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명문 고등학교 '미스 포터스 스쿨(Miss Poter's School)'의 캐서린 G 윈저(49) 교장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엄격한 한국의 수업 방식과 수학능력평가시험과 같은 단일한 수험 시스템은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을 막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과열된 경쟁 속에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윈저 교장은 강조했다.
미스 포터스 스쿨은 미국 커네티컷주 파밍톤에 있는 사립 여자 고등학교다. 1843년에 학자이자 교육자인 세라 포터가 설립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딸이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누이이 도로시 부시 코흐,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학교 설립 당시에는 여성만을 위한 교육 그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로부터 150년 넘게 흐른 지금, 교육에서의 남녀 평등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더 많은 장애물을 넘어 사회로 나아간다. 국제교류 협력학교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은 윈저 교장과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 미국 고등 교육의 현실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지난달 29일 숙명여대에서 진행된 윈저 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이 인터뷰는 청소년 인문교양잡지인 <유레카>와 함께 진행됐다.
프레시안 : 미스 포터스 스쿨은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학교입니다. 설립 당시부터 파격적인 시도였고, 현재도 명문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윈저 교장 : 우리가 물려주고 싶은 것은 미래입니다. 학교가 설립될 당시에는 소녀들에게 교육의 특별한 기회를 주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탄탄한 학교 수업을 통해 남성들과 동일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죠. 사라 포터 여사가 학교를 설립했을 때는 여성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2015년 현재는 다릅니다. 현재 미국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같은 교육을 받을 뿐 아니라 2차 교육과정과 대학 과정에서 남성보다 더 높은 졸업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나 자리를 얻지는 못합니다. 큰 회사들이나 공공 기관의 고위직에 오르기도 훨씬 더 힘듭니다. 상업 분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2차 교육과정 뿐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후에 여성이 겪게 될 일들입니다. 이런 편견을 깨려고 합니다. 여성들 역시 고위직에 오르고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는 단순한 교양과목만 가르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높은 학업 성취도를 나타내지만, 남성보다 높은 개인의 성취를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혼과 출산 등이 여성이 자신의 일을 계속할 수 있는데 있어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윈저 교장 : 결혼한 여성은 육아 등 여러 부담을 지고 있고 출산휴가 등으로 경력의 단절도 겪게 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미국도 남녀의 수입 격차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것은 '워킹맘'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이 겪고 있는 불평등입니다.
학생들에게 이런 불평등을 헤쳐나가는 방법에 대해 얘기할 때, 저는 주로 자신에게 성취감을 주고 목적의식을 가질 수 있는 선택을 하라고 충고합니다. 직업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 대한 선택을 할 때, 때로는 목적에 따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은 가족을 돌보거나 자신을 부양하는 등의 해야만 하는 일일 때도 있고, 개인적이거나 직업적인 목표 달성과 같이 자신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일일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두 가지를 함께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한 가지 선택을 할 때, 어떤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하지만 길은 언제나 직선일 필요는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길은 목표로 향하게 되어 있죠. 여성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래서 유연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남자들처럼 일직선의 길을 달릴 수 없기 때문이죠.
내게 부족한 것을 생각하다가 그 생각에 짓눌리고 위축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부족한 것에 계속 매달린다면 앞으로 나아갈 시간도 낭비하게 되니까요. 물론 부족한 부분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한 점을 확실하게 지적해야 할 때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언제 싸워야 할지, 내버려 둬야 할지를 선택하는 것도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윈저 교장 : 우리 학교 졸업생 가운데 유리천장을 깨고 올라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여성 대사들 중에 우리 학교 출신이 몇몇 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는 콜럼비아 대학의 교육대학 창립자도 우리 졸업생입니다. 우리 졸업생들은 그 기록을 매번 새로 갱신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이뤄낼 때마다 우리는 세 가지 편견의 위협을 받습니다. 여성이 특정 분야에서는 제대로 일할 수 없다는 편견이 첫 번째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여성이어서 전쟁 상황에 대한 대처를 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대표적이지요.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 장관을 지낸 경력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또 세계적인 추세에 대한 선입견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이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은 남자다워야 하고, 남성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죠. '롤 모델'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여성스러운 모습을 생각하곤 하지만 실제 어떤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올라갔을 때는 자신의 성취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른바 '가면 증후군(impostor syndrome, 자신이 이뤄낸 업적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함. 성공한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편집자)'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인식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성공한 어떤 여성의 이름을 아는 것과 그녀가 어떻게 그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아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자신들이 만나게 될 유리천장을 깰 수 있게 돕는 것은 그 과정을 알게 하는 데 있습니다.
프레시안 : 여성운동은 한국에서도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윈저 교장 : 미국에서도 그렇습니다. 특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생길지도 모르는 요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각종 언론에서 다른 후보들과 끊임 없이 비교되고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유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라는 긍정적인 면과, 여성이나 엄마라는 이유로 조롱의 대상이 되는 부정적인 면을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기존의 여성운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1972년 발효된 '타이틀 IX(학교와 대학에서 여학생과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과 여러 법안들이 여성의 성공을 보장해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여성운동이 무엇인가, 여성운동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며,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존의 전제를 재정립해야 했죠.
프레시안 : 이 학교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표현 가운데 '소녀로 들어와서 여성으로 나간다(They came as girls; they left as women.)'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윈저 교장 : 처음 학교에 입학할 때는 어린 소녀입니다. 그녀가 나이든 소녀가 되고, 졸업하면 '고대인(ancient)'이라고 불립니다. 이제 고작 18살 밖에 안 됐지만 고대인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또 새로운 것을 배우며 나이가 들겠지만, 우리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통해 학생들을 유대 관계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자 기숙학교인만큼 다른 학교와는 다른 방식을 고수해야 합니다. 박식하고, 과감하고, 재기 넘치는 세계적인 여성 리더가 되는 길은 남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시안 : 아시아의 높은 교육열은 잘 아시겠지만, 한국은 그 가운데서도 교육열이 뜨겁기로 유명합니다.
윈저 교장 : 한국 교육 시스템의 엄격함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왔습니다. 이는 목표를 향한 아주 직선적인 접근 방식이죠. 그런 환경에서 자라 온 학생들이 (미스 포터스 스쿨에서)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고 있습니다. 현재 10명의 한국 출신 재학생들이 있는데, 엄격한 교육 시스템에서 자란 한국 학생들은 학습 분야에서는 놀라운 성취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수업에서 의견을 제시하거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뛰어나진 않습니다만, 가장 준비가 뛰어나고 학습에 대한 이해가 뛰어납니다.
프레시안 : 한국 교육 시스템의 단점은 없을까요?
윈저 교장 : 엄격한 한국의 수업 방식과 수학능력평가시험과 같은 단일한 수험 시스템은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을 막습니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다양한 스타일과 열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학부모들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과열된 경쟁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고 있으니, 사회적 감정적 발달이 제한될 수밖에 없죠.
프레시안 : 한국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윈저 교장 :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것을 읽고 보고, 경험하세요. 우리는 학생들이 다양한 사고 방식을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간행물이나, 개인 발행 매체, 소설 등 다양한 책을 더 많이 읽을수록 학생들의 사고 폭은 넓어집니다. 또 단순히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을 넘어, 자신이 사는 지역과 국가를 벗어나 세상을 보기를 바랍니다. 의문점을 가지고 생각하고 또 감동을 받는 경험은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이야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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