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관계 연구자에게 '공공 외교(public diplomacy)'가 갈수록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공공 외교라는 용어가 부상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 배경이 흥미롭다. 핵무기를 앞세워 인명의 대량 살상이 가능한 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경쟁하던 미소 경쟁 체제가 종식되자, 뜬금없이 소프트 파워 논쟁이 등장한다. 논지인즉, 미국이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하드 파워(hard power) 경쟁에서 승리한 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데 있어 미국이 주조한 가치와 문화를 강조하는 소프트 파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진정한 동력을 군사력과 경제력을 위시한 힘의 우위가 아닌 가치와 문화 경쟁의 우월성에서 찾았다. 물리적인 폭력을 최소화하고 "총성 없는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리이다.
보수적인 미국 학자 조지프 나이에 의해 주창된 소프트 파워(soft power) 이론이,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감옥에서 지배 계급의 가치관을 확산하는 것이 미래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지배 전략의 핵심수단이 될 것이라 통찰한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혜안과 일치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공 외교에 시동 건 9.11 테러
공공 외교라는 화두가 뜨겁게 제기된 기원에는 테러리즘이 자리 잡고 있다.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한 아메리칸 소프트 파워의 승리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데 성공했다며 자화자찬하던 미국의 중심부에 반미를 주창하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있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소프트 파워 확산이라는 추상적 전략의 한계를 절감한 미국이 소프트 파워를 증진시키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으로 내놓은 대안이 공공 외교의 강조였다. 전 세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미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확산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하는 작업을 정부가 직접 주도하는 21세기형 미국 외교 프로젝트인 것이다.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는 해외 국가 공민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의 발견이 초강대국 미국이 주도하는 공공 외교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서 공공 외교의 중요성이 제고되던 시점에 중국 또한 소프트 파워와 공공 외교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이 공공 외교 논의를 공론화 한 배경이 미국식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주의에 대한 환상이 만연하던 시기 발생한 테러리스트들의 본토 공격에 기원을 두고 있는 반면, 중국은 경쟁 국가들의 중국 견제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프트 파워와 공공 외교를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미국과 다른 중국의 공공 외교
미국의 공공 외교가 물리적 지배의 한계를 인식한 현존하는 제국에 의해 등장했다면, 중국의 공공 외교는 인류 역사가 다시 민족 국가 간 힘의 대결로 치달으려는 목전에 기존 제국과 경쟁하려는 신흥 강대국에 의해 능동적으로 제기되었다.
미국이 추진하는 아시아 회귀 정책에 맞서 군사력의 현대화로 맞불을 놓는 동시에 중국 고유의 특색과 가치를 내세워 소프트 파워 전략을 수립하고 공공 외교를 추진하는 중국의 모습에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이후의 거대한 체스판을 준비하는 중국의 실용성과 용의주도함을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서 공공 외교는 강대국 외교, 주변국 외교, 개발도상국 외교, 다자 외교에 이어 5대 중점 외교 전략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또 중국 정부는 국가 간 치열해지는 공공 외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문 인력 양성과 이론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는 향후 국제 정치 무대에서 미국과 중국이 정치력,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하드 파워 경쟁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론을 주도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 대결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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