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기억이 있는 클래식 음악인들이 희망을 노래한다. 하지만 희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는다.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다. 허구다. 현실에도 <베토벤 바이러스>가 있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원 해고 사태와 이 드라마는 언론에서 단골로 비교하는 아이템이 됐다. 이번에 해고 당한 입단 5년차 강유미씨는 며칠 전 '네티즌 여러분께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불행하게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보았던 단원들의 모습과 우리는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가 착착 추진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며 단원들은 파업을 했다. 드라마의 '석란시향'도 해체에 항의하며 파업을 한다. 합창단도, '석란시향'도 결국 해체 됐다. 42명의 국립오페라합창단원 전원은 지난달 31일 일방적으로 '해고'됐고 1일부터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실제 상황이다. 드라마는 '허구'에서 그치지만 '현실'은 쓰라림이 오래 간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그런데 출근 투쟁 하루만에 <베토벤 바이러스>가 '희망'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나라당은 2일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제곡인 '비창'을 4.29 재보선 로고송 및 홍보 동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정치는 실현되지 않는 희망을 현실로 둔갑시키는 예술이라 했던가? 하지만 한나라당판 <베토벤 바이러스> '희망 로고송'을 들으며 불과 이틀 전의 '좌절'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베토벤의 '비창'을 빠른 템포로 편곡한 아이러니는 슬픔을 이기는 역동성을 표현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 안에 '(기호) 1번!, 한나라!'라는 구호를 카랑카랑하게 삽입했다. 한선교 홍보기획본부장의 표현에 의하면 '샤우팅'(한국말로는 '내지르기'다)으로 처리해 역동성을 강화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여당의 생각을 읽어내기가 쉽지않다. 한나라당은 재보선 슬로건으로 '일자리'를 내세우기로 했다. "한나라당이라면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기호 1번 한나라당"이다. 한선교 본부장은 또 "서울, 광주, 대전 등의 지하철 광고 문구도 '대한민국이 가장 앉고 싶은 자리는 일자리입니다'로 교체할 생각"이라고 했다.
홍보는 그러한데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들의 '인턴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방과후 학교 예술 강사, 예술단체 인턴 등을 늘리기로 한 바 있다. 합창단원들은 해고 사태로 피눈물을 흘리는 통에 정부는 예술인에게도 선심성 인턴을 늘려주겠다며 '희망'을 '샤우팅'한다.
한나라당의 선곡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하고 싶진 않다. 모든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로고송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 사건을 연상하지는 않을 테니까. 한선교 홍보기획위원장이 로고송을 '런칭'하며 "아주 굉장히 유명한 드라마예요. 베토벤 바이러스 드라마로 공전의 히트를 한 노래로 젊은이들에게 잘 알려진 곡입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홍보 논리'로서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미 넉달 전에 종영된 <베토벤 바이러스>가 느닷없이 희망과 절망의 양갈래로 부활하는 현실은 무척이나 부대낀다. 적어도 해체된 합창단 단원들은 선거때 울려 퍼지는 '비창'을 들을 때마다 정치가 한치도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에 울분을 삼킬 것이다. '일자리'를 빼앗긴 그들에게 '일자리를 노래하는' 희망의 '선거송'이 다름아닌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것만큼 역설적인 게 또 있을까?
강마에는 드라마에서 "꿈을 이루라는 게 아니라 꾸기라도 해보라"고 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나라당 로고송에선 "꿈은 그저 헛된 꿈일 뿐"이라는 좌절의 메시지가 더 크게 들린다. 꿈이 죽었는데 과장되이 꿈을 노래한다니 합창단의 현실이 더 잔혹해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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