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과 '섭섭'의 감정은 통상 50대50의 비율로 표출되지만 이번엔 아닙니다. '시원'이 '섭섭'을 압도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주변의 반응이 그렇습니다. 조경태 의원의 탈당 선언에 대해 '잘 가라'고 손 흔들고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를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이해 못 할 현상은 아닙니다. 당 지도부와 조경태 의원의 불화가 커질수록 조경태 의원과 당 지지층의 반목 또한 깊어졌던 게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잘 가라 조경태' 현상은 이런 스토리의 결말쯤이 될 겁니다.
그렇다고 마침표를 찍을 수도, 막을 내릴 수도 없습니다. 조경태 의원의 탈당이 우리 정치에 던지는 메시지가 만만치 않게 큽니다. 긍정의 메시지가 아니라 부정의 메시지이긴 합니다만….
조경태 의원은 3선 의원입니다. 선수를 중시하는 우리 국회문화를 감안하면 존재의 무게와 위상이 남달라야 하는 중진 의원입니다. 당의 최고위원을 지낸 경력도 갖고 있고요. 이런 중진 의원이 4선을 노리면서 탈당을 선언한다면 거기에는 선수만큼의 무거운 메시지가 담겨야 합니다.
하지만 없습니다. 그의 탈당선언문을 읽고 또 읽어도 3선 중진의 무게감에 어울릴만한 깊은 고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당의 발전을 위해 저 나름 노력을 했지만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고 밝힌 게 전부입니다. 굳이 더 찾자면 '저 나름의 노력'을 부연설명하는 차원에서 붙인 말, "당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당이 잘못된 점이 있으면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는 말 정도일 겁니다.
이런 메시지는 평의원에게나 어울릴 법합니다. 중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한과 책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평의원이 자신의 무력함과 면책사유를 호소할 때나 던질 법한 메시지입니다. 4선을 노리는 3선 중진이 내세우기에는 민망함을 넘어 무책임하기까지 한 메시지입니다.
조경태 의원은 단순한 '3선'이 아닙니다. '영남 유일'의 3선입니다. 현 야권 입장에서 볼 때 특별할 뿐만 아니라 소중하기까지 한 특수 신분입니다. 하지만 조경태 의원은 이에 어울리는 메시지도 던지지 않았습니다. "야당의 불모지인 부산에서 험난한 정치 여정을 밟아왔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여정과 이력을 부각시키기 위한 병풍으로서 ‘영남 유일’을 활용했을 뿐 그 특수 신분에 맞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여야 공히 내보이고 있는 진영논리를 비판하긴 했지만 그 어조는 관찰자 시점의 평론이었습니다. '야당의 불모지인 부산에서 험난한 정치 여정을 밟아온' 정치인에 걸맞은 결기도, 비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위해 탈당을 감행하면서까지 4선에 도전하는지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막스 베버의 말을 빌리자면 조경태 의원은 정치인의 책임윤리도 신념윤리도 갖추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금배지가 목적인 '정치꾼'의 모습만 내보였는데요. 이 지점에서 분명히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비판이 단지 조경태 의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요?
야당 내에서 아주 잠깐 중진 용퇴론이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만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내분이 격화되면서 중진 용퇴론은 쏙 들어갔고, 용퇴 대신 탈당 도미노가 나타났습니다. 그 덕에 중진은 침묵을 엄폐막 삼아 자리보전의 똬리를 틀었습니다. 당을 이끌어야 하는 중진으로서 내분 사태를 막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중진의 공력이 스며든 내분 해결책을 신념에 찬 어조로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처신하면서 '나'를 최상위 가치로 놓았습니다. 이런 행태가 지속되는 한 탈당 감행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지금 야권에는 '조경태 아닌 조경태'가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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