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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길이 없다

[탁오서당] <명등도고록> 상권 제8장 ①

유용상의 말이다.

"<중용>이란 책의 내용은 죄다 우리 공자 선생님께서 사람들이 명(命)을 알도록 드러내 보이신 학문입니다. 그래서 첫머리에 '하늘이 명하신 것이 성'이라고 말한 뒤 이어 '하늘이 문왕께 내린 명이시여, 아름답고 덕스러워 영원히 그치질 않는구나!'1) 하였고, 마지막에서 또다시 '하늘이 만물을 키우시는데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라. 지극할진저!'라고 끝맺음을 하였습니다. 명에 대한 설명이 이처럼 자세하고, 사람들이 명에 대해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 이토록 이나 간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용>은 명을 설명했고 명은 또 중용(中庸)의 철학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까닭에 <중용>을 내세워 책 이름이 되게 하였지요.

중(中)이란 지극히 똑발라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이고, 용(庸)은 항상성이 지대해 제멋대로 바뀌지 않음입니다. 이를 두고 지극히 공정해 불편부당하고 항구적이어서 변화하지 않는 도리(理)라고 일컬으니, 그 도리는 바로 예(禮)이면서 곧 중용인 것이지요.2) 그래서 또 예를 알아야 한다(知禮)고도 말했습니다. 예를 안다는 것은 중용을 이해함이고, 중용을 이해하는 것인즉슨 천명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런데 심원하면서도 징조가 없어 탐색이 불가능한 천도로부터 비롯된 뭔가를 명이라고 일컬으니, 명인즉슨 허(虛)하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만약에 리(理)를 말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공적3)에 떨어질 수도 있겠지요. 생멸이 없는 그 상태를 명이라고 말한다면, 어찌 명을 안다고 하겠습니까! 진짜로 꽉 차 현허(玄虛)하지 않으며 막을 수 없는 상태로부터 비롯된 것을 일컬어 리(理)라고 하는데, 리인즉슨 행위로 연결되지요. 만약 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자칫 전요4)에 막혀버릴 수도 있습니다. 전요를 갖고 리라 주장한다면, 어찌 리를 안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짜로 명을 아는 자라면 예에 관해 꾸민 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제아무리 고요하고 엄숙해도 실제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중이라, 본래 지극히 공허(至空)한데 또 극도로 꽉 차 있기(至實)도 하니, 그리하여 진공(眞空)이 되는 때문이지요.5) 진실로 예를 아는 자라면 명에 대해서 헛소리하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겠습니까? 비록 끊임없이 움직이긴 하지만 내면은 또 장엄하고 고요하니, 본래 지극히 꽉 차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극도로 공허한 때문이지요. 그래서 묘유6)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공(眞空)과 묘유(妙有), 이 두 가지를 일컬어 '지극한 성실'(至誠)7)이라고 합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물이 있을 것이며, 천명이 귀하다 한들 그것을 어디에 쓰겠습니까?8) 묘유와 진공을 두고는 쓸모가 크지만 형체는 은미하게 숨겨져 있다고들 말합니다.9) 은은하게 감춰져 있지 않다면 어디서 광대한 쓸모가 나겠습니까! 예는 또 어떻게 존립하고요?10) 요즘의 공부하는 자들은 예 때문에 참된 마음과 믿음이 엷어지게 된다는 노자의 말씀만을 받들 따름입니다. 저들은 노자가 병통으로 여기며 탓한 예는 바로 공자가 사치할지언정 검소한 편이 낫다고 했을 때의 예11), 선배과 후배가 배운다고 했을 때의 예12), 자하가 예는 나중이냐고 반문했을 때의 예13)라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그들이 우리 공부자에게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예가 있고 안자(顔子)에게는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예가 있는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모름지기 간추려 집약하고 난 뒤라야 깨닫게 되고, 자신을 이겨내고 나서야 예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던가요? 집약하여 깨닫고 나면 근본으로 돌아가 만물의 화생(化生)을 도탑게 하는 큰 덕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14) 자기를 극복해서 예로 돌아가게 되면 근본을 세우고 천하를 통합함으로써 인정(仁政)에 따르도록 만들 수가 있지요. 이는 안자가 홀로 우뚝 자립했으면서도 편향된 바가 없을 수 있던 까닭입니다.15) 만약에 예를 모른다면 대체 무슨 수로 천하의 큰 근본을 세우겠습니까? 그러므로 예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예와 명(命)을 알 수 있는 방도란 <중용> 책을 읽어서 성인의 말씀(言)을 이해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성인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면 저절로 성인의 사람됨을 알 수가 있지요. 성인이 누군지를 알게 되면 저절로 내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천하를 인으로 돌아가게 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어, 만물과 혼연일체 한 몸을 이루는 존재가 됩니다. 나와 성인과 천지와 만물이 근본적으로 아무 구별이 없게 되는 거지요. 이처럼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 그로부터 예가 성립하고 거기서부터 명이 생겨나니, 바야흐로 군자(君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길이 없다’라고 말하였지요."

▲ 이지 고향인 천주(泉州) 청원산(淸源山)에 모셔진 노자 석상. 송대에 건립된 세계 최대의 노자상으로 일컬어지는데, 높이가 5.63미터나 된다. ⓒ김혜경

해설


지난 회에 이어 상권 8장에서도 지명(知命)·지례(知禮)·지언(知言)·지인(知人)을 해설한다. 앞 장이 명에 관한 해설이라면, 이번 글은 중용의 취지 및 예에 관한 집중적인 의론이다. 8장은 위의 글 말고도 지언에 관한 유동성의 견해와 이지의 보충설명이 뒤에 따라붙는데, 이 부분은 분량이 넘쳐 다음 회를 기약한다.

유용상(劉用相)은 유동성의 아들인데 그다지 출세하진 못했는지 구체적인 행적이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을 받고 호북성 용호까지 찾아와 이지를 본가인 산서성 대동으로 모셔오고 저녁마다 배석하여 가르침을 받곤 했다는 기록을 보면 학문에 뜻이 깊고 명민한 인물이었던 듯싶다. 그는 나중에 부친의 명을 받고 <도고록>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도고록>에는 이지와 함께 공부한 이들의 의론도 간간이 펼쳐진다. 덕분에 이 책은 한 사람의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라 당시 지식인들의 공통된 관심사나 공부주제에 관한 집합처가 되는데, 이런 서술방식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공함과 아울러 건조하고 심각한 철학 문제들에 대한 심적 부담을 덜어준다. 적절히 분산된 대화체의 문장 역시 극도로 압축된 내용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을 예비하고 있다. 제자가 열변을 토하고 후세에 이름 남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글에 약간이나마 여유를 부여하고 싶던 스승의 구상 때문이 아닌가 한다.

유용상이 논한 '중용'과 예 사이에는 리가 존재하고 명이 개입된다. 각각 독립된 개념이면서도 서로가 의지하고 연결되어 있다. 일테면 리는 명이 생겨나게 하고, 명은 예가 존립하는 근거가 되며, 중용은 또 예의 본질이라는 식이다. 자신의 명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안의 이치를 궁구해 중용의 도리를 깨닫고 예를 실천하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예는 물론 '번다하고 쓸데없는 예법'(繁文縟節)이나 루쉰(魯迅)이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사람 잡아먹는 예교'(吃人的禮敎)라고 비판했던 그런 경우가 아니다. 서주 시대에 주공(周公)이 "전장제도와 정신문화의 구축과 완성"(制禮作樂)을 주창하며 화하(華夏) 문명의 기틀로 선언했던 바로 그 '예'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예가 지닌 고유의 형식성 때문에 이를 불필요한 허례와 가식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예악의 개념이 출현한 이래 끊이질 않았다.

<장자> '외물'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유생이 <시경>과 <예기>에 의거하여 남의 무덤을 도굴했다. 큰 선비가 무덤 위에서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동녘이 밝아오는데 일은 어찌 되어가는가?' 작은 선비가 대답했다. '수의를 아직 다 벗기지 못했고, 입안에는 구슬이 들었습니다.' 큰 선비가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짙푸른 보리가 무덤가에 자라고 있구나. 살아서 은혜를 베풀지 못했는데, 죽어서 어찌 구슬을 물겠는가?'라고 하였지. 그놈의 대가리를 붙들고 턱밑을 지그시 누른 다음 쇠망치로 턱을 깨서 천천히 볼때기를 벌리되 입속의 구슬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꺼내게'"(儒以 <詩> <禮> 發冢. 大儒臚傳曰 : 東方作矣, 事之何若? 小儒曰 : 未解裙襦, 口中有珠. <詩> 固有之曰 : 青青之麥, 生於陵陂. 生不布施, 死何含珠為? 接其鬢, 壓其顪, 儒以金椎控其頤, 徐別其頰, 無傷口中珠!)

유가가 중시하는 예절이 얼마나 가식적인 것인지 풍자하는 우화인데, 이런 인식은 장자보다 앞선 노자라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대저 예라는 것은 속 깊이 우러나는 참된 마음과 믿음이 엷어지게 만들어 혼란의 단초가 된다."(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도덕경> 제38장)

노자나 장자가 예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초기 도가 사상가들은 원래 흥망성쇠의 이치와 치국의 요체에 관심을 집중시켰고, 그 중심가치인 무위(無爲)를 해치는 모든 작위적인 것들에 대해선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유장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들이 감지해낸 것은 유위(有爲)로 무위를 대체하고 윤리를 강조하면 할수록 자연이 부여한 질서는 엉망이 되고 혼란만 가중된다는 것이었다.

"위대한 도가 사라지면 인이나 의 따위가 내세워지고,
지혜를 앞세우면 크나큰 거짓이 생겨난다.
가까운 이들과 불화하니 효나 자애가 들먹거려지고,
나라가 혼란하기 때문에 충신이 나오는 것이다."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도덕경> 제18장)

노자는 심지어 예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했다.

"도가 사라진 뒤 덕이 나타나고, 덕을 잃자 인이 들먹거려지고, 인이 없어지니 의를 내세우고, 의가 사라지고 나자 예를 앞세우게 되었다."(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도덕경> 제38장)

본문에서 예는 두 종류로 나뉜다. 노자가 비판한 형식적인 예와 공자가 강조한 문명의 주성분으로서의 예다. 유용상은 노자가 허울뿐인 겉치레 예를 비판했다면서, 그 빌미나 비판의 근거가 모두 유가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행하라는 예,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후배가 배울 때의 예, 일의 순서를 정할 때의 예 같은 것들은 노자의 관점에서 볼 때 죄다 본질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질서를 보전하려는 고식적 방편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껍데기뿐인 예를 중시하는 사회는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e) 하는 문제의식이 아니라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how to behave) 하는 처세에 지배당하는 곳이다. 기존의 윤리체계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남 눈치나 살피게 만드는 획일적 기준으로 전락하니, 처세술은 기승을 부리지만 인간관계는 나날이 피상적이고 얄팍한 상태로 내몰릴 뿐이다. 그러나 공자가 문화의 주축으로 강조한 예가 노자가 비판한 그런 내용일 리 없을 것이다.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하루라도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천하가 모두 인에 귀의할 것이다."(克己復禮為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논어> '안연'편)

"안연이 한숨을 쉬며 탄식하여 말했다. '우리 선생님의 도는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고 뚫으면 뚫을수록 견고해지네. 바라볼 땐 앞에 계시더니 문득 또 뒤에 계시는구나. 선생님은 찬찬히 사람을 이끌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네. 학문으로 나를 넓혀주시고 예로써 집약해주시네.'"(顏淵喟然歎曰 :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논어> '자한'편)

'극기복례'는 자기 자신을 규제하고 단속함으로써 하는 일마다 예에 들어맞게 하는 것이고, '약아이례'는 자신을 예로 속박함으로써 군자의 행동거지를 독실하게 가다듬는 것을 일컫는다.

공자에게 예는 자기 수양의 방법이자 목적지였다. 그는 인(仁)이야말로 예의 본질이고, 예는 인의 실천양식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인이 겉으로 드러나면 예가 되니, 예는 실천규범일 뿐 아니라 도덕적 인식의 대상이기도 하다. 즉 개인의 내적 자각을 통해 내재화된 도리가 개체 중심적 노력을 통해 바깥으로 표현되면 그것이 바로 예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에게 인격 수양이란 바로 자신의 내재적 자각을 외재적 형식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 예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행위규범으로 규정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고.

공자는 말할 것도 없고 노자 역시 '예'는 문명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했다(앞에서 기술한 노자의 예 비판은 유가의 허례허식을 겨냥한 경우로, 노자는 본래 예를 '덕'(德)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덕례'(德禮) 혹은 '예악'(禮樂)으로 묘사되는 유가의 내용이자 목표에 대해서는 상권 15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된다.

▲ 공자가 노자에게 예에 관해 묻는 장면을 그린 '공자문례도'(孔子問禮圖).

각주

1) <시경> '주송·유천지명'(周頌維天之命)에 나오는 구절로 <중용> 제26장에 재인용되었다. "維天之命, 於穆不已." 그 아래 인용문은 <중용> 제33장의 끄트머리에 보인다. "'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

2) 리(理)와 예(禮)와 중용은 각각 독립된 개념이지만 고래로 '리'는 '예'라고 해석되기도 했다. <예기> '중니연거'(仲尼燕居)에서 공자는 "예는 리"(禮也者, 理也)라 말했고, '악기'(樂記)편에서는 “예는 리에서 바뀔 수가 없는 부분"(禮也者, 理之不可易者也)이라 하였다. 여기에 대해 청대 손희단(孫希但)은 주(注)에서 "예는 밖에서 만들어졌으면서도 온갖 사안의 '리'에 들어맞는다. … 만약 그것이 바뀔 수 있다면 주재할 수 있는 마땅한 리가 아니게 되므로 예가 되기에 부족해진다"(禮由外作, 而合乎萬事之理 … 若其可易, 則非理之當而不足以爲禮矣)고 설명했다. 이지는 이 책의 상권 제15장에서 "사람들 마음에 똑같이 여겨지는 바는 예가 되는데, 본래가 천변만화하는 생기발랄한 리”(禮爲人心之所同然, 本是一箇千變萬化活潑潑之理)라고 설명하여 '예'를 고대 계급사회의 행위준칙이자 도덕규범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중용'은 "불편부당하고 지극히 공정해 영원히 바뀌지 않는 도리"(大中至正常久不易之理)로서 공문(孔門)의 최고 도덕규범으로 간주되니, 리와 예, 중용은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3) 공적(空寂) : 불가에서는 제상(諸相)을 공(空), 생멸(生滅)이 없는 상태를 적(寂)이라고 일컫는다. 즉 사물에 자성(自性)이 없고 본래부터 생멸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4) 전요(典要) : 항상성이 있어 변치 않는 준칙이나 기준. <주역> '계사전' 하편에 다음과 같은 용례가 보인다. "도가 되는 것은 자주 옮겨 다니니, 변동하면서 머무르지 않는다. 우주에 두루 흘러 올라가고 내려옴이 무상하고 강함과 부드러움이 번갈아 바뀌니, 한 자리에 고정된 법규가 될 수 없다."(為道也屢遷, 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无常, 剛柔相易, 不可為典要)

5) 이지는 <분서> 권3 '심경제강'(心經提綱)에서 "기실 내가 말하는 색은 바로 공이니, 색의 바깥쪽에 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공이란 사실은 색이니, 공의 바깥에 색이 따로 있을 수 없구나. 색이 없을 뿐 아니라 공 또한 없는 상태, 이것이 바로 진공이다."(其實我所說色, 卽是說空, 色之外無空矣; 我所說空, 卽是說色, 空之外無色矣. 非但無色, 而亦無空, 此眞空也)라고 설명했다. 본문에서 말하는 '지공'과 '지실'은 공과 색으로부터 인신된 것인데, 여기서의 지공(至空)은 천도(天道)의 무성무취(無聲無臭)를, 지실(至實)은 〈중용〉에서 말하는 성(誠)을 가리킨다. 주희는 〈중용장구〉 제16장의 주(注)에서 '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이란 진실하여 망령됨이 없음을 일컫는다. 음과 양이 합해지거나 흩어지는 어떤 경우도 실재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발현을 이처럼 가릴 수가 없는 것이다."(誠者, 真實無妄之謂. 陰陽合散, 無非實者. 故其發見之不可揜如此)

6) 묘유(妙有) : 불교용어. '존재하지 않음의 존재성'(非有之有)을 가리키며, '공 아닌 공'(非空之空)인 진공(真空)과 상대되는 말이다.

7) 성(誠)은 본래 도덕적으로 신실하여 속임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중용〉에서 철학의 영역으로 발전시켰다. 진실하여 망령됨이 없다는 뜻이지만 천도(天道)나 하늘이 부여한 인성(人性)을 가리키기도 한다.

8) <중용> 제25장은 "성은 사물의 끝과 시작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도 없다"(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고 하면서 '성'이 세계의 본원이고, 사물은 성의 산물이거나 결과라고 여겼다. 또한 "하늘이 명하신 것을 일컬어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 "성실함은 하늘의 도"(誠者, 天之道也)라고 하여 성실함이 사람에게 체현되는 것은 하늘이 부여한 성(誠)의 착한 성질 덕분이고, 천명이 귀한 까닭은 그것이 사람에게 성(誠)을 부여하는 때문이라 하였다.

9) <중용> 제12장은 "군자가 고수하는 도는 밝게 드러나면서도 은미하여 찾아내기 어렵다"(君子之道費而隱)고 말한다. 여기서 비(費)는 쓸모가 넓다, 은(隱)은 형체가 은미하다는 뜻.

10) 예 역시 성(誠)과 천명(天命)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취지에서 한 말로, <중용> 제27장을 참조하고 있다. "위대할진저! 성인의 도여! 광대무변 흘러넘쳐 만물을 발육시키니, 하늘처럼 숭고하며 너그럽구나. 성인의 도가 넉넉하고 위대하구나! 예의가 삼백이요, 세세한 의례는 3000가지나 되는구나"(大哉聖人之道! 洋洋乎! 發育萬物, 峻極于天. 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

11) <논어> '팔일'편의 다음 대목을 가리킨다.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한다"(禮, 與其奢也, 寧儉.)

12) <논어> '선진'편. "선배들은 먼저 예악에 나아갔으나 다듬어지지 않은 치들이고, 후배들은 나중에 예악을 배워 군자로 보인다. 만약 둘 중에 선택한다면 나는 먼저 배운 이들을 쓰겠다."(先進於禮樂, 野人也; 後進於禮樂, 君子也. 如用之, 則吾從先進)

13) <논어> '팔일'편. "자하가 물었다. '어여쁜 미소에 보조개 생기고, 아름다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하니, 흰빛이 광채를 더하는구나. 이 노래가 무슨 뜻인지요?' 공자가 말씀하셨다. '그림 그릴 때 흰색 덧칠은 나중에 한다는 말이다.' 자하가 '예가 나중에 오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나를 깨우쳐 일으키는 자가 상이로구나.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子夏問曰 :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為絢兮. 何謂也? 子曰 : 繪事後素. 曰 : 禮後乎? 子曰 :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14) <중용> 제30장. "만물은 같이 자라면서도 서로 해치지 않고, 길은 나란히 뻗었어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작은 덕은 시냇물처럼 흐르고 큰 덕은 만물의 화생을 도탑게 하니, 이것이 바로 천지가 위대한 까닭이다."(萬物并育而不相害, 道并行而不相悖, 小德川流, 大德敦化, 此天地之所以為大也)

15) <중용> 제32장을 인용하여 안자가 지성(至誠)의 경지에 다다른 것을 예찬하고 있다.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이라야 천하의 상도常道를 장악할 수 있고, 천하의 근본을 세울 수 있으며, 천지의 화육을 알 수가 있다. 그런 지극한 성이 대체 무엇에 편향되리오?"(唯天下至誠, 為能經綸天下之大經, 立天下之大本, 知天地之化育. 夫焉有所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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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대전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와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대전의 한밭대학교 중국어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저기 다니며 하는 세상 구경을 좋아하다 보니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와 영국 런던 대학교(SOAS)에서 견문 넓힐 기회를 가졌고 중국 무한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싶어 여러 번 읽다가 포송령의 <요재지이>와 이탁오의 <분서>, <속분서> 같은 중국 고전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지행합일을 지향하는 자칭 개인주의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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