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전부 나서서 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 중간층들이 별 볼일 없게 되지 않겠느냐. 처음엔 신선해 보이지만…."
"이쯤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뜨거운 화제를 불렀던 지난 2003년 '평검사와의 대화' 직후 당시 한나라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던 박희태 의원이 쏘아붙인 말이다. 같은 당 심재철 의원 역시 "국민여론을 의식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라고 비난했었다.
경찰서장 찾아가 혼쭐내고…
이명박 대통령이 31일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과 관련해 일산경찰서를 긴급 방문, 이기태 경찰서장을 면전에 두고 격노한 모습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일선 경찰이 아직도 형식적으로 너무…"라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격앙돼 있었다. "일선 경찰이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뛰어 나왔다"고도 했다.
안양 초등생 살인사건에 이어 벌어진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들이 경악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치안당국의 총체적인 기강해이는 민심의 불안 요인인 만큼 대통령이 직접 일선 경찰서를 방문해 관심을 기울인 걸 무턱대고 사시로 쳐다볼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경찰당국의 행태가 국민들로부터 비난받는 것과 치안행정을 포함해 국가운영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일선 경찰서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 대통령의 격노한 발언과 사색이 된 경찰서장의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낄수는 있겠으나, 그 너머에는 대중들의 공분을 활용한 포퓰리즘 통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지난 29일 국가보훈처 업무보고에 앞서 "오늘 일기예보가 틀렸네"라며 "뭐든 빠르면 좋은 줄 알고…"라고 불신감을 드러낸 대목도 그렇다. 기상청의 오보에 낭패를 본 경험이 누군들 없을까. 그런 대중들 심리에 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찰싹 달라붙는 맛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적에 힘입어 기상청의 오보가 좀 개선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톨게이트' 발언으로 애꿎은 비정규직만…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도 위태로워 보인다.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강조하다가 나온 이 대통령의 '220대 톨게이트' 발언 이후 관계당국이 "도대체 하루에 통행량이 220대뿐인 톨게이트가 어디냐"면서 부산을 떨다 일일 통행량이 282대인 문평 톨게이트가 지목된 일만 해도 그렇다.
문평 톨게이트에 근무하고 있는 인력은 도로공사 직원 2명과 용업업체 직원 16명.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 용역업체 직원들 중 상당수는 국가 유공자이거나 장애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히려 새로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대통령의 지시에 '가장 근접한' 이 톨게이트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을 두고는 "억지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무리 공사가 남아 있는 나주~광주구간(10.95㎞)이 개통되는 6월 초부터는 하루 통행량이 1000대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
이에 대해선 정치권의 빈축도 나온다. 통합민주당은 논평에서 "대통령의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을 생각은 않고, 바람보다 먼저 눕는 '예스맨'들 때문에 힘 없고, 빽 없는 백성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며 "틀린 것은 틀렸다고 얘기하는 분별력 있는 공무원을 보고 싶다"고 공무원 사회의 '과잉충성'이 낳는 부작용을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은 이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민노당은 "톨게이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난데없이 제비뽑기식 구조조정으로 해고될 처지에 몰린 것"이라며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처럼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 한 마디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맞아 죽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지적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충심'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불똥은 엉뚱하게도 해당 톨게이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튀고 있다. 자신이 지적한 일에 대한 신속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을 모셔야 할 공무원들의 과잉충성이 빚어낸 웃지 못할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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