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에는 웬일로 구들 놓거나 손볼 일이 있어 얼굴에 종종 숯검정을 묻혔다. 숯검정이면 어떠냐. 송전탑 막아선 밀양 산골 마을 여든 넘은 할머니 집 구들 뚫는 일이며, 상암동 옛 석유 비축기지 허허벌판에 컨테이너 들여놓고 공방 운영하는 청년들 한겨울 따뜻하게 쉴 자리 만드는 일이었으니 나름 뿌듯하다. 말이 나왔으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숯은 귀한 필수품이었다. 숯검정이라도 귀한 걸 묻힌 꼴이다. 요즘은 미용에 좋다며 숯가루로 만든 차콜(charcoal) 팩을 얼굴에 덮는다. 숯의 용도가 어디 그뿐일까.
참 쓸모 많은 숯
숯은 탄소 덩어리이기 때문에 연기나 냄새가 거의 없어 주로 조리 화덕의 연료로 사용된다. 숯불에 구운 고기나 생선은 훈연이 베어 맛이 일품이다. 커피콩도 숯불에 볶으면 그 깊은 향미를 이루 말할 수 없다. 숯불에 잘 볶은 커피콩을 갈아 마시면 입안에 비단 물결이 흐르는 듯하다. 과거엔 불 힘이 좋은 숯을 만들기 쉽지 않아 사서 써야 하다 보니 농촌에선 장작을 그대로 사용했다. 솥 바닥엔 검정이 심하게 묻어났고 연기도 심했다. 숯은 연기도 적고 그을음이 없어 제삼 세계 도시에서 주방 연료로 아직도 많이 사용한다. 산업화한 도시는 가스화덕이나 전기화덕이 보급되어 이제는 가정용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다만 요리용 화로에 이용된다. 호사 취미를 가진 이는 요리용 숯도 용도에 따라 달리 사용한다.
숯은 먹을거리에도 쓰인다. 장 담글 때 좋은 숯은 필수다. 몸에 좋다 하여 식용 숯가루를 먹는 이들도 있다. 습도 조절 능력이 있어 숯을 쌀통에 넣어두면 쌀벌레를 막는다. 어디 이뿐이랴. 숯의 용도와 찬미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끝이 없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대략 이렇다.
숯엔 수많은 기공이 있어 탈취, 제습, 흡착성 좋다. 이 때문에 냉장고 탈취제로도 쓰이고 옷장이나 습한 곳에 두어 제습제로도 사용한다. 숯은 공기 정화 능력도 높다. 숯이 다공질이기 때문에 유기물의 분해력이 뛰어난 방선균이 잘 살 수 있다. 방선균이 포함된 숯은 공기 중에 오염된 성분이나 해로운 물질을 흡착하여 분해하여 공기를 정화하고 냄새를 제거한다. 주조 과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숯(활성탄)이 이용된다. 그 효과를 확실하게 느낄 수는 없지만 알려진 바로는 숯은 음이온을 증가시키고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음이온은 부교감신경에 영향을 주어 기분을 안정시키고 몸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효능이 있다. 게다가 숯은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차단한다. 어릴 적 살던 뚝방 동네에서는 재래식 펌프로 퍼올린 탁한 물을 숯과 모래, 자갈을 넣은 정수 통에 걸러 마시기도 했다. 숯은 다공질로 미생물의 좋은 서식처가 되는데,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여 토질을 개선하는 데 왕겨숯을 이용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많이 들어본 소리다. 숯을 찜질용으로 사용한다는 이도 있고, 튀김 기름에 섞어 넣으면 좋다는 이도 있다. 조금 생소한 용도로는 숯이 시멘트 혼합제로도 사용된다. 숯은 다공질이라 시멘트와 접착력이 좋고 숯을 혼합한 시멘트 미장 벽은 표면이 매끄럽다. 콘크리트 부식 방지 효과도 있다. 그리고 적당한 비율로 숯을 혼합한 흙 미장은 수분을 조절해서 균열을 줄여준다.
지금은 잊힌 숯의 용도를 살펴보자. 구들을 써온 우리 선조들은 부수적으로 생긴 숯을 모아 저장해두었다가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이용하였다. 구들에서 나온 숯은 질이 낮았지만 주로 다리미질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바느질할 때 쓰는 인두에도 숯불이 필요했다. 전기다리미가 보급되면서 숯다리미는 사라져버렸다. 숯은 불씨를 보관하는 재료이기도 했다. '3대째 계속 보관해온 불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숯불 보관은 그 집의 품격을 뜻하기도 했다. 불씨가 꺼져 이웃집에 불씨를 빌리러 가는 것은 일종의 수치였다. 흑연 연필조차 귀했던 예전에는 그림을 그리는 데 목탄이 종종 사용되었다. 연료용으로 참나무 숯을 쓰는 데 반해, 목탄화에 쓰이는 숯은 특별히 버드나무, 사시나무, 벚나무, 오동나무, 물푸레나무를 구워 만들었다. 숯은 연마재로도 사용되었다. 금·은·칠기 등 고급재료를 갈고 닦아 광을 내는 데 버드나무, 동백나무, 목련으로 만든 숯을 이용했다. 요즘엔 차콜 팩이라 해서 숯을 재료로 한 미용 제품이 나와 있다. 과거엔 숯을 화장용으로 사용했다. 아마도 눈썹을 짙게 하는 데 사용했나 보다. 화장용 숯으로는 오동나무 숯을 사용했다.
뽕나무 숯으로 불꽃놀이를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음력 정월 16일은 몹쓸 귀신이 돌아다닌다고 여겼는데 이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뽕나무 숯가루에 불을 붙이는 풍습이 있었다. 뽕나무 숯가루는 불똥을 튀기면서 타기 때문에 무명천으로 만든 가늘고 긴 주머니 안에 꽉 채운 다음 둘레를 무명실로 감아 단단하게 만든다. 무명천 주머니의 지름이 약 3∼4센티미터(㎝) 정도 되고, 길이는 15∼25㎝로 만들고 그 가운데 긴 무명천을 말아 심지로 삼아 넣는다. 여기에 불을 붙이면 숯가루 불똥이 탁탁 튀며 불꽃을 내는데 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한다.
숯도 제각각
숯도 제각각이다. 질이 낮은 숯을 흑탄(黑炭)또는 검탄(黔炭)이라 하고, 질 좋은 숯을 백탄(白炭)이라 한다. 흑탄은 섭씨 600∼700도로 가열한 뒤 숯가마 안에 2∼3일간 두었다가 섭씨 100도 정도가 되었을 때 꺼낸 것을 말한다. 백탄은 섭씨 800∼1300도의 높은 온도로 가열한 뒤 꺼내어 흙·재·숯불이 섞인 가루를 덮어 빠른 속도로 불기를 꺼버려 만든 숯이다. 백탄은 흑탄보다 탄화 온도가 높으므로 탄소 함유비율도 흑탄이 75.2%인데 비해 83.3%로 높다. 흑탄을 굽는 가마는 주로 흙으로 만들고 백탄을 굽는 가마는 돌이나 내화벽돌을 많이 사용한다. 숯은 딱딱한 정도에 따라 딱딱한 경탄(硬炭)과 무른 연탄(軟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물론 경탄이 반드시 질 좋은 백탄(白炭)이 되거나 흑탄이 반드시 무른 연탄(軟炭)이 되는 법은 없다. 경탄은 소량으로 사용할 때는 불이 잘 꺼지기 때문에 여러 개를 모아 사용해야 한다. 상수리나무 숯으로 만든 흑탄은 단단하지만 세로로 잘 갈라져서 국화(菊花) 모양을 내는데 이것을 세워서 사용하면 공기가 잘 통해 한 덩어리의 숯이라도 계속 잘 타들어 간다. 참나무로 만든 참숯, 화장품용 오동나무 숯, 목탄화에 쓰이는 버드나무 숯, 불꽃놀이용 뽕나무 숯, 연마재용 동백나무 숯 등 숯을 만든 목재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숯불구이에 자주 사용되는 참숯 외에 다양한 재료와 용도를 위한 숯을 구하기 어렵다. 게다가 국내 소비되는 숯의 90% 이상이 중국산이니 그 품질을 알 수 없다.
숯가마 만드는 방법
자신의 쓸모에 맞는 숯을 원한다면 직접 숯을 만들어 써보면 어떨까. 숯은 공기를 차단한 채 목재를 가열시켜 만든다. 목재는 공기가 희박한 상태에서 가열하면 열분해를 일으키며 탄화를 시작한다. 이때 목탄가스와 목초액(木醋液)이 생기고 남는 것이 목탄, 즉 숯이다. 알고 보면 사실 숯 만들기가 그리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닌데, 막상 시도해보는 이가 적다. 숯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나름 소소한 이유가 있다. 2015년 10월 '나는 난로다 in 히로시마' 행사에 초대되어 가보았더니, 대안 장터에 나온 이들이 온통 숯 화로나 화덕에 요리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장흥으로 돌아와 용산 마실장에서도 부탄가스 버너보다는 화로에 숯을 담아 사용해보자 제안했다. 마침 집 지을 때 사용했던 참숯 한 상자가 있어 숯 걱정하지 않고 몇 번 화로에 물도 끓이고 떡가래도 구워보았다. 이제 숯이 다 떨어졌다. 뒷산에 간벌하기 위해 베어낸 나무가 지천인데 숯을 사서 쓰기는 아까웠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거창한 숯가마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드럼통과 기름깡통, 연통 정도면 간단한 숯가마를 만들 수 있다. 적정기술 숯가마라 할까. 숯의 쓸모가 이만저만 아니니 잘 만든 숯을 여러 용도로 만들어 조금씩 내어 팔아도 되겠다 싶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숯 한번 만들어 볼까 꼬드겨 보았지만 아직은 별 무반응. 뭐 어떠냐. 내가 철 지난 듯한 엉뚱한 짓 벌인 게 한두 번인가. 어찌 되었든 드럼통으로 숯가마 만드는 법을 소개하면 이렇다.
드럼통 숯가마를 만드는 방법
재료는 뚜껑을 통째로 여닫을 수 있는 200리터(ℓ) 드럼통 1개, 지름 10㎝의 연통 2미터(m), 지름 10㎝ 'L'자 연통 1개. 바닥용 붉은 벽돌 15장 또는 말통 크기의 사각 기름 깡통, 목초액 받는 데 쓸 빈 소형 페인트 통, 세라믹 밧줄 약 2m가 필요하다. 도구로는 전동 그라인더와 쇠 절단용 그라인더 날 1~2개, 삽, 곡괭이, 망치 못이 필요하다. 숯가마를 다 만든 후에는 숯을 만들기 위해 탄재로 잘 마른 참나무와 나무 자를 톱, 밑불용 장작, 불붙일 토치나 라이터를 준비해두면 된다.
1. 드럼통 길이에 맞춰 깊이 50㎝ 정도로 드럼통을 앉힐 구덩이를 판다.
2. 드럼통 뚜껑 하부에 25 x 25㎝ 크기의 화구를 따낸다. 이때 드럼통 뚜껑의 원형 테두리는 남겨두어야 다시 뚜껑을 닫을 수 있다. 뚜껑에 있는 고무 패킹을 벗겨 내고 세라믹 밧줄로 갈아 끼운다. 세라믹 밧줄이 없다면 그대로 뚜껑을 닫되 나중에 흙으로 단단히 덮어야 한다.
3. 드럼통 바닥면 하부에 지름 10㎝ 크기의 배기구를 뚫는다.
4. 배기구에 지름 10㎝ L자형 연통을 꽂는다. 이때 목초액이 빠지도록 못으로 작은 구멍을 뚫어둔다. 이후 구덩이에 드럼통을 앉힐 때 이 L자 연통 밑에 작은 페인트 통을 받친다. 여기에 목초액이 모이게 된다.
5. 다시 L자 연통 위에 2미터 길이의 연통(지름 10㎝)을 꽂아 세운다.
6. 드럼통을 구덩이에 앉히고 우선 드럼통 양옆과 뒤편 흙을 채워 드럼통을 고정한다.
7. 드럼통 하부에 잘 마른 밑불용 잔 장작을 깔아둔다.
8. 드럼통 중상부에 잘 마른 숯의 재료가 될 탄재(지름 5㎝ 이하, 길이 90㎝ 이하의 목재)를 채워 넣고 뚜껑을 닫는다.
9. 벽돌이나 말통 크기 기름 깡통으로 화구 주위를 보강한다.
10. 화구 전면을 제외한 드럼통 전체를 흙으로 두텁게 덮는다.
이제 숯가마를 만들고 숯을 본격적으로 만들 준비가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드럼통 숯가마의 내부 온도는 섭씨 700도에서 섭씨 750도가 한계여서 좋은 숯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드럼통을 흙으로 덮기 전에 세라믹 울이나 펄라이트 등 불연단열재로 감싸거나 채워서 단열하면 더 온도를 높일 수 있다. 드럼통 숯가마의 내구성도 한계가 있으므로 한 10회 이상 사용하면 열 변형 때문에 드럼통을 교체해야 한다.
본격적인 숯 만들기
숯을 만들 때는 연기의 색상과 온도로 탄재의 탄화 정도를 가늠하며 공기 투입량을 조절하고 연통을 막는 등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양질의 숯을 만들기 위해서는 탄재로 사용되는 목재마다 다른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숯을 만드는 데 대략 10~12시간 정도 필요하다. 연기의 색상과 온도에 따른 숯가마의 온도와 필요한 작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숯가마 밑불에 불을 놓으면 연통으로 습기가 많은 백색의 연기가 나온다. 이때 연통 끝 부분의 연기 온도는 섭씨 80도 이하이고, 숯가마 내부의 온도는 섭씨 300도 이하이다.
2. 황갈색이 섞인 연기가 나온다. 이때 연기에 단내가 나는데, 연기 온도는 섭씨 80도 전후이다. 대략 2시간 정도까지 지속하는데, 연기 온도가 섭씨 80도가 넘으면 화구를 닫아 공급되는 공기의 양을 줄인다. 이 색의 연기는 섭씨 150도 전후까지 계속된다. 연기 온도가 섭씨 150도를 넘으면 타르 성분이 많은 연기가 나온다. 숯가마 내부의 온도는 섭씨 300도에서 섭씨 400도 전후이다.
3. 온도가 더 오르면 연기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가 점차 없어지고 오히려 희미한 냄새가 난다. 연기 온도는 섭씨 180도를 넘어 섭씨 200도 전후가 된다. 숯가마 내부의 온도는 섭씨 450도 전후가 되어 목재의 주성분인 리그닌의 분해가 격렬해진다.
4. 가마 온도가 섭씨 500도를 초과하게 되면 파란빛이 도는 흰 연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때 연기 온도는 섭씨 200도를 넘어 섭씨 300도 부근까지 상승한다. 참고로 목초액은 황갈색 연기가 나올 때부터 파란색 연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 사이에 추출하면 적당하다. 숯가마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벤조피린 등 해로운 성분이 목초액에 섞일 수 있다.
5. 이어서, 가마 온도가 섭씨 600도를 넘게 되면 연기는 보라색 빛이 돌게 된다. 연기의 양도 적어진다.
6. 연기가 보라색이 돌다가 투명하게 되면 탄재의 탄화가 끝났다는 증거다. 화구를 흙으로 완전히 막아버리고 연통도 빼낸 후 흙으로 완전히 덮어버린다.
7. 냉각을 촉진하기 위해 드럼통 숯가마 천장의 흙을 일부 제거한 채 하루 이틀 정도 내버려둔다. 충분히 식은 후 뚜껑을 열어 숯을 빼낸다. 숯을 빼낼 때는 장갑과 마스크를 쓴다.
▲ 드럼통 숯가마를 만들어 잘 마른 대나무를 채워 넣은 모습.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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