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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어떻게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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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좋은 죽음'을 준비하기

10여 년간 같은 분들과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독서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편식하지 않고(물론 일정한 방향성은 있지요) 여러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저보다 연배가 높은 회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을 갖가지 방식으로 조리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매개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한 시간은 자칫 병만 생각하고 사람과 세상을 놓치기 쉬운 저와 같은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배움의 시간입니다. 지난달에는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이 올라오는 봄의 문턱에서 죽음을, 그것도 우연히 한의원의 환자 대기실에서 이야기하게 된 것이 조금 묘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 "7080 세대, 더 늦기 전에 죽음을 준비하라!")

두 시간이 넘게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각자가 처하거나 경험한 병과 죽음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는데, 몇 가지 내용에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죽음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죽음은 극적이거나 아름답기보다는 고통스럽고, 그 사람이 살아온 아름다운 인생을 퇴색시킬 수도 있는 추한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죽음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산 자는 죽음을 모르고 죽은 후에는 내가 없으므로) 타인의 것이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을 뿐, 알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평소 아무리 최후의 순간에 관해 마음의 준비를 계획했다 해도, 정작 그 순간이 왔을 때 과연 이전에 결심했던 것처럼 실행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사람도 있지만(이 또한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생존의 의지가 적극적인 선택보다는 클 것 같다는 의견이 적잖았습니다. 지금 책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써 분명 이전과는 태도가 달라지겠지만, 정작 자신이 죽음 혹은 그 과정에 접어들었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깊이 공감하고 우려한 것은 내 삶의 자율성을 잃은 상태로 오래 살아있으면서 서서히 사그라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정한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무너지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생존해 있으나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의 삶이 몇 년이고 이어질 때의 고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었지요. 죽음은 살아있는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두려운 것이지만, 짧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것보다 천천히 허물어져 가는 상황이 더 두렵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이 단계에 접어들면 속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서서히 무너지는 것 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답답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요.

현대의 생명공학은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생명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길어질 것으로 전망하지만, 인간이란 종에 허용된 절대 수명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지금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았을 때 세상의 모습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으리란 생각도 하지요. 여하튼 인간은 진시황이 꿈꿨던 불사의 존재가 아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의 존재입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일상을 영위할 필요는 없겠지만, 죽음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이냐는 문제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이냐는 문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특히나 문명의 발달 덕분에 과거보다 오래 살게 될 확률이 커져 긴 노년을 보내야 하는 우리라면, 잘 늙고 잘 죽는 문제를 무시하거나 의사가 알아서 해주리라는 식으로 미뤄서는 안 욉니다. 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시간과 건강에 관해 모색해야 합니다.

먼저 어떻게 하면 건강 수명을 길게 유지할 것인가에 관해 생각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기능이 쇠퇴하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 가능하면 자율적인 삶을 영위할 수준의 건강을 유지하고 타인의 도움은 최소한으로 받은 채 죽음을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가진 유전적 소인이나 신체적․ 정신적 성향을 파악하고, 나에게 맞는 건강 습관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신묘한 치료나 약보다 일상의 좋은 습관은 확실하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러면서 필요할 때는 자신의 인생 로드맵에 맞춰 의사의 도움을 최소한으로, 선택적이고 주체적으로 받는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갑작스럽고 위태로운 순간을 다 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확률을 낮추고,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스스로 판단할 힘을 키우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가완디가 책에 언급한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의 마지노선'을 정해두는 것도 좋습니다. 특정한 치료를 받아야 할 경우, 치료 이후의 삶이 마지노선을 넘느냐가 치료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특정한 상황이 왔을 때 연명 치료를 할 것인가를 미리 결정해, 가족이나 주변에 알려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죽음은 없지만, 인간다운 죽음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것이 자신과 남은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는 "사실 신은 우리 인간을 질투해. 그들은 영원하거든. 하지만 우린 언젠가 사라지는 존재지. 인간은 항상 마지막 순간을 살지. 그래서 우리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거야"라고 말합니다. 미루지 말고 지금을 살고,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기억으로 남을 일을 좀 더 많이 만들며 산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지금보다 좀 더 간명하고 건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순간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 또한 언제고 흔들릴 지극히 개인적 생각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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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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