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인사들이 주장했습니다. 여론조사에는 잡히지 않는 바닥 민심을 체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길거리에 나가 지역주민들을 만나보면 박근혜 정권에 대한 반감이 여론조사 수치보다 훨씬 높다는 걸 실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야당 인사들의 아전인수식 주장, 총선 필승의지를 다지기 위한 자기최면식 주장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헌데 아닌가 봅니다.
새누리당의 '진박' 후보들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당내 경선에 나섰던 진박 후보들이 비박 후보들에게 연이어 패배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아성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벨트만 놓고 보더라도 생환한 진박 후보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언론은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 실망한 지지층이 반기를 든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유승민 폭탄 돌리기'가 상징하는 것처럼 해도 해도 너무 한 공천과정에 지지층마저 혀를 내두르고, 봐도 봐도 너무 과한 청와대 욕심에 지지층마저 진저리를 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언론 해석만이 아닙니다. 서울 성북갑에 출마한 새누리당 정태근 예비후보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가 비박 후보들을 대거 공천 배제한 직후, 출근 인사에서 만나던 지지층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축하와 승리에 대한 기대의 인사가 넘쳐 났던 엊그제와 달리 오늘은 우려, 심지어 경멸에 가까운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바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층이 동요·이반하고 있는 점을 확인하면 할수록 '안 봐도 비디오'의 색상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층마저 동요·이반하는 판국이니, 나머지 유권자 여론은 오죽할까?'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야권 인사들이 했던 주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바닥 민심은 여론조사 수치 이상으로 사납다는 주장을 새롭게, 그리고 진지하게 경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은 딱 거기서 끝납니다. '그러므로'란 접속사를 앞세워 진단과 전망을 이어갈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은 패배할 것이라든지, '그러므로' 더민주는 승리할 것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여권 지지층이 동요·이반한다고 해서 이들이 더민주 지지로 선회한다고 전망하는 건 단순하다 못해 거칠기까지 합니다. 반박근혜·반새누리당 성향의 유권자층이 광범위하다고 해서 이들이 더민주에 표를 몰아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지지의 변경 또는 강화는 그만한 이유와 확실한 계기가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공천 파동으로 인해 나타난 여권 지지층의 동요·이반을 더민주 지지로 연결짓기 위해서는 더민주가 공천 모범을 보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선택지를 내밂으로써 정치적 지지의 변경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더민주 영역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도긴개긴입니다. 더민주도 새누리당 못잖은 막장극을 연출하고, 더민주 지지층은 새누리당 지지층 못잖게 동요하고 이반합니다. 새누리당 지지층이 넘어올 이유가 없고, 넘어와 봤자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입니다.
이쯤 되면 여야 막론하고 국민 눈초리가 두렵지 않으냐고 일갈해야 하지만 하나마나 한 일갈입니다. 저들은 몰라서 저러는 게 아니라, 믿는 구석이 있어서 저러는 것입니다. 바로 상대 정당입니다. 새누리당이나 더민주 모두 상대 정당이 자기들 못잖게 공천 파동을 연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안심하고 내전에 골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지고 볶는 것 때문에 지지층이 등 돌린다 한들 어디 가겠느냐는, 그래 봤자 저쪽도 마찬가지인데 하는, 아주 현실적인 믿음에 기초해 막 나가는 것입니다.
이건 적대적 공존보다 한 차원 위의 막장 공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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