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9일 오전 9시, 장림 선착장에 회원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한 달에 한 번 낙동강하구 철새 모니터링이 있는 날이다. 오늘은 팀을 나눠 신자도, 도요등과 을숙도 조사를 할 예정이다.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잔잔하다. 날이 좋다.
신자도와 도요등 조사를 맡은 김화연 씨와 이진웅 씨가 고무보트에 오르자 낙동강하구모임의 선장, 모인호 씨가 고무보트에 시동을 걸었다. 보트를 타고 섬에 도착하면 3시간을 홀로 조사해야 한다. "모래사장을 걷다 보면 새도 보이고 하늘도 보이고 저 멀리 가적도 섬도 보이고. 자연과 함께하다 보니 혼자 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걱정 섞인 질문에 낙동강하구모임 회장이자 신자도로 떠나는 이진웅 씨는 웃음으로 답한다. 보트가 선착장에서 멀어지자 선착장에 남은 회원들도 을숙도로 출발했다.
새가 좋아 낙동강하구에 모인 사람들
성별도 나이도 하는 일도 다 다르지만 단 하나 새가 좋아 모였다. 망원경으로 마주친 쇠백로의 눈동자를 잊지 못해, 큰기러기의 엉덩이에 꽂혀, 인간의 도움 없이 야생에서 살아가는 새들에 매력을 느껴, 단지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 저마다의 이유로 낙동강하구에 모였다.
1999년 부산환경연합 회원들의 소모임 '낙동강하구모임'이란 이름으로 정식 발족하고 활동을 시작했으니, 그 세월이 자그마치 17년이다. 현재 14명 정도 활동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10년 넘게 활동한 회원들이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조사 겸 정기모임에 더해 문득 새가 보고 싶거나 아니면 혼자 보기 아까운 새를 발견하거나 그도 아니면 별 이유 없이 깜짝 모임을 하고 낙동강하구에서 만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새들을 관찰하다 보니, 이제는 새 소리만 듣고도 심지어 날아가는 새 엉덩이만 봐도 새 이름을 척척 맞추는 회원들도 적지 않다.
낙동강하구모임이 전문가 모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새를 좋아하는 동호회라고 소개하는 건 이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시기별로 낙동강하구에 어떤 새들이 날아오고 짝짓기를 하고 또 언제 떠나는지는 물론 낙동강하구의 모래섬들이 어떻게 변하고 또 그 주변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등 전문가들이 탐낼 정도로 낙동강하구에 대한 자료도 방대하다. 회원들은 대한민국에서 낙동강하구에 대한 자료는 낙동강하구모임이 최고일 것이라고 자부한다. 또한 해마다 부산발전연구원으로부터 낙동강하구 철새 조사를 의뢰받아 조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낙동강하구에서만큼은 전문가 못지않은 집단임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즐거움과 책임감 사이
"꽈안 꽈안 궷궷 과우과우…"
을숙도 갈대숲으로 들어서자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을숙도 조사를 맡은 김은경 씨는 그 소리 중에서 큰고니를 골라낸다. "큰고니는 울음소리가 둔탁하고 높아요. 겨울 낙동강하구하면 아무래도 큰고니죠. 오늘은 날이 따뜻해서 많이 없네요. 날이 따뜻하면 주남저수지로 올라가고 추우면 낙동강하구로 몰려와요."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큰고니와 흰뺨검둥오리, 큰기러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행여나 새들이 놀랄까 싶어 목소리까지 낮추고 한걸음 옮기는 것도 조심스럽다.
평온하던 갈대숲에 고라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철새들 옆으로 걸어가는가 싶더니 달린다. 놀란 흰뺨검둥오리들이 옆으로 자리를 옮기자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고라니는 한 번 더 달린다. 더는 안 속겠다는 듯 새들이 고개만 살짝 돌리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고라니는 슬그머니 갈대숲으로 사라졌다.
"하구모임하면서 많이 달라졌죠. 그 전에는 학교와 집, 친구들, 여행 등 매우 개인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고 활동했다면 하구모임을 하면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 다른 존재를 위해 생각하거나 노력하는 쪽으로 바뀌었어요"라며 김은경 씨가 말했다.
낙동강하구모임 초대 회원이기도 한 그녀는 하구의 변화도 크게 와 닿는다. "저 다리가 을숙도대교에요. 예전에 명지대교라 불렀죠. 새들이 을숙도 남단으로 이동하려다가 저 다리를 만나면 당황하는 모습이 보여요. 명지대교 건설 반대운동으로 노선을 일부 변경시키긴 했는데 그래도 새들에게 위험한 거죠. 그렇다고 사람들이 저 다리를 많이 이용하느냐 하면 또 아니거든요. 예측했던 것보다 통행량이 적어요. 여전히 을숙도 하굿둑만 막혀요"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더 큰 걱정은 갈수록 낙동강하구에 새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에 비해 철새가 반이나 줄었어요. 특히 낙동강하구는 전국에서 쇠제비갈매기의 최대 번식지였는데 최근 3년 사이 급격하게 줄었어요. 낙동강하구에서도 도요등과 신자도가 주요 번식지였는데 5, 6월이면 2000쌍 정도가 찾아와 번식을 했어요. 근데 작년에 조사를 했는데 쇠제비갈매기 둥지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번식에 완전히 실패한 거죠. 4대강사업 영향이 있지 않나 싶고 외부침입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녀뿐 아니라 낙동강하구모임 회원들 모두 낙동강하구 변화에 걱정이 많다. "초기엔 우리끼리 재밌게 노는 모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역할이 주어지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물론 즐거움도 있지만 그 책임감과 사명감 때문에 모임에 나오는 회원들도 적지 않을 거예요"라고 전한다. 아마도 이것이 낙동강하구모임만의 색깔이자 17년 장수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반가운 변화들도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민과 관이 함께 쇠제비갈매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서병수 부산시장은 낙동강 하굿둑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낙동강하구를 지속적으로 지키고 목소리를 낸 이들이 없었다면 이러한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를 위해
조사를 끝낸 회원들이 명지갯벌에 모였다. 철새 종류며 숫자를 꼼꼼하게 기록해야 하는 조사 때와는 달리 각자 보고 싶은 새를 맘껏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모인호 씨는 망원경 없이도 혹부리오리니 참수리니 굴뚝새 등을 찾아낸다. 모인호 씨의 안내에 따라 회원들의 망원경이 움직인다. 산책 나온 시민들도 걸음을 멈추고 새 찾기에 나선다. "다른 오리류들은 꽥꽥하고 우는데, 혹부리오리는 '휘이릭 휘이릭' 하고 울어요"라며 설명까지 해준다.
고수만 즐거운 시간은 아니다. 하구모임에서 초보라는 이지은 씨도 얼굴에도 웃음이 한 가득이다. "새를 알게 되면서 도심에도 새가 참 많다는 것을, 또 주변에 더불어 살아가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게 참 좋아요"라며 웃는다.
파란 하늘 위로 고니 떼가 날아간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장관이다. "새에 대해 잘 몰라도 됩니다. 하다 보면 자연스레 실력이 쌓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새들을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됩니다. 낙동강하구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분들은 어려워하지 말고 오세요."
낙동강하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낙동강하구를 나는 새들이 낙동강하구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하고 싶지 않으신가.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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