것 같았다.

“진통제 두 달 치를 처방받아 왔어요.”

추니가 병원에 다녀와서 체념과 비장함이 뒤섞인 말을 꺼냈다. 추니는 예정대로 떠나겠다는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달리다가 통증이 심하면 진통제를 복용하고, 더 이상 참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도중에 귀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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