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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농성장서 치킨 먹는 일베,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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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월호 농성장서 치킨 먹는 일베, 불쌍하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②]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전재영 씨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안전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 설치된 행정기관이다. 하지만 그 역할 수행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외부에서의 '특위 흔들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는 특위 활동이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레시안>은 특위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참사 뒤,행정기관의 모습은 세월호나 대구지하철이나 다를 게 없었다.

<세월호, 어디로 가나>

늦은 아침. 50대 남성 김모 씨가 자동차 세척용 삼푸통이 든 검은 가방을 들고 지하철에 탔다. 삼푸통에는 4리터 분량 휘발유, 그의 상의주머니에는 일회용 가스라이터 2개가 들어 있었다.

김모 씨는 1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하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후유증으로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증세가 호전될 가망이 없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을 생각을 했다. 그가 지하철을 탄 이유다.

중앙로역에 김모 씨가 탄 지하철이 도착할 무렵, 휘발유통에 라이터 불을 댕겼다. 불길은 순식간에 객실로 번지면서 커졌다. 지하철 기관사는 불이 난 것을 확인하고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지만 가연성 소재로 가득한 전동차 객실 내부 불을 감당할 수 없었다. 승객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불이 난 전동차 반대방향으로 운행하는 열차가 화재발생역에 도착했다. 기관사가 미처 현장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반대편 승강장에 진입하면서 불길이 그쪽으로 확산됐다. 나중에 반대편 기관사는 중앙로역에 진입하기 전 연기를 발견했으나 큰 화재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내 화재가 유독가스가 자욱한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열차문을 닫고 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단전이 발생하면서 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팬터그래프(전차선으로부터 전력을 받아들이는 장치) 하강 등 여러 수단을 동원했으나 무용했다.

▲ 대구지하철참사 전동차. ⓒ연합뉴스

기관사, 통제실 직원만 징역형, 공무원은 처벌 0건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대로 있으세요."

몇 차례 전동차 출발에 실패하자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2~3회 실시했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다. 통제실에서 급기야 "연기가 많이 찼으면 문 열어 놓고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문은 정전이라 열리지 않았다. 기관사는 곧바로 대피 방송 후, 일부 승객과 지상으로 탈출했다.

그때 기관사는 문제의 '마스콘키'(운전용 키)를 뽑아서 대피했다. 나중에 마스콘키를 빼지만 않았다면 지하철 문을 열 수 있었고,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 문이 열린 최초 화재차량에서는 2명의 승객이 죽었지만 불길이 확산된 반대편 차량에서 무려 190명이 죽었다. 이 참사로 김모 씨는 무기징역, 기관사는 5년형, 통제실 직원은 4년형을 받았다. 나머지 관제사에게도 각각 금고 3년형이 선고됐다.

윤진태 당시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은 기소되긴 했지만, 사고의 직접적 책임이 아니라 사고 직후 물청소를 지시했다는 사실 때문에 기소됐다. 증거인멸 혐의였다. 물청소는 유류품 및 실종자 시신이 다 수습되기 전에 이루어져 유족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은 대법원까지 가는 항소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조해녕 당시 대구시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 대구지하철참사 당시 지하철 내부 모습.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에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때 학생들처럼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방화범, 기관사만 죽일 놈인 줄 알았죠. 그런데…"

"참사가 났을 때, 가장 죽일 놈이 화재를 일으킨 김모 씨였다. 그리고 불이 났는데도 전동차를 끌고 중앙로역으로 간 기관사, 이를 지시한 통제실 직원. 이들이 불을 내고 허둥대다가 참사를 키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마스콘키를 빼고 도망갈 수 있는가. 그것만 아니었다면 문을 열 수 있었고, 대부분 승객이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지하철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은 전재영 씨는 "그때는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매뉴얼대로 따른 것뿐이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난리판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나 싶다"라고 말했다.

전 씨는 기관사와 통제실 직원에게 전혀 잘못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보다 더 큰 잘못은 따로 있단다. 개인의 잘못으로 대구지하철참사를 설명하기에는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기관사가 매뉴얼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직장을 잃는다. 당시 상황을 긴밀하게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나. 그 사람은 위급한 상황이니 매뉴얼대로 한 거다. 마스콘키를 뽑아서 지하철을 탈출한 것도 매뉴얼대로 한 일이다. 문제는 위기상황에 맞춰 매뉴얼을 만들어놓지 않은 게 문제 아닌가. 그런 매뉴얼 하나 없었던 게 참사를 키웠다고 생각한다."

기관사는 사고가 일어나 자리를 이탈할 경우, 반드시 마스콘키를 뽑아서 가게 돼 있다. 기관사 이외 다른 이가 전동차를 조작할 경우,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당시 전동차 내 회로는 화재로 손상돼 있었다. 마스콘키가 꽂혀있었어도 전동차문을 조작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매뉴얼대로 행동한 기관사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전 씨 생각이다. 기관사, 그리고 통제실 직원에게만 책임을 묻는 식은 결국 본질적인 문제를 은폐하려는 의도라고 판단했다.

"위기 매뉴얼 하나 만들지 않은 공무원은 책임 없나"

"위기 상황에 맞춰 매뉴얼 하나 만들어 놓지 않은 공무원들은 이 참사에 아무런 책임이 없나. 안전장비 하나 마련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전동차를 싸구려로 제작한 것에는 책임이 없나. 참사 1년 후 2004년 1월, 홍콩 지하철에서 대구 지하철에서와 똑같은 화재가 발생했다. 50대 승객이 인화물질로 불을 냈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와 정반대였다. 타죽거나 질식사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10여 명이 다쳤는데 모두 타박상이었다. 왜 그런가."

대구지하철 참사 전동차는 1996년 한진중공업에서 제작했다. 대구지하철공사는 이 전동차 매입비로 5억2000만 원이 사용했다. 반면 우리나라가 홍콩 등에 수출하는 전동차는 무려 17억 원에 달한다. 수출용 전동차와 국내용 전동차가 차별 제작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구지하철참사 전동차 내장재는 허용규격 내에 있더라도 그 가연성 정도가 허용규격 중 가장 낮은 '자기소화성' 단계였다. 반면, 홍콩 전동차의 경우, 국내보다 성능이 월등한 불연재와 난연재를 사용하고 있었다. 홍콩 지하철 화재에서 10여 명밖에 다치지 않은 이유다.

전 씨는 "우리는 5억짜리 불타는 전동차를 쓰고 홍콩과 인도는 17억짜리 전동차를 사용한다"며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누가 졌나. 아무도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무원도 자기네가 잘못한 게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무조건 자기네는 잘못이 없다고 한다.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태도가 계속해서 대형 사고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참사가 발생했을 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니 공무원들이 안전을 위해 무슨 일을 하겠는가. 더구나 책임 소지를 밝히기도 어렵다. 우리는 가해자가 대구시다. 하지만 참사 수습도 대구시가 했다. 재난본부를 꾸리지 않았나. 자기가 죄를 짓고 자기가 수습하는 식이다. 그러니 자꾸 축소하려 하고 죄가 없다면서 은폐를 유도한다. 그게 뻔히 보였다."

▲ 대구지하철참사 다음날 지하철 물청소를 실시했다.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세월호 특위, 제대로 되겠나 싶다"

전 씨는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 씨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과 팽목항을 찾았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유가족들에게 지금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우리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뻔했다. 정부는 사실을 숨기려 할 거고, 순진한 유가족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기네는 다르다고 했다. 이미 언론에 정치인, 장관 등이 나와서 이것저것 다 해준다고 했다면서 우리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런 약속이 TV로 방영됐는데 안 해주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그때 5명이 갔는데 모두 답답해했다. 결국, 지금 봐라. 그때 약속했던 것 중에 지켜진 게 뭐가 있나. 없다. 우리와 똑같다.

우리는 대구시와 합의서를 썼다. 피해자를 수습하고 죄 있는 사람 처벌하고 추모사업(추모 교육관, 추모위령탑, 추모재단)을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하나도 지켜진 게 없다. 처벌된 사람이 있나, 추모 교육관은 고사하고 추모위령탑도 만들지 못했다. 위령탑이 만들어졌으나 이 탑에 '추모위령탑'이라는 명칭을 대구시가 못 붙이게 했다. 변명이 지역주민들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결국, 대구시가 그렇게 하기 싫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전 씨는 "물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라는 법적 기구가 만들어진 것은 발전된 점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지난 1년간 참사가 수습되는 과정을 지켜본 바로는 제대로 되겠나 싶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는 국민안전처, 해양수산부 등 세월호 참사에 직‧간접 책임이 있는 부처 공무원들이 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 씨 눈에는 '가해자'가 수습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세월호 농성장에서 치킨 먹는 일베, 불쌍하다"

▲ 전재영 씨. ⓒ프레시안(허환주)
전 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망치, 수동 문 개폐기 등이어디에 있는지 항상 확인한단다. 참사를 겪고 난 뒤부터다. 정부가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그다.

"자기의 안전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에 가서 치킨 먹고 피자 먹고 그러지 않았나. 이를 보면서 나는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참사가 자기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모른다. 나중에 후회한다. 지금 우리 사회구조는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모르고 날뛰는 모습이 불쌍했다."

전 씨는 "우리는 12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세월호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씨는 "정부가 '나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참사를 수습하면 또다시 대구지하철 같은, 그리고 세월호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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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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