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가 열심히 활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 그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권영빈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진상규명소위원장은 무력감을 토로했다.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된 지난해 1월 1일 이후로 난항과 파행을 거듭했던 지난 1년. 그는 정부와 싸움에 이골이 날 대로 났다. 특조위가 '개점휴업' 딱지를 뗀 지 겨우 5개월. 그러나 정부는 이제 그만 활동을 접으라며 올해 예산을 6개월분밖에 주지 않았다. 진상 규명 관련 핵심 보직은 여전히 공석이다. 자칫 이대로 무력감 속에 특조위 활동이 끝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권 소위원장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끝날 때 끝나더라도, 특조위가 성과를 내지 못하게 만든 데 대한 책임 소재는 밝힐 겁니다. 특조위가 제대로 활동을 못 했다면 왜 그랬고, 누가 그랬는지, 보고서에 기록할 것입니다."
지난 13일, 서울시 중구 세월호 특조위 사무실에서 권 소위원장과 지난 1년의 특조위 활동을 복기하는 한편, 향후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진상 규명, 잘하고 싶었다. 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참사라는 이름이 붙은 사고들이 여럿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등등. 대한민국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사고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사고를 계기로 특별법을 만들고 위원회를 구성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한 경우는 없었다.
"대증요법만 있었죠. 근본적인 성찰은 없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 가족들이 한탄했다. "왜 사고 당시 열심히 하지 않았나."
'세월호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만을 위한 기구가 아니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되어왔던 참사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 모두의 염원이 담겼다. 나아가 '예비 참사 피해자'들이 될 수 있는 전 국민을 위해 만들어졌다. 세월호 참사가 대구 지하철 참사이고, 고양 종합터미널 화재 참사가 세월호 참사다.
"저도 아이들이 있는데, 수학여행 간다고 하면 세월호를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말곤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게 없었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하고 싶었다. 진도는 가보지 않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이 특별법 서명 용지를 국회에 전달하러 간 날 혼자 국회 앞을 서성거렸던 그였다. 누군가의 '대타'라고 연락을 받았지만, 자리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는 'MB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 특검팀 특별수사관 경험도 있는 법조인이다. 적어도 꼬인 실타래를 풀고 진상을 밝히는 일은 잘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아직 '진상 규명'의 '진'자에도 이르지 못했다. 진상 규명이라는 본 임무를 본격적으로 하기도 전, 지난 1년을 정부와의 줄다리기 하는 데 다 써버렸다.
시행령→활동 기간→예산... 손‧발‧목 꽁꽁 묶은 정부
지난해 봄,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 철회 요구를 위해 이석태 위원장과 권 소위원장 등은 광화문에서 야외 농성에 돌입했다. 3월, 정부는 파견 공무원인 기획조정실장이 위원회 및 소위원회 업무를 장악하도록 하는 특별법 시행령을 내놨다. '독립성 침해' 우려로 반발이 커지자 4월 수정안을 발표했다. 기획조정실장은 행정지원실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관할 업무가 '기획 조정'에서 '협의 조정'으로 살짝 바뀌었다. 명백한 꼼수였다. 정부는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며 5월, 시행령을 공포했다. 이석태 위원장은 "특조위를 무력화하는 허수아비 시행령안을 거부한다"며, 아울러 "특조위 출범은 인적, 물적 설비가 갖춰졌을 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수정 없는 수정안… 박근혜 정부, 장난하나", 이석태 "허수아비 시행령 거부…특조위 출범 아냐")
정부는 그러나 특조위 출범을 기정사실화했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특조위 활동과 임기는 시행령 특별법에 따라서 1월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해야 한다'는 세월호특별법 7조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셈이었다.(☞관련기사 : "시행령안 원점"…세월호 특조위, 개정안 제출키로)
정부의 다음 카드는 예산이었다. 예산안은 이미 2월에 제출했지만, 이후 6개월이 다 되도록 돈 한 푼 받지 못했다. 7월에 새로 뽑은 민간인 조사관 등 별정직 공무원 31명에게 줄 월급조차 없었다. 정부는 특조위가 행정지원실장, 기획행정담당관, 조사1과장 등 핵심 공무원 파견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특별법상에는 '위원장이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공무원의 파견근무 및 이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제21조 제1항)고 규정돼 있다. 이는 공무원 파견 요청이 특조위 위원장의 고유한 권한으로, 정부가 강요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3개 직위 인사가 되지 않은 기관에 예산을 줄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놨다.
"공무원 전원을 파견받아 즉시 활동에 들어가겠습니다."
결국, 또 한 번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관련기사 : 세월호 특조위, '공무원 파견' 받는 대신 예산 요구)
8월, 예산이 나왔다. 하지만 반쪽짜리였다. 당초 요구한 예산의 44%를 싹둑 잘라 줬다. 정부는 '타 기관과의 형평성'을 운운했다.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니, 참사 조사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돼있었다. 참사 실태 조사 연구비는 84%, 진상 규명 실지 조사는 68%, 자료 기록관 설치 및 운영비는 89%가 깎였다. 안전사회건설 종합 대책 수립 관련 비용도 83%가 줄어든 채였다.
"세금 도둑", "돈 잔치"... 여당의 '특조위 죽이기'
정부가 시행령으로, 활동 기간으로 돈으로 특조위를 옥죄는 동안, 여당은 여론몰이에 나섰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세금 도둑' 발언으로 선봉에 나섰다. '돈 잔치', '탐욕의 결정체' 등 자극적인 수사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내부의 적'도 있었다. 여당 추천으로 임명된 조대환 부위원장은 지난해 7월 언론을 통해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다. 특조위원들에게는 메일을 보내 "공연히 존재하지도 않는 별개의 진상이 존재하는 양 떠벌리는 것은 혹세무민이며 이를 위해 국가 예산을 조금이라도 쓴다면 '세금 도둑'이 분명하다"며 특조위 해체를 주장했다.(☞ 관련기사 : "조대환 결근 투쟁, 세월호 특조위 흔들기인가")
여당 특조위원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야당 위원들과 세월호 유족들을 '대통령 음해 세력'으로 몰아갔다. 유가족 한 명이 신청한 '청와대 등의 참사대응 관련 업무 적정성 등에 관한 조사',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조사'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조대환 전 부위원장 후임으로 임명된 이헌 부위원장을 비롯한 고영주, 석동현, 차기환, 황전원 등 여당 특조위원들은 11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특조위가 정치적 놀음에만 골몰하는 일탈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전원 총사퇴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여당 특조위원들의 회견 당일 'BH 조사 시 여당 위원 사퇴' 지침을 담은 해수부 문건이 공개됐다.(☞관련 기사 : 해수부 'BH 조사 시 여당 위원 사퇴' 지침 문건 논란)
권 소위원장은 "과연 정부가 제대로 된 조사를 하라고 특별법을 만들고 특조위를 만든 건지 의심스럽다. 훼방 놓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특조위가 열심히 활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면, 그 노력은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진상규명 소위원장으로서, '세월호 참사 원인에 정부가 있다'고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 책임이 있건 없건, 정부는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참사가 재연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정부의 '책임'입니다. 정부나 여당이나 '정부의 책임'이라는 문제를 단순히 현 정권의 약점으로 국한해서 볼 문제가 아닙니다."
위원장을 비롯해 임명장 받은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대통령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다. 인사치레로라도 "잘하라"는 '격려의 말씀'도 없었다.
"지금까지 청와대에 면담을 두 번 정도 요청했습니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시행령으로 농성할 때는 위원장이 청운동 청와대 앞까지 갔는데 경찰에 가로막혀서 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청와대와 스킨십이랄 게 전혀 없었어요. 심지어 작년 3월에 임명장 받을 때조차 그때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나가서 국무총리한테서 대신 받았으니까요."
"특조위 출범 1년이라면서 진상규명국장 임명은 언제?"
2015년 특조위가 맞닥뜨린 문제들은 지금도 여전하다. 첩첩산중이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지금은 특조위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었음에도, 진상 규명 관련 핵심 보직이자 실무 책임자인 진상규명국장 자리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 내부 채용 과정이 끝나고 11월에는 고위공무원 임용 심사위원회의 검증을 통과했다는 통보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임명은 감감무소식이다. 임용제청 결과를 문의하는 공문을 인사혁신처에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저는 이 사례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태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 이 문제 자체에 대해서 정부 부처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다른 파견공무원 12명 또한 인사 발령 요청에도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해명 역시 어디서도 받을 수 없었다.
특조위 활동 기간 논란은 여전히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현재, 언론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활동 기한을 '올해 6월 말'까지로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권 소위원장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대체 누구 마음대로 6월 말까지입니까. 정부도 아직 공식화한 적 없습니다. 다만 예산을 6월 말까지로 산정했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나오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렇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특조위 활동 기간 논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활동 기간 문제를 국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조위 존재의 근거는 국회가 통과시킨 법입니다. 이렇게까지 특조위 활동 기간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특별법을 제정한 국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는 건 정치권의 직무 유기라고 봅니다. 국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짓는다면, 특조위는 따를 용의가 있습니다."
"'특조위 무력화 시도' 기록만은 타협할 수 없다"
어쨌거나 특조위에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갈 길은 멀다. 수사권, 기소권은 없어도 특조위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여전히 꽤 막강하다. 최근 특조위 내부에서는 청문회 추가 개최와 더불어 '특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조위가 특검을 두 번 요청할 수 있습니다. 특조위 조사 활동이 다 끝나고 못다한 과업으로 특검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특조위 조사의 일환으로 특검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특검 요청을 위해선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넘기 쉽지 않은 문턱이다. 총선 출마를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며 자동 면직 처리된 황전원, 차기현 특조위원을 대신할 여당 추천 위원조차 충원하지 않는 여당이 쉽게 특검에 나설 리 없다. 그는 "이런 난국을 타개할 방안은 국민의 압박뿐"이라며 지지를 부탁했다.
특검, 청문회, 마지막으로 특조위에게 남은 카드는 '종합 보고서'다. 그는 '기록'만은 타협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조위가 무력화되면서 오히려 세월호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걸 압니다.(☞관련기사 : "박근혜 '시행령 정치', 박정희 '계엄령 정치'와 똑같다")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끝끝내 무력화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보고서에 낱낱이 기록하겠습니다. 왜 한계가 있었고, 성과가 없었는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후대가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더 강력하게 문제제기할 것입니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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