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인 방향은 예상대로 나오고 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추가적인 제재와 한미연합전력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뒤통수를 맞은 중국도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밝혀 대북 제재와 압박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일본도 자신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으로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호기를 부린다. 유엔 안보리는 “"추가 제재를 담은 새로운 대북 결의안 채택"을 추진키로 했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면서 절대로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다짐한다.
언론과 정치권 일각에서도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한을 끝장 낼 수 있는 제재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고나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서야 한다', '사드(THAAD)를 조속히 배치해야 한다', '대북 확성기를 다시 틀어야 한다' 등등.
이런 대응과 반응은 '김정은의 북한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직시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이번에 나오고 있는 주요 국가들과 유엔 안보리의 대응은 이미 수없이 반복되어온 것이다. 제재의 강도를 높이면, 특히 중국이 적극 동참하면 이번에는 달라질 것이라는 바람도 나오고 있지만, 이것 역시 익숙한 얘기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거나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제재와 압박, 그리고 무력시위 위주의 접근은 실패한 정책의 확대재생산을 낳을 공산이 크다.
북한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제재도 마땅치 않거니와 설사 그런 방향으로 가더라도 한반도는 그야말로 '아마겟돈'을 피할 수 없다. '거대한 버섯구름'을 동반하는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지옥이다. 미국 전술핵 재배치나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은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사드 배치가 다시 공론화되면 미-중 간의 갈등 첨예화가 대북 공조를 밀어내게 될 것이다. 대북 확성기를 다시 트는 것 역시 메마른 산에 담뱃불을 던지는 격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은 북핵 상황을 자신들의 전략적 그림에서 본다. 미국은 북핵을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자양분으로 삼아왔다. 이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중국은 북핵 반대와 북한의 전략적 가치 사이에서 동적인 균형을 취해왔다. 북한은 이러한 틈새를 이용해 양탄일성의 문턱을 넘어서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들 세 나라가 저마다의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데, 한국의 전략은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정말로 북핵이 한국에게 '존재론적인 위협'이라면 우리는 이에 걸맞은 비상한 각오를 가져야 한다. 단, 그 비상한 각오가 존재론적인 위협을 키우거나 그 위협을 현실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앞서 열거한 대응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대안적인 각오는 지금까지 제대로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데에 있다. 그건 바로 북한에게 핵에 의한 안보가 아니라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를 제시하면서 대담판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한반도 군비통제와 군축, 한국이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시와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신뢰구축 등을 망라한다. 뻔한 얘기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한-미-일이 이 길을 제대로 가 본적은 한 번도 없다.
이 길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 본 적은 있었다. 먼저 1999~2000년 한-미-일 세 나라의 외교 공조로 만들어진 페리 프로세스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미국의 정권교체로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2007~2008년에도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미-일이 3단계에서 다루기로 했던 북핵 검증을 2단계로 가져오면서 유실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흡수통일론에 사로잡힌 탓이 컸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 북핵은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괴물처럼 커져 버렸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핵무장을 전제로 국가전략을 짜고 있어 김정일 시대보다 비핵화를 유도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포기해도 안 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이다. 어렵고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핵화는 평화와 통일, 한반도 주민들의 안녕과 복지, 그리고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김정은의 전략적 판단에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에 맞춰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고통의 크기를 키워 북한의 굴복을 유도하려는 방식이었다. 이건 실패로 끝났다. 이제는 접근을 달리 해야 한다. 핵 포기를 고려할 수 있을 정도의 이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건 결코 경제적 지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서 열거한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가 핵심이다. 또한 이건 북한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관련국 모두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먼저 북핵 실험이 위기로 치닫지 않도록 단호하면서도 절제된 자세가 필요하다. '강 대 강'의 대결보다는 냉각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북핵 실험을 이유로 한-미-일 군사 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 나라의 '군사' 공조가 아니라 '제2의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는 '외교' 공조이다. 이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5자 연대를 통해 북한과의 대담판 틀을 짜야 한다. 그리고 8년째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는 6자회담의 조건 없는 재개와 9.19 공동성명 합의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는 남-북-미-중 4자간 평화포럼의 시동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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