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흔히 '수담(手談)'이라고 한다. 손으로 하는 대화라는 뜻이다. 바둑판에는 361(19*19)개의 점이 있다. 여기에 돌을 놓는 경우의 수는 천문학적이다. 워낙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탓에, 사람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성격이 급한지 느긋한지, 대범한지 소심한지, 바둑 몇 번 둬보면 알 수 있다. 마치 속 깊은 대화를 나눈 것처럼 말이다.
알파고는 계산기가 아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게임에서 기계가 인간을 이겼다. 9일 오후 1시에 시작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1국에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다. 알파고가 단지 수 계산에만 능해서 거둔 승리였다면, 그리 놀랍지 않다. 하지만 이날 대국 해설자는 "양쪽의 이름을 가리고 본다면, 누가 이세돌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가 마치 사람처럼 바둑을 뒀다는 게다. 사람처럼 실수도 했다. 리듬도 탔다. 기세가 잔뜩 오르기도 했고, 숨을 고르기도 했다. 이날 대국 관련 정보가 없는 사람이 봤다면, 재기 발랄한 신예 기사(棋士)가 나타났다고 평했으리라.
이날 대국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이세돌의 7번째 수였다. 바둑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변칙수'였다. 이세돌은 이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알파고는 논리에 따라 움직이므로,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면 판이 흔들린다.'
하지만 틀렸다. 알파고는 이런 변칙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해설자들이 알파고를 '괄목상대'한 것도 그때부터다.
알파고는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해설자들이 이날 대국을 중계하며 사용한 표현이 재미있다. "알파고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알파고가 당황했다.", "알파고가 '멘붕'에 빠졌다.", "알파고가 정신 차렸다."
욕망하는 인간, 컴퓨터가 넘을 수 없는 경계
실수하고 당황하며, '멘붕'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리는 컴퓨터. 이쯤 되면 '신인류'의 탄생에 가깝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다.
컴퓨터가 아무리 '인간적인' 바둑을 둬도,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다. 컴퓨터에겐 욕망이 없다. 바둑을 못 두던 녀석이 어느 날 나를 뛰어넘는 실력을 보이면, 사람은 질투를 느낀다. 수학 문제는 나보다 훨씬 잘 푸는 녀석이 유독 바둑은 나를 못 이기면, 쾌감을 느낀다. 전체 승률이 망가지더라도, 저 녀석만은 꺾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두 욕망을 가진 인간이기에 겪는 일이다.
컴퓨터와 인간 사이의 경계는 아직 분명하다. 컴퓨터에게 욕망을 심어서 이익을 얻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려우므로, 이런 경계는 앞으로도 유지될 게다.
지식 서열로 위계 정하는 사회, 컴퓨터가 도쿄대학 합격하면?
대중의 관심은, 욕망을 모르는 신인류가 언제까지 우리에게 봉사할지에 쏠려 있다. 우리는 지식과 지능의 서열로 사회적 위계를 정하는데 익숙하다. 각종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걸 공정하다고 본다.
그런데 머리 쓰는 일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앞질렀다. 그것도 단순 계산 또는 정보 저장이 아닌, '손으로 하는 대화'에서다.
사실, 시험도 이젠 컴퓨터가 더 잘 친다. 일본에선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매년 대학입시 모의고사를 친다. 사람과 똑같은 조건으로, 즉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시험을 봐도 도쿄대학교 합격권 점수를 받는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에게 인터넷 접속을 허용하고 시험을 치게 한 적도 있다. 당시 일본 누리꾼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그건 불공정하다.' 어차피 상대는 컴퓨터일 뿐인데, '공정성'을 따져서 어쩌겠다는 건가.
아마도 불안 심리 때문이었을 게다.
'컴퓨터가 내 일자리를 빼앗는 건 아닐까.' '나를 가르치고 지휘하며 통제하는 자리에 컴퓨터가 들어서는 건 아닐까.'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9일 오후 내내, 숱한 직장인들이 이런 불안감을 토로했다. 시험 잘 쳐서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머리 잘 써서 진급했다. 그런데 컴퓨터가 머리 쓰는 일로 인간을 이긴다면, 좋은 직장과 윗자리는 컴퓨터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당장 자식 학원비가 밀린다. 이를 어쩌나.
'범용 인공지능'은 멀었다
김진형 카이스트 명예교수가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인공지능 분야의 원로 학자인 그는 "알파고는 바둑만 둘 줄 알지만, 이세돌은 퀴즈도 푼다"고 말했다.
'범용 인공지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껏 나온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특정 목적을 위해서만 쓰인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상당 부분은 '범용 지능'에 의지한다. 바둑 두고, 퀴즈 푸는 능력을 두루 활용한다. 종합적인 판단 능력이 필요한 일, 윗사람의 업무는 더욱 그렇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하지만 대국 시간 등 세부 규칙은 미묘하게 알파고에게 유리했다. 규칙을 누구에게 유리하게 정할지, 그에 따른 책임은 어떻게 질지 등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간의 몫이다. 판단하고 결정하며 책임지는 일자리는 안전할 게다.
기계와 공생하는 시대
변수는 또 있다. 에릭 브린욜프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 같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앤드루 맥아피 교수 등은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줄이는 게 사실이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라서 전통적인 거시경제학 처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기계가 사람의 역할을 온전히 대체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체스 게임을 예로 든다. 바둑보다 앞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정복한 영역이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꺾은 게 지난 1997년이다. 이후 체스 산업이 확 시들었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최종 패배한다면, 바둑 산업도 같은 운명을 맞게 되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반전이 있었다.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와 앤드루 맥아피 교수가 진짜 주목하는 건 이 대목이다. 분명히 사람은 이제 체스 시합에서 컴퓨터를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과 컴퓨터가 협력하면, 달라진다. 최고 수준 소프트웨어를 꺾는 사례가 나온다. 체스 인기가 전보다 덜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방식으로 체스를 즐기는 이들이 생겨났다. 사람과 컴퓨터가 팀을 이뤄서 시합을 치르는 것이다.
이는 다른 일자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사람과 기계는 앞으로 긴밀한 공생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게다. 지금까지는 인맥과 수완이 좋은, 즉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잘 이끌어내는 이들이 주로 성공했다. 앞으로는 새로운 조건이 붙는다. 기계와 잘 협력하는 이들이 살아남는다.
그래도 일자리는 줄어든다
요컨대 앞으로도 계속 일자리를 유지하고 싶다면, 다음 조건 가운데 하나는 갖춰야 한다. 첫 번째는 '종합적인 판단 능력'이 필수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아직 '범용 인공지능'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기계와 공생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제껏 기계가 도입되지 않았던 분야에서 기계를 활용한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제3의 대안도 있다. 궂은 일을 하는 것이다. 지금 등장한 인공지능 기술은 관련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 있어야만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문서로 남기기 힘든 지식(암묵지)에 의지하는 일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의 몫이 된다. 간병인, 배관공 등이 그렇다. '모라벡의 역설'이 적용되는 경우다. 사람에게 쉬운 일이 로봇에겐 어렵고, 사람에게 어려운 건 로봇에게 쉽다는 뜻이다. 예컨대 자연스런 걷기 동작을 구현하는 건 로봇공학자에게 대단히 어려운 과제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크게 두 가지다. 어찌 됐건 '좋은 일자리'의 절대치는 줄어든다. 그게 첫 번째다. '종합적인 판단 능력'이 필요한 일은 주로 윗사람의 몫이다. 피라미드 조직의 아랫부분에 있는 다수는 어쩔 건가. 또 모든 노동자가 기계와 공생하는 법을 터득하기는 어렵다. 먼저 적응한 소수는 살아남겠지만 나머지 다수는 불안하다.
'궂은 일'을 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기계로 대체할 수 없다고 해서 꼭 '좋은 일자리'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억지로 '궂은 일'에 내몰린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궂은 일' 하는 여건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숙련으로 향하는 사다리가 치워졌다
두 번째는 세대 문제다. 앞서 '종합적인 판단 능력'을 갖춘 사람은 살아남으리라고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다. 예컨대 제조 업체 사장은 대개 현장 엔지니어 출신이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했다. 그러다 차츰 업무 범위를 넓혀가서 결국 사장이 됐다. 그 과정에서 긴 시간이 걸리고,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다. 그렇게 탄생한 사장의 업무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발달과 자동화의 진행은, 과거 신입사원이 하던 업무를 빼앗아간다. 이는 지엽적인 일부터 시작해서 차츰 업무 범위를 넓혀갈 기회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미 '종합적인 판단 능력'을 갖춘 사람에겐 계속 기회가 열리지만,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겐 사다리가 사라진다는 뜻이 된다.
인공지능 발달로 줄어들 일자리 가운데 하나로 회계사가 꼽힌다. 회계사가 아예 사라진다는 걸까. 그건 아니다. 숙련된 회계사가 기계의 도움을 받아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전체 회계사 일자리는 줄어든다.
문제는 지금 숙련된 회계사 역시 과거에는 실수를 연발하는 초보자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초보 일자리가 줄어들면, 젊은 회계사는 영원히 미숙련 상태로 남아야 한다.
이런 논리는 모든 업종에 적용된다. 로봇 기자가 기사를 쓴다. 그래도 사람 편집자 혹은 기자가 기사를 검토하고 손질해야 한다. 그 일자리는 숙련도 높은 선배의 몫이다. 선배 기자는 이미 다양한 시행 착오를 경험했다. 반면 젊은 기자가 업무 경험 속에서 숙련도를 높일 기회는 확 줄어든다. 이는 세대 갈등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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