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지도부에서 총선 전략과 관련해 이견이 공개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김한길 상임선대위원장은 새누리당의 개헌선 확보 저지를 최우선 목표로 제시하며 '양당 기득권 체제 타파'를 내세우고 있는 안철수 대표와 각을 세웠다.
김한길 위원장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열린 국민의당 선대위 모두발언에서 "총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며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야권이 개헌 저지선(100석) 이상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장의 주어부터가 '국민의당'이 아닌 '야권'이다.
김 위원장은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당이 개헌선을 넘어설 때 나라와 국민이 감당해야 할 끔찍한 상황"이라며 자신이 공천관리위 면접 때 면접관의 질문에 답했던 경험에 대해 말했다.
"한 면접관이 제게 공격적으로 물었다. '야권 통합 얘기가 있는데,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교섭단체(20석) 이상을 확보해 3당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당이 교섭단체 이상 의석만 확보하면 여당이 개헌선을 넘든 말든 상관 없다는 식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야권의 개헌 저지선을 지키는 일은 나라와 국민과 역사를 지키는 일이다. 우리 당만 생각하는 정치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정치를 해야 한다. 여당이 180석 이상을 확보하면 캐스팅 보트도 없어지고 식물 국회가 될 텐데, 그 때 교섭단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저는 답했다)."
이는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는 식으로 돌려 말하긴 했으나. 사실상 안철수 대표의 '통합 불가론'에 대한 노골적 비난에 가깝다. 김 대표는 이어 "'통합적 국민저항체제'가 꼭 필요하다. '현 집권세력의 확장성을 저지한다'는 대원칙에도 우리 모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적 국민저항체제"라는 말은 안 대표가 더민주(당시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기 전부터 강조했던 말이며, "현 집권세력이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말 역시 2012년 대선 당시부터 안 대표가 해온 말이다. 김 위원장은 "참으로 절박한 심정"이라며 "집권세력의 개헌선 확보 저지를 위해서라면 광야에서 모두 죽어도 좋다는 식의 비장한 각오로 이번 총선에 임해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그러자 안철수 대표가 공개 석상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안 대표는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총선을 통해 국가 미래상을 국민들께 제시하고 국민의 판단을 구할 책무가 있는데도, 눈에 띄는 총선 정책 이슈를 내놓지 않고 집안 싸움으로 날을 새고 있다"고 새누리당을 비난하면서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을 믿는다. 이런 퇴행적인 새누리당에 개헌 저지선이 무너지는(새누리당이 200석 이상을 확보하는) 결과를 국민들께서 주시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저희들의 목표는 기존의 거대 양당 구조를 깨는 일"이라며 "무조건 통합으로 이기지 못한다. (이는) 익숙한 실패의 길이다.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이고 낡은 야권을 재구성할 때"라고 했다.
김 대표와 함께 '통합파'로 분류됐던 천정배 공동대표, 안 대표와 생각이 비슷한 '독자파'로 분류되는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은 김한길-안철수 논쟁에 가세하지 않았다. 이상돈 위원장은 "우리가 제3당으로 서는 목표와 야권이 100석 이상을 확보하는 목표는 양립할 수 있다"고 중재안 같은 의견을 냈고, 천 대표는 "야권의 텃밭인 호남에서부터 패권 체제를 해체하고, 야권 주도세력 교체를 통한 총선·대선 승리로 국민께 희망을 드려야 한다"며 "이번 선거는 유능하고 헌신적 인물을 진출시키는 인물 선거여야 하고, 낡은 야권을 재구성해 정권교체 가능성을 여는 야권 재구성 선거여야 한다"고 기존의 주장만 반복했다.
안철수는 새누리당, 김영환·박주선은 더민주 노골적 비난
한편 이날 선대위 회의에서 안 대표는 새누리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해 눈길을 끌었다. 안 대표는 "'친박'은 전국을 돌며 '진박 밀어주기 쇼'를 벌이다 당내 분란을 키우고 있다"며 "이번 주부터 더 심각한 사태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안 대표는 친박계의 새 실세라는 평을 듣는 최경환 의원에 대해 "칙전 경제부총리라면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가 무엇이 돼야 하는지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당연한데, 그 분은 무슨 감별사라며 이 후보 저 후보 개소식에 얼굴을 내밀고 동영상 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안 대표는 또 "국가의 장래를 책임져야 할 집권당에서 '살생부'라는 말이 유통되고 있다"며 "'살생부'는 560년 전 계유정난 때 나온 용어다. 미래로 가야 할 우리나라가 과거로 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갔다"고 비꼬았다. 그는 "이런 퇴행적 정당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국가 비전 제시보다 치졸한 내전에 몰두하는 정당에 단호한 회초리를 드는 4월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이런 당에 200석 이상을 주실 리 없으니, 무조건 통합보다 양당 체제 타파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
더민주에 대한 직접적 비난도 있었다. 김영환 의원은 "우리 당세가 약하지만 새누리당의 당선을 막는 일에 주력해야 하고 더민주를 떨어뜨리는 공천을 해서는 안 된다"며 "그런데 최근 벌어지는 더민주 공천을 보면 그 원칙이 통합·연대와는 다른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예를 들어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공천은 우리 당 대표(천정배 공동대표)의 발을 묶는 데 치우쳤다"며 "또 비리와 전과 때문에 공천하지 않은 사람을 저를 표적으로 (공천을) 진행하고 있고, 문병호 의원 지역에 영입 인사 표적공천, (송영길 전) 인천시장을 최원식 의원 지역구에 배치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주적(主敵)인 새누리당과 대치선을 만들기보다 야당 간 각축을 이루게 된다"고 말했다.
박주선 의원도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도를 넘었다. 국민의당 흔들고 부수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총선 승리보다 더민주의 야권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치졸한 '새누리당 2중대' 전술"이라고 비난했다. 박 의원은 "김종인 대표는 국민의당을 고립시키고 안철수 대표를 고사시켜 문재인 전 대표를 야권 대선후보로 옹립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렇게 된다면 정권 교체 희망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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