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혁신과 개혁은 영국 보수당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선제적이며 포용적이다.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한편으로 전통적 지지층을 견고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중도층 유권자를 견인하는 전략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지지층 확보를 위한 새로운 아젠다도 제시될 것이다. 계급적으로 중간층,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도층, 이슈로는 균질화되지 않은 유권자 층 공략을 위해, 여의도연구원은 청년정책, 양성평등, 환경 등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내년 총선에서 정부와 여당의 전략은 박근혜 정부와 박근혜 이후를 동시에 준비하는 내용으로 구성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친박과 비박 간의 견제와 균형이, 정책적으로는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 및 확대, 새로운 지지층의 확보가 목표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공천권 다툼과 별개로, 여의도연구원과 소장파 의원들, 개혁파 지자체장들이 온정적 보수와 강한 안보라는 새누리당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변화와 개혁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
<총선의 의미와 국민의 선택>
강원택 서울대학교 교수의 저서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동아시아연구원 펴냄)에 잘 나타나 있듯이, 영국 보수당의 생존 전략은 '변화와 개혁'이다. 보수당은 19세기 선거법 개정의 시기에 혹독한 참패를 경험하면서 '대중정당'으로서 보수당이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그 전략은 지금도 유효하다. 소수 특권계급의 정당에서 벗어나 전 국민의 정당이 되기 위해 선제적으로 변화하고 개혁을 시도한 보수당은, 20세기 자유당이 노동당에 밀려 존재감을 상실하는 가운데서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새누리당이 2016년 들어 당 차원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한 일은 당명 앞에 '개혁'을 붙이는 것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새해 첫 연설에서 "새누리당은 국민이 말하는 경제와 민생을 최고 핵심가치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개혁 선봉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새누리당은 2014년부터 당 최고회의에서 '혁신'과 보수를 연결시켜왔다. '보수는 혁신합니다'라는 로고가 그것이다. 새누리당의 혁신과 개혁은 단지 립서비스만은 아니다. 작년 새누리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은 유권자 분석, 정당 정치. 공천제도, 정치 및 사회 비전 등의 연구용역과 공식·비공식 토론회, 간담회에서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학자, 지식인들을 폭 넓게 초청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이 토론회와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다. 실제로 여의도연구원은 진보·보수, 여야를 넘나드는 국가적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당 연구소로서도 명확한 사회진단을 위해 다양한 견해를 편견 없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은 계파주의가 강하게 나타나면서 기존의 좁은 인력풀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야권과 아주 대조적이다.
이렇게 볼 때, 새누리당의 혁신과 개혁은 영국 보수당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선제적이며 포용적이다. 올해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한편으로 전통적 지지층을 견고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중도층 유권자를 견인하는 전략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방식은 한국사회의 현 문제점을 해결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다양한 정책적 수단의 정치적 활용에 있다.
먼저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경제, 사회적으로 1%의 상층과 30%의 하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상위 1%는 계급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이들은 유권자 숫자로는 미미하지만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언론, 학계에서 압도적 오피니언 리더십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견고한 지지는 필수적이다.
반면 하위 30%는 가치적인 유인과 더불어 역설적인 계급적 이유로 보수정당에 투표한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전통적 · 보수적 가치를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 가치적으로 보수적이며,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지적했듯이 '공정한 자본주의의 신화'를 내재화하기 때문에 계급적으로 보수적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적 특수성에 기반을 둔 반공 이데올로기와 안보 이슈,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가 이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게 되는 기반이다.
상위 1%와 하위 30%라는 전통적 지지층을 지속적으로 껴안으려는 시도는 현재진행형인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과 교과서 국정화 병행 시도에서 잘 나타난다. 즉, 새누리당은 상·하위 지지층의 모순적 결합을 정치적, 정책적으로 긴밀히 추진하고 있는데, 이 정책들은 상반되는 듯 하면서도 지지층에서는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전략에서 새누리당이 전략적으로 포기하는 집단은 소득 상위 10~20%의 고학력·고임금 전문직·노동자 계급이다. 이들은 현재 야당 지지의 핵심이고, 연령적으로 전통적인 민주화 세대이면서, 정치적 성향으로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깝다. 이들이 바로 박근혜식 노동개혁의 주요한 타깃이 된다.
이들은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상위 0.1%와 1%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있는 경제적 분배 요구의 짐을 함께 질 것을 강요당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작년 연말정산 사건이다. 대체로 연봉 6000만 원에서 1억 원 구간의 이들은 소득 분배에서 상위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지난해 야당은 이들에 대한 조세부담 강화를 반대했다.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야당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조세부담 강화를 지지하면서 역으로 상위 1%에 0.1%에 대한 조세부담 구간조정을 통해 복지재원 조달에 대한 요구를 강화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바로 이들이 야당의 가장 굳건한 지지층이기 때문에 야당은 딜레마에 빠지면서, 최종적으로 정부의 조세정책에 반대했다.
박근혜 정부의 강력한 노동개혁 드라이브는 이러한 야당의 정책적·정치적 딜레마에 기반을 둔 '두 국민 전략'이다. 이 전략은 새로운 지지층 창출에 기여한다. 상위 10~20%에 해당하는 여당에 적대적인 정규직 고임금 노동자를 고립시키면서, 전통적 지지층인 하위 30%에 더해 하위 50%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를 새로운 정치적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여당이 이러한 입장을 일관되게 관철한다면, 총선을 앞두고 어떠한 형식으로든 '노동개혁'의 후속작업으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확대, 고임금 노동자에 대한 '세제개혁'이 제시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실제로 온정적 보수주의자들의 미래 비전이면서, '개혁'을 통한 전통적 지지층 결집과 지지층 확대 전략이다. 이를 통해 새누리당은 정치적 이유로 맹목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하위 30% 지지층의 유지를 위한 경제적 대안을 온정주의적 정책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발점은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지속적 강조다. 지난 대선에서 복지가 보수/자유주의 정당 모두의 화두가 되었고 이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여의도연구원은 이미 작년에 2016 총선 주요 의제로 '격차 사회' 해소를 제시했고, 지난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화여대 강연에서 "시대정신이 뭐냐고 질문한다면 단연코 우리 사회 격차 해소에 있다"고 말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양극화 해소를 문제로 인식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되, 해결책은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아닌 저소득층 일부에 대한 과시형 공약과 일자리 정책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여의도 연구소는 이러한 대안의 유효성을 실제로 새누리당 지지층, 중도층 유권자의 의식조사를 통해 확보했다.
새로운 지지층 확보를 위한 새로운 아젠다도 제시될 것이다. 계급적으로 중간층,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도층, 이슈로는 균질화되지 않은 유권자 층 공략을 위해, 여의도연구원은 청년정책, 양성평등, 환경 등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에 대한 기초적인 사전 조사와 연구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여의도연구원에서는 작년 11월 30일 전국 3312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 대한민국 청년 실태백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헌재 청년문제의 특징을 '4대 미스매치', 대안의 모색을 '5대 Point'라고 요약하였다. 이 보고서는 여의도연구원 내의 '청년정책연구센터' 주도로 작성한 것으로 그 내용의 적실성을 따지기 전에 새누리당이 총선전략으로 청년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양성평등이나 환경과 관련해서는 정책적 접근도 이루어지겠지만, 사안의 특성상 이 가치들을 대변할만한 새로운 인물의 영입을 통해 이미지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총선에서도 이자스민을 영입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외국인 정책에 대한 불관용성을 지속하면서도 이미지 개선에는 성공했고, 실질적 득표전략으로도 유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북한 붕괴론과 통일 대박론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들어 한미일의 대북전략 관련 인사들이 하나같이 그러한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단히 무리한 것으로 보이는 위안부 문제 타결 시도에 대해서도, 북한 위기론을 통한 한미일 안보동맹 필요성의 강조로 어느 정도 타개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총선 전, 미국발 북한 위기론이 제기될 수도 있고, 공개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을만한 외교적 자극에 이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도 없지 않다.
종합적으로 보면, 4월 총선에서 정부와 여당의 전략은 박근혜 정부와 박근혜 이후를 동시에 준비하는 내용으로 구성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친박과 비박 간의 견제와 균형이, 정책적으로는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 및 확대, 새로운 지지층의 확보가 목표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공천권 다툼과 별개로, 여의도연구원과 소장파 의원들, 개혁파 지자체장들이 온정적 보수와 강한 안보라는 새누리당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변화와 개혁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선 이후 이들이 신주류를 표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리고 그 결과가 2017년 대선에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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