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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할 땐 좋은 냄새가 약이 됩니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향으로 통하다

초등학교 시절, 도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막내 누나와 매일 아침밥을 함께 먹었습니다. 좀 더 자도 되지만 학교에 일찍 가기 위해서였지요.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밥을 먹은 후, 부지런히 세수하고 책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면 마을회관에서 이장님이 방송합니다. 학교는 집에서 한 2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학교와 우리 집 사이에는 담뱃집이라고 불리는 상점이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문을 열면 교문이 바로 보였습니다. 간혹 산 너머 마을에서 오는 친구가 먼저 도착할 때도 있었지만, 거의 매번 학교의 바퀴 달린 미닫이 나무문을 맨 처음 여는 것은 저였지요.

조금 뻑뻑한 문을 요령 있게 밀어서 학교를 깨우면, 밤새 고여 있던 오래된 나무 복도의 냄새와 열린 문으로 들어온 차고 상쾌한 아침 공기가 만나 왠지 모를 기분 좋은 향을 만들어 냈지요. 그 냄새를 맡으며 걸을 때마다 나는 작게 삐걱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교실을 찾아가는 동안 아주 낯선 세계에(실상은 일 년 365일 학교가 놀이터였지요) 발을 들여놓는 듯한 신비함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어머니를 따라, 혹은 여행길에 사찰에 들렸을 때도 저는 규모의 웅장함이나 역사, 그리고 위대한 승려 이야기보다 절 냄새를 즐겼습니다. 대웅전에 들어설 때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와 마룻바닥의 질감, 오랜 시간을 두고 나뭇결 사이사이에 밴 향 냄새가 스님의 설법이나 장엄한 부처님의 모습보다 저를 편하게 해주었지요. 한동안 이런저런 향을 수집하고 즐기면서 제가 좋아하는 향과 그것이 주는 효과, 그리고 제 몸과 마음의 상태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의학은 향을 오행의 원리에 따라 분류하고 각각의 장부에 배속해 진단에 이용합니다. 우리 입맛이 몸의 상태에 따라 바뀌듯, 냄새에 관한 호불호도 바뀌고 체취도 변화합니다. 한의학은 이러한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코의 후각 기능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폐를 기본으로 다른 장부와의 관계 속에서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몸의 불균형을 파악하고 나면 여러 치료 방법을 이용해서 조정하는데, 향 또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내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변화한 후각에 특정한 향을 이용해 상반되는 자극을 주어 조정하지요. 약초가 가지고 있는 향과 고유의 약성을 이용해서 치료하는데, 이러한 약초는 향이 있다고 해서 방향성(芳香性) 약초라고 부릅니다.

방향성 약초는 고유의 효능에 따라 구분하지만, 공통으로 기의 소통을 도와 뭉친 것을 흩트리고, 막힌 것을 뚫고, 정체된 기능을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필요한 향을 맡으면 '향기 좋다~'는 느낌과 함께 몸이 편한 이유를 한의학적으로 보면, 향으로 인해 기가 잘 소통하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이러한 약초를 이용해 치료하는 것과 사람 사이를 잇기 위해 조향사가 향수를 만들고, 사람을 음식과 잇기 위해 요리사가 향신료를 이용하는 것 또한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을 우리 삶에 이용한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최근 들어 향초나 디퓨저와 같이 일상에서 향을 이용하기 위한 제품이 더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래지 않아 다양한 커피를 파는 카페처럼 나에게 맞는 향을 맡는 카페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경제 수준 향상이나 상업적 이유도 있겠지만, 예전부터 사람들이 향기 제품에 관심을 보인 것은 그만큼 사람 속에 막히고 뭉친 게 많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증세가 생기면 기의 소통을 막아 뭔가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을 주는데, 향을 만나면 일시적으로 소통되어 나도 모르게 끌리는 것이지요. 기의 영역(氣分)이 잘 통하고 좋아지면 감정이 편해지고, 이로 인해 몸도 편해집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방향성을 가진 약초가 정신질환이나 특정한 암에 효과 있다는 보고도 있는데, 이 또한 소통되지 않고 막힌 것이 오래되어 생긴 우리 몸의 부조화를 풀어내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하면서 이유 없이(깊이 바라보면 다 이유는 있지요), 혹은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때론 풀리지 않는 문제로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안 되고 잠도 잘 이루지 못한다면, 좋은 향과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향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 낸 살아있는 좋은 향이어야 하겠지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하지만, 소통이 막혀서 생기는 또 다른 문제를 예방하고, 꽉 막힌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숨통을 틔워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요즘, 음(陰)에서 양(陽)으로 전환되기 쉬운 시기여서 평소 기의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심란하기 쉽습니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 산으로 올라가 소리를 지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 좋은 향을 곁에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향이 좋은 봄풀과 새순을 즐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산짐승이 나타나거나 옆의 사람이 놀랄 염려도 없고, 나아가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한번쯤 시도해 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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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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