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주식 투자자 사이에선 초미의 관심사다. 삼성 지배구조 개편과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가 오르내린다. 삼성SDS 등 일부 계열사가 실제로 그랬다.
삼성전자가 보유했던 삼성카드 지분을 최근 삼성생명이 사들였다. 이를 놓고서도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오류도 많았다. 관련 보도 역시 마찬가지. 마침, 경제개혁연대가 삼성 지배구조 개편 관련 심층 보고서를 냈다. 기업 지배구조, 특히 삼성 문제에 대해서라면 탁월한 전문성을 지닌 단체가 낸 보고서인 만큼,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그간 나온 보도 및 소문에 담긴 다양한 오류들을 잘 짚어냈다.
경제개혁연대 "삼성, 1~2년 안에 금융지주회사 설립 추진할 것"
경제개혁연대는 10일 발표한 <삼성의 지주회사 설립 시나리오> 보고서에서 삼성이 향후 1~2년 안에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삼성그룹 전체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3~5년가량 걸리리라고 예상했다.
삼성그룹 내 금융계열사 지분은 그간 꾸준히 삼성생명에 집중돼 왔다. 최근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지분을 확보한 것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대부분의 언론 및 증권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금융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풀이했다. 경제개혁연대 역시 이 점은 동의한다. 하지만 보고서의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기존 해석과 다른 점이 꽤 있다.
우선 경제개혁연대는 삼성그룹의 현 지배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이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와 삼성전자 등 제조 계열사를 지배한다. 여기서 문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64%이다. 이는 금산분리 원칙에 어긋난다. 따라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만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예측과 같다. 일부 언론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전부 팔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오류라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설명이다. 삼성전자 지분 비율을 낮추기만 해도 된다.
물산금융지주냐, 생명금융지주냐
대부분의 전문가, 그리고 시장 역시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은 필연이라고 본다. 그러나 삼성은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한 적이 없다.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법을 다양한 형태로 제시했다. 다만 완전히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려면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리라고 봤다. LG그룹의 예를 봐도 그렇다. LG그룹은 1999년 이후 걸쳐 전자 부문과 화학 부문을 각각 별도의 과도기적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이 두 지주회사를 묶어 최종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이 경우도 약 3년이 걸렸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그룹이 세 단계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리라고 내다봤다. 첫 단계는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부문의 금융지주회사 설립이다. 두 번째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비금융계열사들의 일반지주회사 설립이다. 세 번째는 이들 두 지주회사를 연결하는 최종지주회사 설립이다. 다만 이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 허용 여부에 따라 방식이 달라진다. 중간금융지주회사란 지주회사 밑에 있는 지주회사다. 일반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장악하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일각의 분석과는 달리, 중간금융지주회사가 허용되지 않아도 오너 일가가 금융지주회사를 장악할 수 있다.
현재 첫 단계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여기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삼성물산을 분할하는 것이다.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 투자 부문을 분리하는 것. 그래서 금융지주회사(가칭 '물산금융지주')로 만드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삼성생명을 분할하는 것이다. 삼성생명 자사주 및 다른 금융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삼성생명 투자 부문을 분리하여 금융지주회사(가칭 '생명금융지주')로 만드는 방법이다. 두 가지 모두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금융지주회사→다른 금융 계열사'로 바꾼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삼성, 원샷법 활용 가능성 낮다
'물산금융지주'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만 통과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주주 및 사회의 반발이 예상된다. 앞서 제일모직과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었다. 그런데 삼성물산을 분할해서 금융지주회사를 만든다면, 비슷한 논란이 또 생길 수 있다. 삼성 측이 삼성물산 기존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금융지주회사 장악력 확대를 꾀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삼성 측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을 활용하리라고 본다. 실제로 원샷법 반대 논거 가운데 하나가 '삼성 총수 일가를 위한 법'이라는 거였다. 경제개혁연대의 입장은 다르다. 원샷법의 세부 내용을 보면, 기업 분할 과정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끔 돼 있다. 삼성물산이 이런 요건을 갖추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입장이다.
'생명금융지주'는 절차 자체가 까다롭다.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또 삼성생명 보험 계약자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이 이의를 제기하면 불가능하다. 삼성생명은 최근 서울 중구 태평로 본관 건물을 파는 등 현금을 확보했는데, '생명금융지주' 전환 요건을 갖추기 위한 준비로도 볼 수 있다.
요컨대 '물산금융지주'는 절차는 쉽지만 반발이 예상된다. '생명금융지주'는 요건을 갖추기가 어렵다. 어떤 길을 택할지는 삼성의 몫이다.
중간금융지주회사 허용돼도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팔아야 한다
중간금융지주회사 허용을 놓고서도 말이 많다. 이를 위해 삼성이 움직인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적어도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첫 단계에선 중간금융지주회사가 필요 없다. 금융지주회사와 일반지주회사가 만들어진 뒤에야 필요하다. 최종 단계를 앞두고, 중간금융지주회사가 허용된다면 두 지주회사를 수직으로 연결하면 된다. 허용되지 않는다면, 수평으로 연결해야 한다. 허용되는 쪽이 삼성 입장에선 낫다. 그러나 허용 여부가 삼성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는 아니다.
일부 언론 및 전문가들은 중간금융지주회사가 허용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설명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런 설명 역시 오류라고 지적했다. 어떤 경우이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없다는 법 규정을 피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최대주주 자리를 내놓아야한다는 뜻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의 지분(4.06%)보다 낮은 비율을 보유해야 한다. 현재 삼성전자 지분 7.54%를 갖고 있으므로, 3.48% 이상의 지분을 팔아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요컨대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전부 팔아야 한다는 주장도, 팔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모두 틀렸다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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