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리에게 있어 그렇게 '유치한(?) 동맹'일 수 밖에 없을까?
며칠 전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 아파치 롱보우 공격헬기 20여대가 아프가니스탄으로 차출된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를 가장 먼저 보도한 매체는 <동아일보>와 <세계일보>인데 두 신문을 보고 있으면 미국은 우리의 '전략동맹'이 아니라 대단히 '신경질적인 동맹'에 불과하다.
두 신문은 미군 헬기의 아프간 차출이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의 아프간 재파병 요청을 거부한 데 대한 일종의 우회적 대응, 혹은 주한미군 방위비분담협상에 대한 일종의 압력 정도로 분석했다.
이 논지대로라면 미국은 대단히 신경질적이고 보복적인 동맹에 불과하다.
아파치 헬기의 아프간 차출을 사실상 '미군의 철수'로 이해하거나, 한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번복하는 것이라는 것이 언론들의 또 다른 시각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주한미군의 현병력 규모 유지가 미국 측의 단순한 립서비스일 수 있다는 염려가 높아지고 있다(매일경제신문 5월 1일자 A7면)", "한미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을 뒤집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세계일보 5월 1일자)"는 기사와 "미군 감축 없다더니 아파치 대대 빼갈건가(동아일보 5월 1일자)"는 사설이 그렇다.
다시 문제는 '전략적 유연성'이다.
과연 그러한가? 결론은 다 틀렸다는 것이다. 이 모두는 한국 언론의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무지 혹은 무관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필자의 입장은 분명했다.
"참여정부는 2001년 미국 4개년 국방계획(QDR)에 따른 세계전략의 변화로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이 변경되고 그로 인해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GPR)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이로 인해 한반도 안보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했다.(필자, 프레시안, 2006. 8. 14, 졸저 "한국외교의 새로운 도전과 희망(2006), 97쪽)"
미국의 입장도 일관되고 분명했다.
"국익을 위해서는 하나의 군사력만이 존재하며, 미국 국민들은 한 나라의 방위만을 목적으로 하는 병력 주둔은 감당할 수 없다(2005년 10월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방한 시 발언)"
한미관계와 북핵6자회담에 있어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도 "한미동맹관계를 현대화하려는 한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이 지역에서 전략적유연성을 추구하는 미국의 노력과 일치한다.(2006년 9월 27일, 미 하원 국제관계위 청문회)"고 증언했다.
2006년 1월 19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장관급 전략대화에서 한미양국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합의했다.
당시 필자는 "전략적 유연성은 단순히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와 동북아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한미동맹의 핵심현안이다. 나아가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성패를 결정하고 훗날(혹은 가까운 시일 내) 정치적·역사적 책임까지도 거론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고 평가한 바 있다.(오마이뉴스 2006. 1. 23)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끝까지 부인하고 강변했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것은 한반도의 미군을 함부로 빼서 아무데나 이동하고 작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니냐, 이름은 전략적 유연성으로 하고 있지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현재 없습니다.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허용하지 않았는데 일부 언론이나 일부 사람들은 제가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는 것으로 계속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2006년 8월 27일, 노사모 청와대 방문 시 발언)"
그렇지만 현 이명박 정부의 외교통상부 장관이자 참여정부 외통부 제1차관을 역임한 유명환은 2006년 8월 25일 당시 국회에서 필자의 질의에 대해 동의한 바 있기 때문에 그와 이명박 정부도 현재의 재배치가 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유 차관은 "작통권 환수나 전략적 유연성이나 신속배치개념은 포괄적으로 보면 다 연관되는 개념"이라고 답한 바 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근거한, 그리고 한미간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에 근거한 그 현실이 다가왔을 뿐이다. 아파치 헬기의 아프간 차출은 미군 철수가 아니다. GPR에 근거한 주한미군의 일시적 재배치다. 전략적 유연성의 인정으로 더 이상 주한미군은 대북억지력 차원이 아니었다.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신속기동군의 성격을 갖게 됐었다. 한국에 주둔의 근거를 두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를 저지할 어떠한 명분이나 협정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한국 언론은 이런 당연한 결과와 논리를 그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미국은 언제라도 한반도에 미군을 증강할 수도, 미군을 줄일 수도, 혹은 미군을 일시적으로 증강했다 줄였다 할 수도 있다. 병력도 마찬가지고 물자도 마찬가지다. 주한미군은 한국에 있는 미군일 뿐이다. 한국을 위한 미군이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전략적 유연성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거기다 전략동맹의 논리까지 강화시켰으니 무슨 몰이해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래서 아프간 차출은 한미정상의 합의를 뒤집는 행위가 아니다. 한미간의 합의에 근거한 지극히 정상적인 군사적 조치일 뿐이다. 이런 식의 발상이야말로 반미를 조장하는 일이다.
아프간 차출은 한국의 비협조에 대한 미국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아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른 지극히 전략적이고 순수한 군사적 조치일 뿐이다.
필자는 일부의 도움으로 지난 2006년 1월 이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대부분의 보수언론은 '기밀 누출'로 규정하고 필자와 한 공직자를 철저히 '강경반미자주파'로, 혹은 '돈키호테'로 매도했다. 심지어 어느 진보언론마저도 '공작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시인까지 한 유명환 장관은 해당 공직자에게 강한 불이익을 줬다.
그때부터 필자는 일관되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은 '대북억지력' 차원에서 미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면개정'에 해당되기 때문에 정상적인 조약의 개정절차를 밟자는 것이었다. 한미동맹관계의 전면적 전환에 해당되기 때문에 토론하고 공론화과정을 밟자는 것이었다. 왜 이런 중대하고 명백한 사실을 비밀리에 이행하느냐는 것이었다.
진실을 외면하고 은폐로만 일관하며 국익은 도외시한 채 '친미 반미'라는 이분법 구조로만 한미동맹관계의 모든 사안을 재단하는 태도야말로 한미관계를 왜곡시킨다는 사실이 이번 아파치 공격헬기의 차출이라는 현안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있다. 누가 과연 '풍차를 거인으로 알고 로시난테에게 박차를 가하며 돌진하는 돈키호테'인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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