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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이런 사람들이 살 줄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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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이런 사람들이 살 줄 몰랐지?

[시골 생활] 이젠 내 꿈을 이룰 때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 사람과 도시 사람. 이렇게도 분류할 수 있겠군요. 시골에서 살아봤던 사람과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 도시 생활에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늘다 보니 이렇게도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시골 생활'을 꿈꾸는 사람과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그런데 시골과 도시의 이런 대비 속에는 정작 '시골 생활'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습니다. 다들 도시 생활이 얼마나 불행하고, 삭막하고, 불편한지는 얘기합니다. 하지만 정작 시골에서 '어떻게' 생활할지를 놓고서는 모든 게 막연하기만 합니다. 도시에서의 삶을 불평하면서 시골 생활을 언급하는 이들이 많은 데도, 정작 도시가 팽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새해에 같이 읽어볼 첫 책으로 <시골 생활>(정상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을 정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서른이 넘어 시골에서 '제멋대로' 살고 있는" 정상순 씨가 지리산 자락에 샅샅이 훑으며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담았습니다. 그래서 부제는 이렇습니다.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지?"

시골 생활, 지리산 생활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요? 어쩌면 그런 분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할 1순위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지리산 시골살이학교' 1기 졸업생 조현정 씨의 말이 실감이 납니다. "이건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고. "시골이든 도시든 내 삶을 온전히 내가 살아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이 책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 다독거리며 그렇게 힘을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선뜻 책을 잡기가 망설여진다고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골 생활>을 펴낸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이 책을 먼저 읽은 이들의 독후감을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두 번에 걸쳐서 소개합니다.

네 번째 독후감의 주인공은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연출가 겸 안무가입니다. 김민정 연출가는 무브먼트 '당-당'에서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무대 언어로 새로운 공연 예술과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고 재밌게 사는 김민정 연출가도 <시골 생활>을 읽고서 약이 올랐다고 합니다.

▲ <시골 생활>(정상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14년 전 도시를 떠난 여자가 있다. 도심의 북적대는 지하철 환승로에 멀미를 느끼고, 너무나 빠르게 일상을 뚫고 나가는 사람들의 속도가 불편했던 여자.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부질없이 썩어가는 음식물 쓰레기가 두려웠고, 연대나 어울림보다 조용하고 소리 없이 살고 싶어서, 더 외롭고 싶어서, 제멋대로 살고 싶어서. 그녀는 진짜 떠났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이 시대의 사랑>(문학과지성사 펴냄, 1981년))

그녀가 14년 전에 읊조렸던 시는 이것이었다.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나에겐 아직도 설레는 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그러나 한 번도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한 내 앞에 꿈을 이룬 그녀가 나타났다. 14년 전 그렇게 홀연히 떠나고 나서는 맨날 울 줄 알았더니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지?' 하며 약을 올린다. 글도 쓰도 신문도 만들고 연극도 하고 볕 좋은 카페에서 노닥이면서 버젓이 <시골 생활>이란 책까지 내다니……. 시골 생활이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리길래 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단 말이지? 단숨에 책을 읽는다.

"……다양하게 사는데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 그러나 그걸 묶어 내거나 줄 세우려고 하면 균형이 깨진다. 다양한 것이 다양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101쪽)

"미래, 돈, 효율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는 세상에 똥침을 가하고자 하는" (181쪽)

"돈을 벌기 위해 4시간 일하고 나머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단순하게 일하고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는" (203쪽)

그런 사람들이 그곳에 있단 말이지? 외롭기는커녕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신나고 여유롭게 산단 말이지? 은근히 샘이 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 건강한 음식과 커피까지, 흥과 멋을 나누는 장소와 마음들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시골 생활을 들여다보니 갑자기 한숨이 푹 난다. 나는 14년간 지쳐왔고 그녀는 14년간 에너지를 얻은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사람 사는 모양이야 어디서나 비슷할 테지만, 도시에서 견디는 일상은 매일매일 방전이다. 도시인들도 나름 살기 위한 방법을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거의 투쟁에 가깝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소비가 시작되는 일상. 매일매일의 먹을거리를 살펴야 하는 일은 물론 만남과 대화마저도 일이다. 피곤하다. 정말.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하루하루의 속도를 따라가기에 숨이 차다. 나는 정말 지친다. <시골 생활>을 읽고 나니 더더욱 내가 지쳐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내 상태를 제대로 알게 됐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책, <시골 생활>이 주는 선물이 아닐지.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이 익숙해지고 옆집아이를 재우는데 내 등을 빌려주는 일"(143쪽)이 어떻게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그것이 원래 자연스러운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내 삶을 내가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117쪽) 경험이야말로 인간이 진짜 살아가야 할 삶이라는 생각은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지리산을 잇는 사람들과 14년 전 도시를 떠나 이제 지리산댁이 된 그녀의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대감은 변화와 진화가 진행 중인 그곳이 막연한 꿈의 나라가 아닌 사람이 사는 현실적인 곳임을 알게 한다. 그이들의 창조적인 일(노동)이 그들의 삶을 넘어 도시인의 삶을 흔들기 시작한다. 특히, 나 같은 고민에 빠진 사람들, 혹은 도시 부적응자들, 자신에게 '나만 이상한 건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를 모르더라도 도시에서의 삶은 이미, 노동은 물론 제 삶에서조차 비껴가고 있는 것만 같은 시절. 노는 것조차 일이 되는 불행을 겪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마지막 경고장 같은 신호로 여겨진다.

'이 정도면 네 꿈을 이룰 때가 오지 않았니?'

마지막으로, "일상에 대한 집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130쪽)에 대한 해답은 안 가르쳐줄란다. 책 안에 그 답이 있으니 당장에 <시골 생활>을 살펴보시라.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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