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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자전축, 밤에는 별자리 따라…

[작은것이 아름답다] 겨울 철새·① 그 아름답고 고단한 여행길

이동하는 새, 자연의 경이로움

흰 눈이 날리는 날이면, 철원 평야에서 쌓인 눈을 헤치고 먹이를 찾으며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두루미가 보고 싶어진다. 겨울 철새들 가운데 유독 두루미를 좋아하는 것은 쉽게 보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두루미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허가를 받고 민통선을 통과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관할지역에서 사고가 나거나 군사 작전이 있을 경우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두루미 말고도 수십만 마리가 군무를 선보이는 가창오리, 브이(V) 자 편대비행을 하는 기러기, 기류를 타고 솟아올랐다가 하늘에서 원을 그리듯이 천천히 활강하는 독수리… 겨울 철새는 우리에게 계량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들이 생태계 구성원으로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며 먹이 생물의 밀도를 조절하고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생태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움의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보전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 두루미. 일부일처제인 두루미는 만주, 아무르 강 유역 등지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 철원, 연천, 파주, 강화 지역과 중국 얀첸 등지에서 월동한다. ⓒ김진한

겨울 철새는 왜, 어떻게 이동하는가?

두루미와 가창오리의 자태와 군무를 흥분한 마음으로 보다가 숨을 돌리고 '왜 저 멀리 시베리아, 만주 같은 곳을 힘들게 오가는 걸까? 여기도 이렇게 추운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번식지로 이용하는 시베리아나 만주지역 겨울을 떠올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계절로는 우리와 같은 겨울이지만 그 추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영하 20도를 쉽게 넘나드는 동토에서는 먹이를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체온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우리나라 또는 더 적도에 가까운 곳에서 번식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위도가 높은 지역은 짧은 여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물들이 번성하고 게다가 밤이 짧고 낮이 길어서 새끼를 먹이고 키우기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 이동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철새가 어떻게 이동 경로를 찾는지에 대해 아직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두뇌의 송과선에 있는 자철광 물질과 눈 망막에 있는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이라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물질로 방위를 구분하고, 낮에는 23.4도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에 따라 태양의 남중고도 차이로, 밤에는 별자리를 보고 이동 방향을 정한다고도 한다. 지각의 미세한 떨림에 따라 지형별로 특색이 있는 저음파가 발생하는데 사람은 들을 수도 없는 낮은 음이지만 비둘기는 이동하는 지역의 저음파를 기억해 방향을 찾는다고도 한다.

▲ 여러 철새 이동 경로. 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는 시베리아, 알래스카에서 한국, 중국,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남반구의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이동 경로이다. ⓒEAAFP

▲ 가창오리 무리.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실시하는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에서 해마다 가장 많은 수가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 철새이다. 홀로 다니기보다는 무리를 이루어 겨울을 난다. ⓒ김진한

철새의 이동은 동서 이동보다는 남북 이동이 대부분이며, 많은 종이 비슷한 경로로 이동한다. 비슷한 이동경로들을 묶어 지구 차원에서 크게 살펴보면 유럽-아프리카, 동아시아-동남아시아-대양주,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를 잇는 남북 이동 경로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와 서태평양 철새 이동 경로의 두 경로가 있는데, 먼바다에서 서식하는 해양성 조류는 서태평양 철새 이동 경로를 이용하고 나머지 대부분 조류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에 속한다. 이 이동 경로에서 알락꼬리마도요, 큰뒷부리도요, 좀도요 같은 도요새들은 멀리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와 중국을 중간 경유지로 이용한 뒤 지구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나 뉴질랜드까지 이동해 겨울을 난다. 오리류, 기러기류는 도요새같이 멀리 이동하지 않고 번식지인 중국 만주 지역, 러시아 시베리아와 월동지인 우리나라, 일본, 중국 남부 등지를 오간다. 우리나라를 찾는 조류 가운데 날개 길이가 가장 긴 독수리는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파주 DMZ 인근에 주로 서식하고 일부 무리는 멀리 경남 고성 지역으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 지난 수년 동안 독수리에게 전파발신기를 부착한 뒤 인공위성으로 이동 경로를 추적해 보니, 우리나라에서 월동을 마치고 북한을 지나 중국 선양지역 습지대에서 머물다가 북동쪽 몽골의 여러 번식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겨울 철새를 위협하는 것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이 외출할 때면 '차 조심하라'는 말씀을 어김없이 하신다.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 철새들은 아마 더 많은 위험물을 조심하라고 서로에게 날마다 당부할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철새들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가령 서식지 주변 전깃줄은 큰 위험이다. 철원 지역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겨울을 나면서 잠자리와 먹이 터를 오가다 전깃줄에 부딪혀 희생되는 사례가 자주 보고되고 있다. 사람보다 시력도 뛰어난 새가 어떻게 전깃줄에 부딪힐까 싶기도 할 것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전깃줄을 보면 명암 구별이 되어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하늘을 날면서 땅을 배경으로 전깃줄을 보면 구분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안개라도 끼어 시야가 흐려지는 날이면 그 위험 정도는 더 커질 것이다. 덩치가 큰 새일수록 나는 방향을 급작스럽게 변경하기 어렵다. 60킬로미터(㎞) 안팎 속도로 날다가 갑작스럽게 전깃줄을 발견하면 피하지 못하고 희생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그 밖에도 철새들은 우리나라로 오는 여정 가운데 천적 공격을 피해야 하고, 곳곳에 숨어서 총구를 겨누는 사냥꾼도 피해야 하고, 독극물을 넣은 미끼 먹이도 잘 구분해서 피해야만 한다. 그런데 질 나쁜 밀렵꾼이 사용하는 독극물은 냄새와 맛이 없어 구분하기가 어렵고 불특정 다수 철새가 피해를 입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또 다른 위협은 교통사고 로드킬(road-kill)과 유리창 충돌 윈도우 스트라이크(window-strike)이다. 대게 조류의 눈이 우리 사람의 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입체 시각이 아니라 평면 시각에 의존해 자동차의 빠른 속도를 인지할 수 없고, 유리창은 보는 각도에 따라 거울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독수리. 상승기류를 타고 높이 범상을 하여 올라갔다가 힘들이지 않고 멀리까지 활강하는 비행을 하는 에너지 효율적인 비행술을 가졌다. 주로 죽은 동물을 먹기 때문에 자연의 청소부라 불린다. ⓒ김진한

무엇보다 겨울 철새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그들이 안전하고 풍요롭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서식지가 계속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겨울 철새들은 중간 기착지인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번식지로 돌아간다. 쉬면서 머무는 동안 충분한 영양 보충과 비축을 해야만 번식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서식지의 질과 양은 해당 종의 생존과 직결된다.

최근 우리나라 겨울 철새 서식지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우려할 사항이다. 가을철 논에서 추수하고 남은 볏짚을 가축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기계로 수거하는 비율이 상당히 늘었고 이에 따라 기러기, 오리같이 낙곡(落穀) 의존도가 높은 종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먼 거리까지 이동해야만 한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해에는 철새 축제와 겨울철 먹이 주기 대부분 취소되어 이 땅을 찾는 많은 겨울 철새는 또다시 힘든 겨울을 나기도 한다 난다.


겨울 철새들의 이동 경로, 국경 너머 함께 지킨다

철새는 여러 나라를 오가기 때문에 한 나라만의 보호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아시아 지역과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이동하는 도요류와 오리류, 두루미류 그리고 바닷새들이 이동하는 경로에 속한 국가들이 국제 철새보호 협력을 더욱 체계 있게 진행하기 위해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협력기구(EAAFP)'을 2006년 결성했다. 한국·중국·러시아·일본·호주·태국과 최근에 가입한 베트남까지 17개 나라 정부가 참여하고 있고, 그 밖에 람사르 협약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같은 6개 정부 간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와 이동성 물새 보호 이니셔티브를 포함해 모두 34개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정기 총회를 열어 철새와 그 서식지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사항을 논의하고 정보를 교환하는데, 지난해 1월 일본 홋카이도 쿠시로에서 제8차 총회가 열렸다. 주로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전문가들의 열띤 논의와 함께 풍력발전기에 대한 조류 충돌 피해 저감 방안, 철새 네트워크 발전 방안, 인식증진과 교육, 서해지역 갯벌과 철새보호에 대한 전문가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아무쪼록 철새와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고 실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온 삶을 다해 이동하며 세대를 잇는 철새들을 우리가 손 내밀어 도와야 한다. 철새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의 미래도 없는 거니까.

▲ 큰고니. 백조라고도 부르며 우리나라에 도래한 새 가운데 제일 무거운 새다. 하늘을 날기 위하여 물 위를 빠른 속도로 뛰면서 날갯짓을 하는 모습이 독특한 새다. ⓒ김진한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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