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희한한 현상입니다. 한 집에서 두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 컷오프에 대한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의 말과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말이 다릅니다.
홍창선 위원장은 정청래 의원 컷오프를 '국민 눈높이로 판단한 것'이라며 같은 막말이라도 국민이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게 있고 덜 알려지는 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론의 파장을 고려했다는 뜻이었습니다. 홍 위원장은 심지어 정청래 의원 컷오프에 여론 재판 성격도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헌데 김종인 대표의 말은 다릅니다. 김종인 대표는 오늘 자(3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청래 의원 등의 컷오프에 대한 반발과 관련해 "마치 SNS에서 소란스러우면 당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입을 뗀 뒤에 "내가 보기엔 당에 질서가 없다"고 말했고 "몇몇 의원이 이러쿵저러쿵한다고 해서 내가 추종하고 따라갈 것 같은가"라고 말했습니다. 당 안팎의 반발 여론에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겁니다.
공천관리위원장은 여론을 따라간 것이라고 하고, 비대위 대표는 여론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화자의 차이로 이해할 여지는 없습니다. 홍창선과 김종인 두 사람의 이심전심 관계로 볼 때 둘을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인물로 갈라치기 할 이유와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의 궁극적인 주장은 같습니다. 정청래 컷오프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니까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여론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홍창선 위원장이 얘기한 여론과 김종인 대표가 얘기한 여론이 다른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전체 국민 여론이고 후자는 SNS상의 여론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 여론은 따르되, SNS 상의 '일부' 여론은 내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데 형식상 하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용상 근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공천관리위는 무슨 근거로 전체 국민 여론이 나쁘다고 판단했는지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짚을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김종인 대표의 SNS 여론에 밀리지 않겠다는 발언을 확장해 해석하면 단순한 여론, 겉만 번지르르한 인기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공당이 국민에게 '우리 후보를 뽑아주십시오'라며 공천할 때에는 그 정도의 책임성이 있어야 합니다. 역으로 국민의 대표인 현직 국회의원을 공천 배제할 때에도 똑같은 책임성이 있어야 하고요.
정청래 의원 컷오프 과정에서 이런 책임성을 담보하는 가치를 여론보다 우선시했다면 수긍할 여지가 있습니다. 더민주가 정말 책임성을 다 하기 위해 '읍참청래'한 것이라면 납득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여론을 뛰어넘는 책임성의 가치, 그게 뭘까요?
김종인 대표는 그걸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를 강조했습니다. "내가 추종하고 따라갈 것 같은가"라고 반문함으로써 SNS 여론이나 당내 몇몇 의원의 의견보다 '나'에게 가중치를 더 줬습니다. '나의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밝히지 않은 채요.
김종인 대표가 SNS 여론에도 밀리지 않고, 당내 몇몇 의원의 이러쿵저러쿵에도 따라가지 않을 정도로 확실히 고수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야 합니다. 이건 중대 문제입니다. 고압적으로 '묻지마 순종'을 강요하는 태도인지, 개방적 자세로 '합리적 설득을 시도하는 태도인지를 가르는 분수령이기 때문에 중대 문제입니다.
김종인 대표는 당내 질서를 강조했던데 '나의 그것'을 밝히는지 여하에 따라 그 질서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가치의 공감에서 비롯되는 질서는 자발적 참여의 띠 잇기로 이어지겠지만, 권세에 짓눌린 질서는 교관의 호각소리에 맞춰 형성되는 일렬종대식 질서로 전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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