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수술하고 나면 거뜬하다던데, 나는 운이 없는 건지 하나도 좋아진 줄 모르겠네. 병원에서 수술은 아주 잘 되었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 돈도 많이 까먹었는데 몸은 그대로니 마음마저 심란한 게 아주 죽을 맛이야."
가끔 느닷없이 맛이나 보라며 간식을 해다 주시는 환자께서 세상 다 산 듯한 표정으로 말씀하십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증상 때문에 수술을 받았는데, 몸이 아프고 지쳐 우울증 오는 것 아닌가 싶다고 하십니다. 같은 증상에 같은 치료를 해도 사람이 다르므로 결과는 달라질 수 있고, 더 나빠지는 예도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는 뻔한 위로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몇 해 전 진료했던 한 할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70대 중반이던 할아버지는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치셨습니다. 요추 협착증 진단을 받고 수술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선 어머님처럼 수개월 후에도 다리가 저리고, 붓고 아픈 증상이 낫지 않아 병원에 가셨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으니 약물을 복용하면서 지켜보자 했다는데, 답답한 심정에 왔다고 하셨지요. 병증에 관해 설명하고 허리를 건강하게 하는 생활을 하면서 치료해나가자 했고, 일정 기간을 치료하면서 증상도 좀 개선되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몇 개월 동안 나오지 않으셨는데, 어느 날 숨을 씩씩거리며 오셔서는 저를 붙들고 한참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내용인즉, 저녁 뉴스를 보다가 본인의 증상이 허리가 아니라 다리 혈관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보도를 보셨답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 알아준다는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기사의 내용을 설명하자 먼저 순환기 내과에서 관상동맥과 하지 혈관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심장에 3개, 하지 혈관에 1개의 스텐트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정형외과로 옮겨 여러 검사를 받은 후, 하지 정맥류가 의심돼 과를 옮겨 검사를 또 받으셨습니다. 그 결과 정맥류도 있고 허리의 문제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맥류 수술을 권하는 의사에게 얼마나 좋아질지 묻자, 정확히 알 수는 없고, 나머지 설명은 간호사에게 들으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수개월 동안 치료받으면서 남은 것은 상당한 금액의 진료비 영수증과 늘어난 약봉지, 그리고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심장의 문제를 예방했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위안뿐이라며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지요.
정맥류 수술을 권하는 의사에게 얼마나 좋아질지 묻자, 정확히 알 수는 없고, 나머지 설명은 간호사에게 들으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수개월 동안 치료받으면서 남은 것은 상당한 금액의 진료비 영수증과 늘어난 약봉지, 그리고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심장의 문제를 예방했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위안뿐이라며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지요.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누구에게나 건강과 질병의 판단 기준이 될 만한 상식으로서의(뭐에는 뭐가 좋다는 식이 아닌, 가치관이나 인체에 대한 이해에 가까운) 의학 지식, 그리고 건강 문제를 쉽게 상담할 수 있는 ‘나를 잘 아는 주치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날이 갈수록 새로운 정보가 늘어나서 그게 맞는 것인지,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두 가지의 안전장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상식으로서의 의학 지식(이 또한 오해하면 의학 만능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지만)과 관련해서는, 교양으로서의 의학이라는 측면에서 학교 교육 과정에 의료에 관한 부분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성인 혹은 교양인이라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관리할 만한 지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에 식자(識者)라고 하면 단지 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생활서 필요한 실전 지식 또한 갖춘 사람을 일컬었습니다. 당연히 일정 수준의 의학적 지식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내의원 도제조가 의원 출신이 아닌 관료 출신이었던 것도, 유의(儒醫)가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러한 까닭에서였지요.
과거에 식자(識者)라고 하면 단지 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생활서 필요한 실전 지식 또한 갖춘 사람을 일컬었습니다. 당연히 일정 수준의 의학적 지식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내의원 도제조가 의원 출신이 아닌 관료 출신이었던 것도, 유의(儒醫)가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러한 까닭에서였지요.
하지만 현대 지식인은 가방끈이 길어졌지만 세분된 학문을 익힐 뿐, 실용적인 부분에서는 젬병인 경우가 많습니다. 때론 아주 고학력의 사람이 상식 밖의 정보에 휘둘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봅니다. 그러니 시중의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판단할 줄 알며, 평소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방법에 관한 기본적인 교육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잘 아는 주치의의 경우, 내가 살거나 일하는 곳 가까이에 있으면서 별것 아닌 내용을 쉽게 물어볼 수 있는 의사를 만들기 권합니다. 앞으로 주치의 제도가 도입될지도 모르지만(이 또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요), 지금 상황에서는 나를 잘 아는 의사를 한 명 만들어 잘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럼 어떤 의사를 선택해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하는데, 다음의 내용이 선택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가? 증상이나 호소를 주의 깊게 듣는 지, '병'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가? 질병에 집착하지 않고 환자의 전부를 고려해 내리는가?, 필요 없는 주사나 투약 요구는 확실히 거절하는가? 질병에 판단이 서지 않거나 심각할 때 신속하게 전문병원을 소개할 수 있는가?" (<우리집에 꼭 필요한 건강 상식>(히라이시 다카히사 지음, 안윤선 옮김, 나무생각 펴냄))
또한 책은 환자의 응석에 웃는 얼굴만 하거나, 내가 처방한 약만 먹으면 된다는 고압적인 태도의 의사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나 세상에 드러난 명성을 듣고 의사를 판단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위의 기준에 맞는 정도의 의사를 선택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할머니께서는 "봄나물을 많이 드시라" 당부하니 "몸이 좋아지면 쑥 뜯어다 개떡을 쪄서 가져다주마" 하십니다. 손을 흔들며 가시는데 아무래도 그 말씀은 얼른 본인을 건강하게 해달라는 당부의 완곡한 표현 같습니다.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분께 나는 어떤 의사로 보일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마도 개떡이 말해주겠지요.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