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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통, '직립보행'과 '장수'의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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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통, '직립보행'과 '장수'의 합작품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요통에 관한 단상

진료하다 보면 참 많은 분이 각종 통증 때문에 오십니다. 그중에서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허리 통증입니다. 통증의 형태와 허리의 상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요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합니다. 요통만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저마다 성황을 이루고 있고, 광고를 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다양한 치료법이 있는데도 끊임없이 환자가 생기는 것을 보면 요통은 현대인의 숙명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인류의 기원>(이상희·윤신영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이란 책이 있습니다. '요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일어 그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분인 이상희 교수께 소셜미디어로 질문했습니다.

"요통의 원인과 관련해 인간이 직립 보행하면서 생긴 숙명이라는 의견과 이미 충분히 적응하면서 진화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있는데 교수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일단 '숙명'인지의 여부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요(진화에서 숙명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충분히 적응했으니까 이렇게 오랜 역사(500~600만 년)가 이어져 올 수 있었죠. 그런데 우리 몸은 50년 이상 살기에는 무리입니다. 허리뿐만 아니고, 제반 관절, 치아 등이 80~90년 이상 오랜 세월 버티게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지로 우리 인간은 진화 역사 대부분의 기간 그렇게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네 발로 걸었더라면 분명히 요통은 훨씬 드물게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통의 빈번함은 직립보행과 장수의 합작품(?)입니다."

현대인이 과거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것 같지만, 실제 절대 수명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오래 살게 된 사람의 숫자가 증가한 것뿐이라는 거지요. 같은 몸을 가지고(물론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좀 더 오래 살게 됨으로써 증가하는 다양한 질환이 있는데, 요통 또한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직립 보행이라는 모험을 선택함으로써 가해지는 구조적인 부담과 개개인의 체질적 소인과 누적된 생활 습관적 요인이 더해져 요통이라는 또 하나의 의료시장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한의학은 요통을 그 증상과 몸의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해서 치료하지만, 근본적인 요인은 신장(콩팥이라는 해부학적 장기 개념보다는 그것을 포함하기도 하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시스템적인 단위로서의 신장)의 기능이 약해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신장은 우리 몸의 근원적인 생명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지요.

살아가는 동안 이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적절히 충전하면서 지내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점차 그 성능이 떨어지지요(휴대폰 배터리를 연상하시면 될 듯합니다). 이 영향으로 허리를 지지해주는 힘 또한 약화하는데, 이를 요통 발생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으로 봅니다. 이 힘이 충분할 때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개선해주면 좋은 상태를 잘 유지하지만, 약해지면 표층의 증상뿐만 아니라 심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좋은 상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실공사한 건물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 다시 허물어지고 말지요.

저는 이러한 한의학의 양생적 관점이 인류가 장수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보신의 개념이 아니고요, 어찌 되었든 죽을 때까지 가지고 살아야 하는 내 몸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다루고, 나아가 감정의 균형과 정신기능의 온전함을 오래도록 유지할 것이냐에 관해 일정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요통과 관련해서는 요즘 우리 딸아이가 가르치듯 이야기하는 '아나바다'가 하나의 해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껴 써야 합니다. 팔은 쓸수록 강해진다는 일본 투수의 말이 있긴 하지만, 본인의 허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과부하를 받는 운동이나 나쁜 자세는 가능한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제 경험으로 강한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몸은 당장 보기는 좋지만, 노년이 되었을 때 문제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쉬기만 하라는 건 아니지요. 좋은 검을 만들기 위해서 담금질을 하듯, 적당히 쓰고 잘 쉬어주기를 적절히 해서 좋은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눠 써야 합니다. 우리 몸의 각 관절은 구조적으로 각기 조금씩 다른 운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허리는 좌우로 돌리는 운동은 잘하지만 굽혔다 펴는 데는 약하고, 무릎은 앞뒤로 굽히고 펴는 것은 잘 하지만 좌우로 회전하는 데는 취약하지요. 따라서 어떤 동작을 할 때 각기 관절이 가진 특성에 맞게 운동 부하를 나눠 주는 것이 좋습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티끌 모아 태산입니다.

바꿔 써야 합니다. 만성 요통이나 자꾸 재발하는 요통이 있다면 분명 자세나 몸을 쓰는 습관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온갖 치료를 받는다 해도 잠시의 위안밖에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써야 합니다. 공학이 발달해서 인체를 대신할 많은 인공구조물이 생겼지만, 내가 가지고 태어난 몸 같을 수는 없습니다(언제고 내 몸과 같은 것을 만들어내게 되겠지만, 그것을 마냥 축복이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가능하면 내 몸을 다시 잘 길들이고, 그 상태에 나를 맞춰가면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수술과 같은 큰 치료를 받고 난 후에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내 몸을 잘 길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재차 수술대 위에 눕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꽤 오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길어진 육체적 수명을 잘 다룰 수 없다면, 고통의 시간 또한 길어질 테니까요. 내 몸과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고, 내 마음대로는 아니라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다면 허리의 통증뿐만 아니라 건강 문제로 인해 인생이 발목 잡히는 일은 조금 줄어들(사라지진 않겠지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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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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