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 주문 법안'인 경제 관련 법안들과 노동법 일방 처리를 위해, 그간 국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초유의 입법 절차를 하나씩 밟아나가고 있다.
그 첫 시작으로 새누리당은 18일 오전 국회운영위원회를 단독으로 열어, 일명 국회 선진화법 개정안(권성동 의원 대표발의)을 현장에서 상정한 뒤 약 5분 만에 다시 폐기하는 이례적인 '날치기'를 강행했다.
이는 상임위에서의 법안 폐기 후 7일 이내에 의원 30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경우, 그 법안을 곧바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도록 한 국회 선진화법 87조를 이용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렇게 현행 국회법 87조를 활용하면, 통상적인 법안 심사 절차인 '상임위 상정-토론-(표결)-가결-법사위 상정-법사위 가결'이란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야당의 반대를 우회해 쟁점 법안을 바로 본회의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새누리당이 이런 초유의 방식으로 개정하려고 하는 권성동 의원 발의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은 △천재 지변 △국가 비상사태 △여야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란 현행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 요건에 '재적 의원 과반수가 요청하는 법안'을 추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 당의 반대가 있으면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없게끔 해놓은 현행 국회 선진화법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내용이다.
이는 의석수의 과반을 점한 다수당의 국회 운영 독재를 사실상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서, 이렇게 되면 서비스발전기본법이나 노동 5법과 같은 치열한 쟁점 법안 또한 새누리당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처리 가능해진다.
야당 없이 개의부터 상정 거쳐 폐기까지 고작 5분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국회 운영위원회는 이날 개회 후 산회까지 불과 약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과정을 되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야당 의원이 전원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유철 위원장은 개의를 선언하며 "오늘 의사일정에 대해선 여야 간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자유롭게 발언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이자 운영위 여당 측 간사이기도 한 조원진 의원이 "지난 1월 11일 권성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아직 숙려기간을 거치지 않았지만 국회 입법 마비라는 비상한 상황이므로 (운영위 전체회의에) 상정해 달라"고 발언했다.
일반적으로 어떤 '개정안'이 발의되면 국회법 59조(의안의 상정시기)에 따라 발의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는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할 수 없다. 이를 '숙려 기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59조엔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로 위원회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지 아니하다"는 단서 조항 또한 있다.
새누리당은 '기존 국회 선진화법이 국회의 입법 활동을 마비시킨다'는 주장을 이 단서 조항에 그대로 대입했고, 이에 따라 원유철 운영위 위원장은 회의에 참석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권성동 의원의 국회 선진화법의 상정 찬반을 물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물론 전원 이에 찬성했다.
다음 절차는 '현장 논의'를 위한 안건 조정이다. 이날 운영위는 애초 여야 간 합의된 안건 없이 새누리당 단독으로 소집됐다. 야당이 이날 운영위에서 새누리당의 국회 선진화법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논의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던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원유철 위원장은 "권성동 의원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을 의사일정에 추가할지 여부를 두고 표결을 하겠다"며 참석 의원들의 '이의'를 물었다.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 질문에도 전원이 이의 없음을 밝혔다. 곧바로 원 위원장은 "가결을 선포합니다"란 말로 국회법 개정안을 의사 일정에 추가했다.
이렇게 이날 운영위 의사일정에 '급' 포함된 국회법 개정안은 다시 15일간의 숙려기간, 대체토론, 축조심사 및 찬반 토론도 생략한 채로 폐기 절차를 향해 달려갔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짜놓은 각본에 따르듯 '생략하려 합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찬반 토론입니다. 의견이 있으면 손들어달라'는 원 위원장의 말마다 '없다'고 답했다.
마침내 원 위원장은 "권성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으려는 데 이의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다시 새누리당 참석자 전원은 '없다'고 했고 이로써 해당 법안은 수 분 만에 현장 상정 후 폐기돼 국회 본회의로 부의 됐다.
더민주 "국회법 무력화하기 위한 위법 공작…법적 대응"
여당의 이 같은 희한한 '날치기'를 두고 현행법을 지킨 절차냐 아니냐란 여야 공방이 곧이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가 먼저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아 새누리당이 이날 한 날치기는 "자기들 손으로 개정을 주도한 국회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위법 공작"이라고 반발했다.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새누리당이 회의 △소집 △ 안건 수정 △안건 폐기란 절차에서 전부 현행 국회법을 따르지 않았다고도 비판했다.
국회법 49조에 따라 '여야 간사 간 협의'를 거쳐 회의를 소집해야 하나 이를 어겼고, 국회법 77조에 따라 의원 20명의 연서나 교섭단체 대표 간 협의가 있어야 안건 수정(회의 현장에서의 안건 추가)가 가능한데 이를 어겼으며, 국회법 58조에 따라 전문위원 검토보고·대체토론·축조심사 등이 있어야 하나 이 또한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는 "삼선개헌하듯 한 날치기"라면서 "원천 무표 불법행위에 대해 당의 사활을 걸고 모든 당력을 집중해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어 "법적 대응도 검토할 것"이라면서 아울러 "새누리당의 사과와 오늘 의결의 원천 무효화가 없다면 향후 어떤 의사일정이나 법안 심사에 일절 응할 수 없다"고도 했다.
새누리 "법 다 지켰다…야당이 71조를 몰랐던 거 같아"
반면, 새누리당은 현행법을 다 지킨 합법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원내수석부대표가 기자회견장을 떠나자 곧바로 들어와 "1월 15일 오후 여야 운영위 위원 모두에게 '안건 미정'으로 전체회의를 소집했다고 알렸다"고 주장했다.
또 회의 현장에서의 안건 추가를 가능케 하는 국회법 77조를 국회법 71조에 준용해서 해석하여 "의사일정을 변경한 것"이라면서 안건 수정이 이루어진 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법 해석을 내놨다.
국회법 77조는 더불어민주당 주장대로 "의원 20인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로 (본회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협의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의장은 회기 전체 의사일정의 일부를 변경하거나 당일 의사일정의 안건 추가 및 순서 변경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즉, 현장에서 사전 조율되지 않은 안건 추가를 하려면 20명 이상의 연서 동의나 여야 간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위원회에서의 동의는 특별히 다수의 찬성자를 요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동의자 외 1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제가 될 수 있다"고 한 국회법 71조(준용규정)에 적용하면 이날처럼 안건 추가의 요건이 확 낮아진다.
이날에는 조원진 원내수석이 권성동 의원 발의 법안의 안건 추가를 요구했고, 참석한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이를 동의했다. 이에 따라 현장 안건 추가가 원유철 위원장의 결정으로 합법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단 게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아울러 축조심사나 찬반 토론 등도 회의장 내 의결로 생략하였으므로 문제 될 게 없다고 조 원내수석부대표는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서는 "야당이 국회법 71조를 몰랐던 것 같다"면서 "상임위 전체회의에 안건을 상정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통상적인 방법인) 여야 간사 간 협의와 71조를 이용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권성동 의원이 11일에 개정안을 냈고, 15일 운영위 소집 요청도 했으며, 국회법 87조를 (새누리당이) 이용할 수 있다는 신문 기사도 많이 나왔다. 우리 (김정훈) 정책위의장도 '그렇게 할 가능성도 있다'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면 야당이 (이날 운영위에) 참석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야당이 판세를 잘못 읽고 그간 고수해 온 법안 처리 반대 방법인 '보이콧'으로만 대응하려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란 점을 사실상 인정한 발언이다.
다시 키는 의장에게…정의화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
다시 키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쥐게 됐다.
새누리당은 오는 22일(금요일) 안에 국회법 87조가 정한 본회의 부의 요건인 '의원 30명'의 동의를 받을 계획이다. 이렇게 본회의에 권성동 발의 국회법 개정안이 부의 되면, 의장이 표결을 위한 상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국회의장이 새누리당의 이날 운영위 날치기를 '어쨌거나 합법'으로 판단해 선진화법의 본회의 상정을 해준다면 과반 의원 수를 지닌 새누리당은 손쉽게 권성동 의원의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여야 모두 곧바로 정 의장을 압박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의 이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의장님께서 국회법의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이런 행위에 동조해 본회의를 열거나 상정하는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조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법에 전혀 하자가 없는 절차를 밟았다. 의장님은 국회법을 따르는 분"이라고 했다.
정 의장은 아직 법안의 본회의 상정 여부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마음속으로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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