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바다는 왜 쓰레기장이 되었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바다는 왜 쓰레기장이 되었나

[함께 사는 길] 해양투기·②

1992년 11월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의 한 도로 위에서 주민 30여 명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도로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이 도로를 차단한 이유는 서울에서 김포매립지로 오는 쓰레기 수송차량을 막기 위해서였다. 주민들은 서울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왜 자신의 동네에 버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설령 버린다 하더라도 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모를까, 온종일 진동하는 심한 악취와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어떤 업체들은 일반쓰레기라고 신고해놓고 매립지에 산업폐기물을 갖다 버리기도 했다. 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언제까지 도로를 지키고 있을 것인지 묻는 기자에게 "(정부와의) 협의가 마무리되기 전에는 우리 마을에 단 한 조각의 쓰레기 반입도 허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김포매립지. ⓒ함께사는길(이성수)

골칫거리 육상 폐기물 어떻게 하나


1990년대 초, 환경부(당시 환경처)는 점점 늘어나는 육상 폐기물 처리에 고심하고 있었다. 1990년 한국의 하루 평균 쓰레기 발생량은 1인당 2.2킬로그램(㎏)으로 미국의 1.69㎏, 독일 1.1㎏, 일본 1.0㎏에 비해 2배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국내 주요 폐기물처리장들은 이미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다. 서울 난지도 매립장에선 넘친 폐기물이 둑을 터뜨리고 도로에 쏟아져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여주, 청주, 천안, 원주 등 전국 8개 도시에 광역매립지 신규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매립지 선정과 추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지방의회는 폐기물 반입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국회 여당은 특별위원회를 매립현장에 파견해 실태조사에 나섰다. 폐기물 처리가 일부 지역의 민원 수준을 넘어서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산된 것이다. 일부 언론들은 정부 정책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가리켜 '집단이기주의', '님비' 등의 딱지를 붙였지만, 주민들에게 대체 왜 남의 집, 남의 공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그들의 뒷마당에 묻어야 하는지 알아듣게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충분한 협의와 피해방지 대책이 필요했다.

주민들의 오랜 투쟁과 협상으로 일부 매립장에서는 독성이 강한 특정폐기물의 반입이 금지되기도 했고, 정부도 더 이상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파묻고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폐기물을 처리할 수는 없게 되었다. 폐기물 처리 정책의 전환이 필요했다. 환경부는 1995년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고, 1997년엔 폐기물관리법 개정을 통해 '하수오니 직매립을 금지'를 선언했다. 폐수, 슬러지(sludge, 찌꺼기 또는 침전물), 음식물폐수 등 악취와 침출수의 원인이 되는 유기성 폐기물의 직접 매립을 아예 금지해버린 것이다. 유기성 폐기물을 육지에서 처리하기 위해선 탈수기를 이용해 수분함량을 75% 이하로 줄이거나, 건조한 후 소각해야 했다. 기업과 폐기물처리대행업체들의 폐기물 육상처리 비용도 함께 증가했다. 환경부는 하수오니 직매립 금지 조치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유기성 폐기물의 발생이 줄어들고, 비료 산업 등 폐기물 재활용 기술이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활용 권장을 위한 여러 유인책도 내놨다.

정부와 기업의 선택 "바다에 버리자"


그러나 그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직매립이 금지되자 기업들은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대신 바다에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1988년까지 연간 50만 톤 수준이던 한국의 해양투기는 90년대 중반부터 매년 수백만 톤(t)씩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폐기물의 종류도 조미료를 만들고 남은 수산가공잔재물 등 비교적 독성이 약한 것에서 공장폐수나 슬러지, 축산분뇨 등 독성이 강한 폐기물로 바뀌어 갔다.

환경부가 폐기물의 육상처리를 규제하면서 반대급부로 해양투기가 늘어날 것을 예상했었는지 안 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공식적으로는 환경부와 관계없는 일이었다. 폐기물을 땅에 묻는 것은 환경부의 일이었지만, 바다에 나가서 버리는 일은 해양수산부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폐기물처리장 주변의 민원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1996년 발족한 해양수산부는 환경부의 하수오니 직매립 금지 조치로 폐기물 해양투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양투기 억제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수도 준설물, 음식물폐수 등을 해양배출 가능 물질로 추가 지정하며 환경부 보조에 주력했다. 여기에 더해 환경부는 축산농가에서 발생하는 분뇨를 전량 해양배출하기만 하면 축산폐수처리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기도 했다. '해양 환경보호'를 위해 협력해야 할 두 부처가 거꾸로 해양투기를 위해 힘을 합친 것이다.

▲ 2001년 당시 김포매립장 쓰레기 반입거부로 아파트 곳곳에 쓰레기가 쌓였다. ⓒ함께사는길(이성수)
환경 관련 민원이 부담스러웠던 정부에게 해양투기는 육상처리시설처럼 직접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쉽고 매력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육지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선택은 환경적으로 육지에 비해 관리와 회복이 훨씬 더 어려운 해양오염을 악화시켜 매년 적조를 일으켰고, 환경호르몬과 중금속 같은 유해물질로 인해 해산물이 오염되는 등 온 국민의 먹거리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초래했다. 되도록 먼 바다에 폐기물을 버리려 하다 보니 인접한 일본이나 중국과의 외교적인 마찰도 있었다.

국내 산업계 역시 해양투기로 인해 폐기물 저감이나 재활용 기술에 대한 경쟁력이 약화되었다. 특히 90년대 말 IMF 경제위기와 맞물려 기업들이 비용과 절차가 훨씬 유리한 해양투기를 두고서 폐기물 저감기술 개발이나 육상처리를 위한 자체 정화 시설 또는 재활용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선택이 되었다. 기업들은 '네가 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해양투기를 당연하게 여겼다.

이후 20여 년간 이어진 기업들의 해양투기 선호는 폐기물 재활용 산업이나 육상위탁처리산업의 성장까지 어렵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기업이 폐기물을 육상에서 처리하고 싶어도 주변에 있는 육상위탁처리 업체들이 영세하여 폐기물 처리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처리용량 부족으로 단가가 비싸져 다시 해양투기를 선택하게 되는 구조적인 악순환을 만들었다. 정부와 기업들의 선택으로 그렇게 우리 바다는 썩어갔다.

함께 지켜야 산다


해양투기가 전면 중단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2016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한국의 해양투기는 끝났다. 해양투기 중단 후 바다가 이전 수준으로 자연 회복되기까지 해수는 최소 6개월, 해저퇴적물은 약 1만 년이 걸린다. 수십 년의 해양투기의 대가로는 너무 비싼 것이다. 그동안 썩어가는 바다를 보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바다를 아끼는 학자가 있었고, 해산물가공품에서 나온 돼지털 때문에 수출 물량이 전량 반품된 사업자가 있었고, 해양투기 지역이라는 이유로 정부에 조업권을 회수당한 어민들이 있었다. 능력이 있어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해양투기를 포기 못 하겠다는 대기업들에게 분노한 활동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바다를 보호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취 나고 눈에 보이는 피해에는 예민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해양 오염에는 둔감했다.

육지는 누구나 주인이 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땅을 망가뜨리거나 침범하면 사람들은 '왜?'라고 물어볼 줄 안다. 하지만 바다는 주인이 없다. 바다는 모두의 것이고 공용의 것이다. 바다는 어쩌면 그것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오염물질을 버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아 무시했던 폐기물들은 매년 반복되는 적조로, 수산물 오염으로, 인접국가와의 갈등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한국의 30년(어쩌면 그 이상) 해양투기의 역사는 끝났다. 지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난 일을 반성하지 않고 교훈을 얻지 않으면 우리는 비슷한 행동을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 것이 아니어도, 함께 지켜야 나도 산다. 비록 세계에서 가장 늦게 해양투기를 중단하게 되었지만, 더 큰 말썽이 일어나기 전에 끝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 축산분뇨 처리. ⓒ환경운동연합

육상 폐기물 해양 배출 문제점


○ 물리적 영향
부유물 영향 : 닥도 상승, 일사광 투과 감소, 용존 산소 감소
퇴적물 영향 : 해저 유해물 퇴적, 해저 퇴적물 산소 고갈

○ 생물적 영향
생태계 교란(생물다양성 파괴), 종다양성/생물수/생물량 저하, 어류 및 조류물질에 유해물질 축적, 광합성 저해, 적조유발생물 대증식, 오염내성강항 기회종(갯지렁이) 우점 현상

○ 사회적 영향
어업/생태/국민보다 경제/기업 우선 풍조, 사회문제화 및 사회적 비용 발생, 적조 발생, 수산물 불신 초래, 환경문제에 대한 도덕적 해이 유발

○ 경제적 영향
1960년대부터 2015년 기간도안 기업비용 절감, 어업 생산량 저하 및 어업금비 피해, 적조확산 어업 피해

○ 정책적 영향
환경부의 육지환경부화, 해수부/해경의 해양투기 보조기구화, 1990년대 후반 직매립 금지로 풍선효과, 폐기물관리 및 해양관리법 제정되었지만 해양투기 합법화 유도, 육상처리기술의 발전 저해

○ 건강적 영향
어류 질병 발생, 오염 어류 섭취로 국민건강 피해

○ 국제적 영향
주변국 해역 오염 확산으로 인한 외교 분쟁, OECD유일 폐기물 해양추기국가로서의 오명

-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 정리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