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가 일본 정부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대해 "자기 발등을 찍은 총체적 실패"라고 평가했다. 3일 이 신문의 금융전문 칼럼니스트 질리언 테트는 "일본의 통화정책은 과녁을 빗나갔다(Japanese monetary firepower misses the mark)'는 칼럼을 통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역풍만 초래하고 있다면서 관련 사례들을 열거했다.
칼럼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6개월 전 민영화를 단행한 일본우체국은행(JPB)은 당시 12조 엔 상당의 주식을 공개매각했다. 일본 정부가 상장 효과로 기대한 것은 개인투자자들이 현금을 써서 자산을 인수해서 경기부양에 도움이 된다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지난 1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단행하면서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그 여파로 JPB의 주가는 상장 이후 최고점보다 34% 떨어졌다. 상장가(1450엔)과 비교해도 20% 넘게 밀렸다.
JPB의 주가가 이렇게 폭락한 이유는 이 은행이 운용하는 자산 절반 정도가 바로 일본 국채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공기업 JTB의 민영화로 풀린 주식 공모로 수익을 노렸던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은 현금을 쓴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일본 우체국은행 공모주 주가, 마이너스 금리로 폭락
도쿄증권래소에 상장된 JPB 등 우정 관련 3개사에는 투자자 180만 명이 몰려 일본 정부는 12조 엔에 달하는 자금을 모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현금을 정부에 헌납한 처지가 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기업과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현금 자산을 운용하러 나서게 만들어 경제성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는 중앙은행에 맡겨진 10조 엔의 자금에만 적용된다. 게다가 10조 엔의 자금 중 8조 엔은 바로 JPB가 맡긴 자금이다. JPB는 대출영업이 허용되지 않은 은행이다. 마이너스 금리로 금융기관들이 중앙은행에 맡긴 돈을 적극적으로 대출할 것이라는 효과가 나오기 어려운 포트폴리오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효과로 크게 기대했던 엔저 유도도 정반대로 나타났다. 지난달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7%나 올랐다. 세계 3대 경제대국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쓰는 상황에 대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오히려 안전자산으로서 엔화를 집중 매입한 것이다.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으로 통화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 따라, 기업들이 임금 인상을 해서 총수요의 여력을 늘리는 방안도 여러 경제학자들이 제안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도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 취임 이후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을 촉구하기는 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호응은 미지근했고, 이제 마이너스 금리 정책 하에서 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나설 가능성은 더 약해졌다.
일본 국민들이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맞아 돈을 더 쓰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물 건너 갔다. 일본의 대표은행인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은 예금 금리를 연 0.001%로 내렸다. 1000만 원을 맡기면 1년 이자로 100원에 불과하고 예금 수수료까지 낼 경우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손해다. 그 결과 최근 일본에서 개인 금고는 두 배 이상 판매가 늘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라는 극단적 처방으로 역풍을 맞고 있는 일본은 디플레이션에 빠져드는 경제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것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투자나 소비가 늦춰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경제가 쪼그라드는 과정에 들어선 것을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경제학자들이 "대책이 없다"면서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 바로 디플레이션이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현재 세계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선진국 여러 곳에서 채택하고 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세계 경제에 상당히 불길한 징조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채권왕'이라고 불리는 빌 그로스는 3일(현지시간) "마이너스 금리는 금융산업을 주동력으로 하는 금융경제가 몰아쉬는 마지막 숨에 가깝다"고 말했다. 실물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데, 돈을 찍어내서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을 거듭하면서 자산가격만 부풀리고 총수요는 더욱 위축되는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특히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자산운용으로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무력화 시키면서 금융산업 비중이 큰 경제를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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