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만 출신 아이돌 가수 쯔위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국기를 흔들었다고 해서 문제가 됐다. 정작 본방송에는 전파를 타지 않았음에도 같은 대만 가수 황안(黃安)이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다. 크게는 대만과 중국이 서로 대립하는 형국이 됐다. 하지만 사건 이면에는 한국-중국, 한국-대만 사이에도 적잖은 갈등 요소가 잠재돼 있다. 한국-중국-대만 사이의 삼각 문화 갈등이 진행 중인 것이다.
'청천백일기'는 원래 신해혁명 당시 만들어진 깃발이었다. 청나라를 뒤엎는 혁명을 이끌었던 단체인 흥중회(興中會) 회원인 루하오둥(陸皓東)이 디자인했다고 알려져 있다.
쯔위가 흔들었던 대만 국기는 여기서 변형된 '청천백일만지홍기'다.
바탕을 붉은색으로 하고 왼쪽 윗 편에 '청천백일'을 그려 넣은 문양이다. 1946년 당시 중화민국 헌법이 제정되면서 이렇게 국기가 정해졌다. 당시 헌법 제1장 제6조는 "중화민국의 국기는 붉은 바탕으로 하고 왼쪽 위 모서리에 청천백일을 둔다"고 규정했다. 세 가지 색깔은 각각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상징한다.
붉은 바탕이 들어가게 된 까닭은 신해혁명의 지도자였던 쑨중산(孫中山)의 제안 때문이었다. 색깔이 다소 단순했던 '청천백일기'에 붉은 바탕을 더함으로써 다양한 상징을 덧입히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쑨중산은 프랑스 국기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것처럼 중화민국 국기도 세 가지 색깔로 이런 가치들을 상징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한다. 물론 신해혁명 당시 다양한 깃발들이 서로 각축을 벌였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붉은 바탕에 '청천백일'이 들어간 문양이 살아남게 된 데는 쑨중산의 역할이 컸다.
1949년 중화민국이 대만으로 물러가고 대륙에는 사회주의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내 최초의 근대 국가인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대륙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완전히 전복되지 않고 대만에서 자신의 정부를 이어갔다. 대륙 중국과 대만은 상대를 수복해야 할 땅으로 서로 규정해 왔다. 특히 대만에서는 국민당의 입장이 그랬다. 이른바 대륙과 대만이 1992년 발표한 '92 컨센서스'가 "하나의 중국만이 존재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도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은 각자 알아서 하도록 여지를 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이 더 이상 중국의 공식 정부가 아니며, 세상에는 오로지 '하나의 중국'만이 존재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만 땅에 여전히 '중화민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륙 중국과 수교를 하려고 하는 나라는 우선 대만과 관계를 정리해야만 한다. 우리나라도 1992년 8월 대륙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를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륙 중국의 입장에서 '중화민국'은 신해혁명 이후 1949년까지 역사적으로만 존재했던 국가일 뿐인 것이다.
'중화민국'의 입장에서는 대륙 중국을 공산당이 잠시 점령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정통성이 자신에게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명분일 뿐, 오늘날 거대한 중국 공산당 정부를 인정하지 않을 현실적인 도리가 없다. 그래서 대륙 공산당에 의해 국제 사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으면서 사느니 대만 자신이 독립된 국가로 살아가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른바 '대만 독립', 줄여서 '대독(台獨)' 운동이다. 이런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정파가 바로 대만의 야당, 그러나 올해 5월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는 차이잉원(蔡英文) 주석이 이끄는 민진당이다. 대륙 중국에게 이런 '대독' 운동을 결코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다.
대륙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청천백일만지홍기'는 이미 역사적 유물이 되고 말았다. 공개석상에서 이 깃발 흔드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만인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국기를 손에 쥘 수도 없는지에 대해 울분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건은 쯔위가 처음은 아니다. 대만 출신 가수 장쉬안(張懸)이 2013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공연하면서 대형 청천백일기를 가지고 나와 문제가 된 적도 있다.
대만은 지금 올림픽 등의 국제 행사를 참석할 때도 대륙 중국의 압력으로 이 국기 대신 올림픽위원회 깃발을 쓴다. 흰 바탕에 매화 문양 안에 청천백일이 그려진 깃발이다.
'92 컨센서스'에서 대륙과 대만 정부가 지혜를 발휘하여 "해석은 각자에게 맡긴다"고 한 것처럼, 이 문제에 대해서도 두 정부와 국민이 슬기로운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지 않을까? 대륙 입장에서 생각해보더라도, '청천백일만지홍기'는 청 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국가를 세웠던 인물이자 그들도 존경해마지 않는 쑨중산이 만들어낸 것이니, 역사적 의미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대륙에서는 '역사적' 깃발로, 대만에서는 '현실적' 깃발로 이해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여지를 준다면, 그것이 꼭 이토록 큰 문제가 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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