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은 옛날 중국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중국어의 '해음(諧音)'에서 비롯된 일이다. 중국인들은 비슷하거나 같은 발음의 글자를 활용해서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소망을 나타냈다. 해음 현상을 잘 이해하면, 중국의 그림이나 장식에 숨겨져 있는 문화 코드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 중국 민화에는 다양한 해음이 숨겨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물고기 그림이다. 물고기는 서양 기독교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양에서도 예부터 풍요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중국 민화에 나오는 물고기 그림은 대부분 '연연유어(年年有魚 : 넨넨여우위)'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때 물고기를 뜻하는 한자인 '어(魚 : 위)'는 넉넉하다는 뜻을 가진 '여(餘 : 위)'와 발음이 같다. 또 풍요롭다는 뜻의 '유(裕 : 위)'와도 발음이 비슷하다. 따라서 "해마다 물고기가 있다"는 말인 '연연유어'는 "해마다 넉넉하고 풍요롭다"는 뜻이 된다.
간혹 물고기 그림에 연꽃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연꽃을 뜻하는 한자인 '련(蓮)'을 써서 그림 제목을 '연연유어(蓮年有魚)'라고도 한다. '연연(蓮年)'이 '해마다'라는 말인 '연연(年年)'과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지만, '연연(連年)', 즉 '연이어 해마다'라는 말과 완전히 발음이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이 연꽃과 물고기가 함께 있는 그림을 보면서 풍요를 기원하는 까닭이다.
다른 예도 얼마든지 있다. 큰 코끼리 한 마리가 있고 그 위에 물병이 하나 놓여 있는 그림이 있다. 코끼리와 물병이라는 조합은 쉽게 해독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그러나 해음을 연상해 보면 이런 그림의 의미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코끼리는 '상(象 : 시앙)'이고, 병은 '병(甁 : 핑)'이다. '상'과 비슷하거나 같은 발음을 가진 해음 글자 중, 상서롭다는 뜻의 '상(祥 : 시앙)'이 있다. 중국어에서 '병'은 평안을 뜻하는 '평(平 : 핑)'과 발음이 같다.
돌 위에 큰 닭 한 마리가 서 있는 그림도 있다. 돌과 닭의 조합을 어떻게 풀 것인가? 돌은 '석(石 : 스)'이고, 닭은 '계(鷄 : 지)'이다. 위에서처럼 이 글자들의 해음자를 찾아보면 그 의미도 잘 풀어낼 수 있다.
우선 쉬운 것부터 찾아보면, 중국어에서 '계'는 '길(吉 : 지)'과 발음이 비슷하다. 말 그대로 길하다는 뜻이다. '석'은 방 또는 집을 뜻하는 '실(室 : 스)'과 해음이 된다. 따라서 "돌 위에 서 있는 큰 닭"이라는 말은 "집에 찾아오는 큰 길함"이라는 말의 '실상대길(室上大吉)'로 풀어낼 수 있다.
이렇듯 중국 민화는 많은 경우 해음을 통해서 본래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우리 관습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런 관습이 이미 널리 퍼져서 정형화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표적인 사례들만 알아두어도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앞서 말한 사례 외에도 말(馬)은 '곧', '머지않아(馬上 : 마상)'라는 뜻이고, 원숭이(猴 : 허우)는 '벼슬', '관직'의 '후(侯 : 허우)'를 뜻하며, 사슴(鹿 : 루)은 '녹봉'의 '녹(祿 : 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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