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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국 영화 100편'은 쓰레기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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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국 영화 100편'은 쓰레기 리스트"

[프레시안 books] <에센셜 시네마>

지금, 우리는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읽는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홍보용 기사를 보고, 블로거들의 이야기를 파편적으로 취합하는 정도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영화 비평은 인터넷 혁명 이후 자취를 감췄다. 비평가의 칼날처럼 벼린 글이 영화를 '읽는' 독자를 키우던 시대는 1990년대 이후 끝났다.

미국의 대표적 영화비평가 조너선 로젠봄은 이 시대를 반박한다. 2002년 나와 뒤늦게 번역된 비평 선집 <에센셜 시네마>(조너선 로젠봄 지음, 안건형·이두희 옮김, 이모션북스 펴냄)에서 로젠봄은 정전, 혹은 고전이라는 개념으로 영화를 정리한다. 이는 영화가 TV, 게임과 마찬가지로 콘텐츠 미디어의 하나로 취급되는 현 상황을 역류하는 시각이다.

로젠봄은 책에서 <축제의 날>, <쉘부르의 우산>, <로제타> 등 12편의 고전을 소개한 후, 더 다양한 영화와 작가를 비평하며 영화를 다시 독보적인 예술의 지위에 올리려 한다. 책에서 로젠봄은 <이창>, <엠(M)>과 같은 고전은 물론, <아이즈 와이드 셧>, <에이.아이.>와 같은 영화도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특히 장뤼크 고다르의 작품 <경멸>을 설명하는 부분 등에서는 난해한 영화를 보다 명쾌히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도 제공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매스미디어가 결국 자본이 영화를 포섭하도록 부추기게 되었고, 이를 통해 사실상 대중을 조작하게 되었다는 견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 사례로 로젠봄은 1997년 미국영화협회(AFI)의 '위대한 미국 영화 100편'을 꼽는다. 로젠봄은 이 리스트에 대해 "야만적인 상업적 계략이고 친숙한 상품을 다르게 포장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대안적인 100편의 리스트를 따로 뽑는다.

▲ <에센셜 시네마>(조너선 로젠봄 지음, 안건형·이두희 옮김, 이모션북스 펴냄). ⓒ이모션북스
이처럼 <에센셜 시네마>에는 로젠봄의 작가주의적 감수성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책 본론에 소개되는 그의 풍부한 영화 해석을 쭉 따라간 후, 독자는 책에 부록으로 수록된 '로젠봄의 정전' 1000편을 만날 수 있다. 할리우드의 자본 공세에 함몰되지 않은, 새로운 영화를 찾는 시네필이라면 이 대중성에 관한 고려라고는 눈을 씻고서도 찾아볼 수 없는 1000편의 리스트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리라.

로젠봄은 1969년 파리로 건너가 <필름 코멘트>, <사이트 앤 사운드>, <빌리지 보이스> 등의 전문 리뷰어로 활동하며 비평가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파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의 영화 시장을 한 발 떨어져서 비평할 힘을 키웠다. 이후 그는 20여 년간 대안 매체인 <시카고 리더>에서 비평가로 활동했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업무 환경 덕분에 그는 고유의 미학적 소신, 정치적 입지를 영화 비평에 마음껏 녹여냈다.

덕분에 로젠봄의 글이나 리스트에서 독자는 주류 미디어 비평에서 만날 수 없는 낯섦과 냉소를 느낄 수 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 <택시 드라이버> 등 누구라도 명작으로 꼽기 마련인 영화에 대한 로젠봄의 눈치 보지 않는 비판은 책을 끝까지 잡도록 유도하는 힘이다. 비록 나온 지 꽤 오래된 탓에 시차가 조금 느껴지는 점이 아쉬우나, 책에 소개된 영화는 언제 봐도 부족함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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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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