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파견 직원 임 씨 : 그니까 뭐 '내가 얘기해서 홍**를 뭐 이렇게 고발했다' 그 얘기만 빼면 돼.
보수단체 대표 오 씨 : 아, 그거만 빼라고?
해수부 파견 직원 임 씨 : 그것만 빼면 우린 정부랑 조국을 위하는 길이니까.
보수단체 대표 오 씨 : 그럼 누구한테 전화 받아서 했다고 하지 그럼?
지난달 24일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 내용의 일부다. 짧은 몇 문장만으로, 세월호 특조위에 파견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보수단체 대표에게 '세월호 유가족을 고발하라'고 종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내부자에 의한 특조위 방해 공작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드러난 셈이다.
파견 공무원의 유가족 고발 사주는 예견된 '참사'?
"지금 세월호 특위는 '내부자들'이 조사를 하고 있어요. 결국, 이들이 세월호 특위 활동을 어떻게든 축소‧방해하려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특위 활동이 끝나고 돌아갈 자기 조직에 피해가 안 가겠죠."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해수부, 행안위 등에서 파견 온 공무원들이 성과를 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후 특위가 해산된 뒤, 그 사람이 자기 부처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박수는커녕 '저놈, 동료들 등에 칼 꽂은 놈이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내부자에 의한 방해 공작에 대한 여러 '예언'이 있었다.(☞관련 기사 : "'내부자들', 세월호 특위에 들어와 있다", "MB때 협조공문 보내면 '불가' 한 줄 답장") 이번 일은 사실상 '예견된 참사'에 가깝다.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사태는 특조위 내부에 큰 충격을 안겼다. 첫째는 방법이 매우 악의적이고 치밀했다는 점에서, 둘째는 문제의 '내부자'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조위 파견 공무원 가운데 노골적인 '방해 세력'은 있었다. 민간 조사관들이 일을 못 하게 손발을 꽁꽁 묶고 어깃장을 놓아 누가 봐도 '방해 세력'임을 알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번 녹취록에 등장한 해수부 파견 직원 임 씨는 해양수산부의 3급 부이사관으로, 민간 조사관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았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방해 공작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지, 보이지 않는 방해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특조위 내에 퍼져 있다.
'능지처참' 여론몰이부터 보수 언론의 잇단 예산 공개 요청까지
관건은 과연 이러한 일이 과연 개인 소행일지 여부다. '결코 개인 일탈 문제가 아니'라는 게 특조위 안팎의 중론이다. 이같은 판단은 단순 짐작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의 앞선 일들을 살펴야 한다.
특조위 직원 임 씨가 보수단체 대표 오 씨에게 '유가족을 고발하라'고 사주한 근거는 언론에 알려진 '대통령 능지처참 발언'이었다. 지난해 11월,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관련 포럼에 참가한 유가족 한 명이 "(대통령이) 무슨 짓을 했는지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 능지처참을 당할 사람"이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이같은 발언 뒤, 이날 참석한 박종운 특조위 상임위원이 다른 유가족과 함께 손뼉을 쳤다. 이 영상이 언론에 공개되며 박 상임위원과 특조위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이가 오 대표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에 따르면, 오 대표는 '능지처참 발언'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박종운 상임위원 등을 고발했는데, 당시 특조위가 보유하고 있던 행사 동영상이 누군가에 의해 외부로 유출돼 고발 전후 여론몰이에 이용됐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몇몇 개인들의 일탈 행위라고 생각할 수 없다"며 "모든 정황이 해수부, 나아가 정권 핵심에 이르는 조직적인 조사 방해 세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해수부 BH 조사 대응 문건'이 조직적 방해의 대표적인 증거다. 이 문건에는, 특조위 여당 추천위원들에게 특조위가 대통령의 직무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막고, 해당 안건 가결 시 전원사퇴 기자회견을 개최하라는 등의 구체적인 지침이 나와 있었다. 과연 '누구'의 지침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조직적, 계획적 여론몰이 정황이 알려지기도 했다. 일부 보수 언론들이 약속이나 한 듯 특조위에 2015년 예산 사용 내역을 요구했는데, 내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상세한 내용까지 거론하며 정보 공개를 요청한 것.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자, 특조위에서는 일단 내부의 방해 세력부터 발본색원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25일 열린 전원위원회 회의에 앞서 김선혜 상임위원은 "해수부 공무원들 그 뒤에 누군가 있어 특조위를 망가뜨리려고 하고 있다. 심지어는 특조위 상임위원 중 한 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사태에 해수부 파견 공무원이 연루된 만큼, 해수부 장관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진상조사위를 꾸려 경위 조사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월호 특별법상 위계를 사용해 특조위 직무집행을 방해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한 세월호 유가족은 진상 조사 소식을 반기면서도, "자칫 '꼬리 자르기'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조사 완료 아직 '0건'인데, '검은 손과의 싸움' 언제까지...
2일 현재까지 특조위에 접수된 조사 신청 건수는 총 181건, 이중 전원위에서 의결돼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은 148건, 완료된 사안은 없다.
가뜩이나 갈길 바쁜 지금 '특조위 조사 방해'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하게 되면, '세월호 진상 조사' 작업은 더욱 더뎌질 것은 자명하다.
특조위 핵심 조사인 선체 인양 조사는 미지수다. 당초 6월 말 완료 예정됐던 선체 인양은 작업 지연으로 7월 말이나 가능한 상황. 해수부는 '인양 뒤 선체 조사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빈말에 가깝다. 특조위 전체 예산이 6월 말까지만 책정된 데다, 선체의 정밀조사 예산(약 48억 원)은 전액 삭감된 상태다. 또 닻 등 주요 구조물들이 선체 인양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잘려나가 '선체 조사'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판국이다.
권영빈 상임위원이 약속한 '종합보고서' 작성도 불투명한 상태다. 세월호 특별법 제47조에 종합보고서 작성을 위한 예산 편성이 분명 명시돼있지만, 보고서 예산 또한 전액 삭감됐다.(☞관련기사 : "박 대통령은 왜 특조위 임명장도 직접 안 줬나")
현재 세월호 특조위는 미래를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특조위에 사실상 허락된 시간은 5개월. 검은 손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6) "MB때 협조공문 보내면 '불가' 한 줄 답장"
(7) "박 대통령은 왜 특조위 임명장도 직접 안 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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