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9일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기준 금리를 기존의 0.1%에서 -0.1%로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채택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달러와 함께 글로벌 안전 통화로 선호되는 엔화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이 정책을 글로벌 시장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오는 15일부터 시중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새로 예치하는 지급준비금 초과 자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관료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돈의 가치는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재가 더 높기 때문에 금리는 어디까지나 플러스여야 한다는 상식을 깨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채택한 나라는 일본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012년 덴마크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채택했고, 2014년에는 스위스와 유럽중앙은행, 지난해 스웨덴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택했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일본까지 가세하면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한 경제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숨에 4분의 1에 육박하게 됐다. 선진 경제권에 이렇게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집중된 것은 자본주의 중심의 글로벌 경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극명한 지표다.
마이너스 금리로 돈을 돌게 한다고?
일반적으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기대하는 효과는 한마디로 시중 은행은 대출을 많이 해주고, 일반인들에게도 저축할 생각말고 돈을 빨리 쓰라고 압박해서 시중에 돈이 돌게 하는 것이다. 일본은행도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결정한 대외적인 명분도 바로 이런 효과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곧바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이유는 금리가 높아서가 아닌데,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 처방을 하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일본은행의 금리 결정 기구에서도 마이너스 금리 방안은 위원 9명 중 찬반 5대 4로 통과될 만큼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와 관련, 2일(현지 시각) <월스트리저널>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일본을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동산 같은 특정한 영역에는 강력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마이너스 금리는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을 지원하고, 외국의 관광객을 끌어모아 호텔 등 관광 산업과 관련된 부동산 부문에 자금을 돌게 하는 효과는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문에 따르면, 아베 정권 하에서 지난 3년간 대대적인 통화 팽창 정책을 썼지만, 실물 경제에 흘러가는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의 대형 은행들은 넘쳐나는 돈을 더 이상 대출할 곳을 찾지 못해 일본은행에 과도한 예치금으로 맡겨두어 0.1%의 이자를 받는 편을 택했다. 가뜩이나 20년 넘게 지속된 장기 불황에 기존 대출들이 부실해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대출은 오히려 부실만 늘릴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시중 은행의 초과 예치금에 대해 0.1%의 이자 대신 0.1%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결정한 정책은 바로 시중 은행의 이런 행위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결정이 발표되자, 일본의 주요 대형 은행들의 주가는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대출할 곳을 찾지 못할 게 뻔한 시중 은행들의 수익성만 나빠질 것이 뻔하다는 시장의 우려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저널>은 "은행이 대출을 더 해줄 수 있고, 마이너스 금리를 이용해 대출을 하려는 수요가 있을 곳이 있기는 하다"면서 "가장 확실한 곳이 부동산"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호텔 건설이 늘어날 수 있다. 일본의 엔저 정책으로 외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며 호황기를 맞고 있는 관광 산업으로 현재 호텔이 부족한 상황인데, 엔저를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태준 마이너스 금리로 이 분야의 전망이 더 밝아졌다는 것이다.
"부동산에 돈이 몰릴 것"
신문은 "일본 은행은 마이너스 금리를 결정함으로써 새로운 호텔, 아울렛, 각종 관광 시설 건립에 들어가는 자금 비용을 싸게해준 것"이라면서 "부동산 개발 업자들이 이 정책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투자자들도 부동산 관련 신탁 등 투자 상품에 고수익을 노리고 몰려드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일본의 양대 부동산 업체인 미쓰이부동산과 미쓰비시부동산은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결정 직후 2거래일만에 도쿄 증시에서 각각 12%, 9.7% 폭등했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취한다고 시중 은행이 실물 경제 전반에 대출 공급과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택한 것은 엔저 정책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아베 정권은 엔저 정책을 몰아붙이면서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돈줄을 죄자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와 함께 엔화를 안전자산으로 선호하는 바람에 엔화도 덩달아 강세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엔저를 위한 극약 처방으로 나온 것이 바로 마이너스 금리라는 것이다.
일본 외환 당국은 엔화 가치를 달러당 115엔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엔저 정책을 밀어부쳐 125엔 수준까지 떨어뜨렸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 등으로 마지노선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 처방을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노골적인 환율 조작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글로벌 시장 불안감 고조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택하면서 중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위안화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운용하는 SDR이라는 특수통화바스켓에 편입이 되었다. 중국은 국제 통화로서의 위안화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위안화 환율을 SDR의 평가에 연동하겠다는 정책을 쓰고 있다. 그런데 SDR에는 엔화도 포함이 되어 있어 엔화가 마이너스 금리로 약세로 가면 가뜩이나 위안화 약세를 예상한 자본 유출로 비상이 걸린 중국 당국은 대책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때문에 미국의 CNBC 선임분석가 론 인사나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금리 정책을 금리 인하 기조로 되돌리지 않으면 전세계적으로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경제권들은 지금 모두 금리를 내리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까지 채택하면서 통화 팽창 정책을 쓰는데,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은 돈줄을 죄는 정책을 쓰고 있다. 글로벌 경제 체제가 미국만 고립된 채 계속 잘 나갈 수 있다면 모르지만, 글로벌 경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금리 정책도 '나홀로 인상' 쪽으로 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금리 인상이 아니라 당분한 동결을 한다고 해도 일본처럼 다른 경제권은 마이너스 금리까지 채택할 정도인 상황에서는 간극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미국도 다시 금리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글로벌 경제의 불안을 더 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폭을 추가로 확대할 수 있다고 시사하자, 3일 일본 니케이 지수가 3%가 넘는 폭락세를 보이고,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는 등 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가 글로벌 경제의 불안감을 자극해 오히려 안전자산으로서 엔화를 선호하는 양상으로 간다면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는 부동산 거품만 부추기는 역효과만 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