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하루에 오가는 차량이 220대인데 사무실에 직원까지 근무하는 곳이 있더라. 이런 식으로 집행과정에서 낭비되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이후 업무보고에서도 이를 몇 차례 더 언급하면서 공무원 사회를 질타했다.
그러나 차량 통행량이 가장 적은 곳은 중부고속도로의 지곡 톨게이트로 하루 평균 1400~1500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지적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까지 못 찾고 있을 뿐"이라면서 "곧 찾아 낼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국토해양부와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들은 당장 고민에 빠졌다. 대통령이 반복적해서 언급한 해당 톨게이트를 찾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저녁 국토해양부에서는 '드디어' 한 부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지난 해 11월 개통한 무안~광주 고속도로 구간의 문평 톨게이트의 지난 한 달 동안 통행량이 282대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이밖에 하루 통행량이 1000대 미만인 다른 11개 영업소도 함께 발표됐다.
국토해양부는 "해당 영업소의 근무인력 45명을 감축하여 연간 약 10억 원의 운영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언론에서는 마치 대통령이 지시해서 억지로 찾아낸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하이패스 이용율의 증가추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의 통행량만을 계산해 '220대'에 가장 근접한 수치를 발표한 대목을 두고는 "억지로 꿰맞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공개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던 만큼 해당 부처로서는 반드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반복적인 언급이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해해 달라"며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사례는 앞서 이 대통령이 '50개 생필품 특별 물가관리'를 지시하자 관계부처에서 "50개가 도대체 뭐냐"며 부산을 떤 끝에 소비자단체와 협의해 50개의 품목을 쥐어짜낸 것과 상통한다.
곳곳에서 '과잉충성', 비난일면 '벙어리 냉가슴'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잉충성', '전시행정'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마치 전봇대를 뽑듯 속전속결로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당장 질타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이 대통령이 '공무원 머슴론'을 제기하면서 정부 관계자로부터 '공무원 6일제 근무' 가능성이 언급된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공무원의 주간 근무시간을 4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는 행정안전부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과도 배치되는 것.
공무원 사회는 당장 벌집을 쑤신 것처럼 들끓었다. 전국공무원 노동조합도 강력하게 항의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주6일 근무제에 대한 검토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의 '머슴론'에 대한 한 정부 관계자의 '과잉해석'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여론의 비난이 관계부처에 대신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기업인들도 공항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국토해양부가 기업인들에 대한 '장관급 대우'를 인천공항공사에 지시하자 욕은 국토해양부가 먹었다. 귀빈실을 이용하게 될 기업인은 1000여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해당 공문에 '장관급 대우'가 명시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3부요인에 속하는 경우처럼 귀빈실에서 바로 탑승하는 것과는 다르다"면서 "'공항에서의 귀빈예우와 관련된 규칙'에 따르면 '장관급' 귀빈실 이용은 가장 낮은 수준의 예우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의 지시대로 기업인들의 귀빈실 사용을 허용하는 데 있어 관계규정을 따르자니 '장관급 예우'를 명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친기업 정부에서는 기업인들도 장관급이라는 얘기냐"는 지적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대통령과 관계부처의 지시를 무시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면서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시를 따르자니 비판이 뒤따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의 직접적인 주문을 외면할 수도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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