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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知命)·지례(知禮)·지언(知言)·지인(知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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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知命)·지례(知禮)·지언(知言)·지인(知人)

[탁오서당] <명등도고록> 상권 제7장

〈중용〉에서는 '하늘이 사람에게 명하신 바가 성(性)'이라고 말하는데, 이 '명'(命)이란 것이야말로 성의 근원입니다. 만약 명을 모른다면 그 근원을 알 도리가 없으니, 무슨 수로 군자가 되겠는지요? 명을 알고 나면 온갖 사안이 다 마땅해지면서 예(禮)를 알고 말(言)을 이해하는 공부도 그 안에 저절로 깃들게 됩니다. 어찌 명을 알고 난 뒤에 다시 예를 알고 언어를 이해하는 성취가 생겨나는 것이겠습니까! 혹은 예를 알고 언어를 이해하는 성취란 바로 명을 알았기에 떨어지는 실질적 결과일까요? 대저 하늘의 명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데 어떻게 그에 관한 말들이 생겨났을까요?1) 언어는 명과 별 상관이 없는 듯싶은데, 왜 두 가지를 그렇게나 서둘러서 나란히 거론하셨는지요?2) 공부자는 명에 관해선 아주 드물게 말씀하셨으니, 어떻게 그분이 말한 내용이 바로 그 드물게 말씀하셨다는 '명'(命)을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3)

〈중용〉에선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천도에 대해 몰라서는 안 된다"4)고 하였고, "백 대 삼천 년 뒤의 성인이 보더라도 아무 의혹이 없어야 한다'5)고도 말하였다.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니, 인간을 이해함은 군자에게 정녕 중요한 일인 것이다. 말(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이 가야할 길'(人道)을 알 길이 없으니,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 군자에게 더없이 중요한 덕목이 된다. 가령 소인(小人)을 관찰해보자. 그들은 천명이 뭔지를 모르니, 이런 까닭에 성인께서 내리신 유익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모독한다. 천명에 관한 성인의 훌륭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즉슨 성인이 대인(大人)이신 줄 알지 못하고 기필코 그들을 얕잡아보고야 마는 것이다. 대인을 깔보는 행위는 인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성인의 말씀을 모독하는 것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고.

▲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려 녹명(祿命)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곽자의(郭子儀, 697~781)가 가족과 함께 연회를 즐기고 있는 광경을 그렸다.

해설

이번 장에서는 지명(知命)·지례(知禮)·지언(知言)·지인(知人)에 관해 토론한다.
공자의 교육관이라면 위의 네 가지 목표를 달성해 지혜롭고 현명한 군자를 키워내는 것이었다. 곧 명을 알고, 예에 밝으며, 말을 이해하고, 사람을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인간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다 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일단 명을 알면 온갖 사안이 마땅해지며 예와 말에 관한 공부도 저절로 이뤄지게 된다고 말한다. 명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것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본문은 우선 〈중용〉 첫머리에 보이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대목을 인용하고 나서 다시 〈논어〉'요왈'(堯曰)편의 공자 말씀으로 명을 규정한다.

"객관적 규율인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도덕규범인 예를 알지 못하면 공업功業을 이룰 수 없으며, 언어를 분변分辨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이해할 수가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이 문장은 〈논어〉에서도 가장 마지막 단락이고, 그래서 〈논어〉 전편의 취지를 수렴한다고 일컬어진다. 공자의 사상을 명과 예와 말의 세 가지로 압축한 것이다. 그런데 또 명은 예와 말을 주재한다 했으니, 명은 보다 높은 층위에서 예나 말 같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용을 한다.

명은 곧 '천명'(天命)인데, 공자는 이 단어에 깃든 뜻을 두루 활용하였다. 예컨대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고 할 때는 천지만물의 자연법칙이고, "하늘이 명한 것을 일컬어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고 했을 때는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본성을 가리킨다. 요절한 안회를 두고 "불행히도 단명해 죽었다"(不幸短命死矣)거나, 병이 든 염백우의 손을 붙잡고 공자가 "맥이 없으니 명이 다했구나,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亡之, 命矣夫, 斯人而有斯疾也)라고 탄식할 때는 주어진 수명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천명은 하늘이 주재하는 운명이나 숙명이고, 파생하여 개인의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천명은 "원래 그러한,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천명을 다시 '덕명'(德命)과 '녹명'(祿命)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덕명은 선을 행하고 덕을 쌓는 일(修善行德)이고, 녹명은 빈부·귀천·수요·궁달(貧富貴賤壽殀窮達) 같은 팔자에 타고난 복록을 가리킨다.

공자가 덕명을 중시한 것은 인간의 타고난 운명까지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는 때문이었다. 타고난 복이야 당사자가 결정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덕을 쌓고 선행을 베풀면 자신이 명을 주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고 보았다. 공자가 매사 "자신에게 달렸다"(由己)고 강조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6)

공자에게 천명은 앎(知) 뿐만 아니라 또 두려움(畏)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는 지천명(知天命)을 말하는 외에 외천명(畏天命)을 강조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외경이 있다. 천명을 경외하고, 대인을 경외하고, 성인의 말씀을 경외한다. 소인은 천명을 알지 못하므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인을 깔보고 성인의 말씀을 모독한다"(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논어〉'계씨'(季氏)편.

천명을 경외하는 까닭은 일의 성패든 도의 실행 여부든 간에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유학자들은 사람이 재능과 덕을 지니고 노력하는 것과 기회를 포착하여 성공하거나 죽고 사는 것 같은 운명은 서로 별개의 일이라고 간주했다. 청대 손성연(孫星衍)이 편집한 〈공자집어〉(孔子集语)에는 공자의 말이라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옛날 성인군자들 중에는 박학하고 지혜로우면서도 때를 만나지 못한 이가 많았다. 어찌 나 혼자만 불우한 것이랴! 현명함과 불초함은 타고난 재능이고,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사람에게 달렸다. 때를 만나고 못 만남은 시절운이고, 죽고 사는 일은 하늘의 뜻이다"(古聖人君子博學深謀不遇者衆矣, 豈獨丘哉! 賢不肖者才也, 爲不爲者人也, 遇不遇者時也, 死生者命也.)

얼핏 보면 숙명론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버리는 소극적인 팔자타령은 아니다. 덕명을 닦아 타고난 녹명에 편안한 군자가 되라는 얘기다. 공자가 제자인 안회를 극찬했던 것은 그가 근심 가운데서도 삶의 기쁨을 발견할 줄 아는 지혜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한 소쿠리 밥과 표주박의 물을 마시고 누추한 집에서 산다. 남들은 그 걱정을 이겨내지 못하지만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구나"(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논어〉'옹야'(雍也)편.

안회가 '가난해도 즐기는'(貧而樂) 현명함을 지닐 수 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천명을 온전히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천명을 아는 자는 또 그 천명에 편안하면서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니,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 일이 성사되면 기쁘지만 실패하더라도 그 잘못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는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이 "일은 사람이 도모하지만 그 완성은 하늘에 달렸다"(謀事在人, 成事在天)고 탄식한 것도 같은 맥락일 터이다.

자로가 완성된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장무중처럼 지혜롭고, 맹공작처럼 욕심이 없으며, 변장자처럼 용감하고, 염구처럼 다재다능하며, 거기에 예악으로 문채를 더하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이렇게 덧붙이셨다. "요즘 기준이라면 완성된 사람이 꼭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느냐?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급사태를 당해 목숨까지 던지며, 장시간 곤경에 처하더라도 평생 받들겠다 맹세한 말을 잊지 않는다면 그 또한 완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曰: '今之成人者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논어〉'헌문'(憲問)편.

공자가 이상적으로 여긴 인간 유형은 자기 이익보다는 의로움이 먼저고,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내던지며, 지조와 신념에 투철한 이다. 그는 이런 사람을 군자라고 불렀다.

천명을 깨닫고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는 군자가 되어 나설 때, 유학이 내세우는 '천인합일론'의 종지는 비로소 완성된다. 하늘이 부여한 명에 따라 예와 말로써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고 "백 대 삼천 년 뒤의 성인이 보더라도 의혹이 없을" 정도로 보편성을 구현하면 천도가 절로 나한테 다가오게 된다. 그렇게 현실에 발을 딛고 노력하면서 한 걸음씩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그 지점이 바로 공자가 말한 군자의 길, 인간의 길이다.

각주

1) 〈중용〉 마지막 장에서 〈시경〉'대아·문왕'(大雅文王)편의 "하늘이 만물을 키우시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라"(上天之載, 無聲無臭)는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 문장에서 다시 차용되었다.

2) 〈논어〉'요왈'(堯曰)편 말씀에서 공자가 지언(知言)과 지명(知命)을 나란히 거론한 상황을 가리킨다.

3) 〈논어〉'자한'(子罕)편. "공자는 이익과 운명과 인도仁道에 관해선 아주 드물게 말씀하셨다"(子罕言利, 與命, 與仁.)

4) 〈중용〉 제20장. "思知人, 不可以不知天." 즉 사람을 사랑하고 현인을 존숭하고 싶다면 천명을 몰라선 안 된다는 뜻인데, 주희는 <<장구>>에서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어버이와 친하게 되는 인을 남김없이 실현하려면 반드시 현인을 존숭하는 의로움을 거쳐야 하고, 그래서 또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欲盡親親之仁, 必由尊賢之義, 故又當知人.)

5) 〈중용〉 제29장. "귀신에게 물어도 의심이 없으면 하늘을 아는 것이고, 백 세 삼천 년을 기다려 나타난 성인이 판결해도 의혹이 없으면 인간을 아는 것이다"(質諸鬼神而無疑, 知天也; 百世以俟聖人而不惑, 知人也.)

6) 공자는 인을 설명할 때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을 이겨내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극기복례하게 되면 온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을 행함은 자기로부터 말미암으니 어찌 남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리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논어〉'안연'(顏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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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대전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와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대전의 한밭대학교 중국어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저기 다니며 하는 세상 구경을 좋아하다 보니 하버드 대학교 옌칭 연구소와 영국 런던 대학교(SOAS)에서 견문 넓힐 기회를 가졌고 중국 무한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싶어 여러 번 읽다가 포송령의 <요재지이>와 이탁오의 <분서>, <속분서> 같은 중국 고전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지행합일을 지향하는 자칭 개인주의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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