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탈당으로 제1야당의 분당(分黨)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편치 않은 심기를 드러냈다. 문재인 대표는 김 전 대표의 탈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은 채 "총선 승리"만을 강조했지만, 다른 최고위원들은 뼈 있는 말 한 마디씩을 던졌다.
문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며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더 젊고 새로운 당이 되어,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겠다"고 했다. '더 젊고 새로운 당'은 그가 전날 김 전 대표의 탈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내놓은 답을 상기시킨다. 그는 전날 "새해부터는 오로지 단합의 길로 나가길 간절히 바랐는데 참으로 안타깝다"며 "이런 저런 연유로 우리 당 의원들이 출마를 하지 않거나 탈당해서 비게 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서 대한민국 정치를 물갈이하고, 우리 당을 더 젊고 새로운 정당으로 바꿔 나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을 영입한 것을 거론하며 "밀물의 힘은 썰물보다 강하다"면서 "표창원, 김병관이라는 양 쪽 날개가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표의 탈당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전병헌 최고위원도 "신년 연휴가 끝나기 전에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 있어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김 전 대표 탈당을 간접 거론하며 "국민의 요구가 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국민은) 파괴적 혁신이 아니라 생산적·발전적 혁신을 바라고 있다. 파괴는 절대 좋은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전 최고위원은 또 "분열은 실패, 단결은 성공"이라며 "단결이라는 키워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과도 같은 말이다.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는 당의 모든 당원과 원로 어르신들도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금주 중 탈당이 거론되는 동교동계를 압박했다. 그는 "야권이 분열한 모습을 보면 김 전 대통령은 통곡할 일"이라고 했다.
이종걸·박지원 "문재인, 김한길 탈당 기다렸나…분당 예측돼 불행한 일"
범주류라고 할 수 있는 당 지도부의 이같은 기류에 대해 비주류에서는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평화방송(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대표를 향해 "어제 말씀하신 것처럼, 김 전 대표가 탈당하자 바로 '과감하게 새 인물 내세우겠다' 라고 하는 것은 나가기만 기다린 것 아니냐"며 "서로 간의 예의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내대표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결단이 곧 탈당은 아니다"라며 "야권 통합을 위한 지혜로운 방법을 택하는 그런 결정이 되어야겠다. 이 시기에 저 하나의 일도양단적 결정은 그렇게 좋은 결정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SBS 라디오에 출연해 김 전 대표의 탈당을 '분당 신호탄'으로 해석하며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야권은 본격적 분당을 시작으로 앞으로 총선에서 상당히 어두운 결과가 예측돼서 참 불행한 일이다(라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목포 기초·광역의원들 25명의 90%가 '탈당해서 움직이는 게 좋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고, 핵심 간부들도 시민들도 같은 의견"이라고 탈당을 시사하면서 "저는 어떤 경우에도 목포에서 출마해서 목포 시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호남을 숙주로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박준영, 박주선, 천정배, 김민석 네 분이 어떠한 경우에도 통합을 해서 안철수 신당과 또 통합을 해야 하고, 안철수 신당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라며 "이러한 상태로 총선을 맞더라도 저는 총선 후에, 5~6월 20대 국회 원구성 전에라도 야권 통합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통합을 위한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총선 전에는 통합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통합행동'은 다른 목소리?…김부겸 이어 민병두도 文·安 모두 비판
재선의 민병두 의원은 한국방송(KBS) 라디오에 나와 "(비주류가 요구했던) 전당대회가 후유증이 크다고 문 대표가 말씀하셨는데, 전당대회보다 천 배, 만 배 역사적으로 크고 긴 후유증이 분당"이라며 "지금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안타깝다"고 했다. 민 의원은 김 전 대표 시절 주요 당직을 지내 한때 '김한길계'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최근 박영선 의원 및 김부겸·송영길 전 의원 등과 '통합행동'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그는 라디오 진행자가 '김 전 대표가 민 의원을 영입하려고 했다는데'라고 묻자 "최근에는 본 적 없다"고 했다.
민 의원은 또 안철수 신당의 위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는 "다음 선거에서 전부 합쳐서 (수도권에서) 10여 석 정도 가져갈 것이고, 호남에서 절반 이상 가져간다고 한다면 3당 체제가 가능하다"면서도 "그런데 그 이전에 문제는, 지난번 4.29 재보선 서울 관악을 선거에 정태호·정동영 두 후보가 나가서 패배했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발버둥을 쳐도 야권 분열은 패배가 자명한데 지금 정치권만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에둘러 안철수 신당 쪽을 비판하기도 했다.
앞서 민 의원과 '통합행동'을 함께 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은 '나중에 어차피 함께 할 것'이라며 문·안 양쪽을 모두 비판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김부겸 "문재인·안철수, 증오 발언 자제하라") 역시 통합행동 소속인 박영선 의원의 거취도 주목받는 중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새해 인사 겸해서 의견을 나누었지만 박 의원도 상당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저는 그렇게 쉽게 결단을 내리진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서 통상 '결단'은 탈당을 의미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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