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내 주류-비주류 갈등 봉합 방안으로 부상한 '조기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구성' 안이 공론 단계에서부터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조기 선대위의 상(像)에 대해 △문 대표 측과 △당 소속 중진·수도권 지역구 의원들 △비주류 의원들 3자가 각각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문 대표는 앞서 23일 오전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우리 당의 단합과 총선 승리를 위해 혁신과 단합의 기조로 선대위를 조기 출범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에 공감한다"며 "당 내 공론을 모아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이어 새정치연합 소속 문희상(5선), 김성곤(4선) 의원 등 중진들이 이날 오후 "현 당내 상황의 타개책으로 조기 선대위 구성을 당 소속 의원들 전체에게 공식 제안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이는 총선에 관한 모든 권한을 선대위에 위임하고,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는 일상적인 당무만 보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범(汎)주류와 중립 성향 의원들이 다수인 수도권 지역구 의원들도 회동을 갖고 "중진 모임이 당 내 상황 타개를 위해 제안한 조기 선대위 구성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는 12월 중으로 선대위를 구성한 후 선거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이 선대위로 위임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중진들과 한목소리를 냈다. 수도권 모임에는 문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김현미 의원을 비롯해 김상희, 김영주, 신경민, 윤관석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에 따라 이날 오전부터 언론에서는 문 대표와 중진 그룹, 범주류 그룹이 문 대표의 2선 후퇴와 선대위로의 총선 관련 권한 이양에 공감대를 이룬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전날 우상호 의원(재선, 서울 서대문갑)이 수도권 의원들의 중의를 모아 문 대표를 만나서 조기 선대위를 제안했고, 문 대표가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우 의원에 이어 중진 의원들도 문 대표를 만나 조기 선대위 구성 제안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측 "NO?"
그러나 이같은 관측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문 대표 측 관계자는 "문 대표가 (우 의원 등에게) '대표직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 대목은 (당 외 세력과의) 통합과 관련한 대목이고, 2선 후퇴나 선대위에 전권을 위임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어떤 확답도 한 적이 없다"면서 "2선 후퇴 요구를 수용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조기 선대위는 당을 총선 체제로 빨리 끌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라고 했다. 중진들과 수도권 의원들의 제안은 사실상 문 대표의 선대위 불참을 전제한 것인데,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는 "그것은 대표를 반쪽(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문 대표 측에서 받아들이는 '조기 선대위'의 의미는, 문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 체제를 구축하되 선거에서의 확장성을 위해 여러 인사들이 참여하는 정도의 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또 "더구나 이미 문 대표가 공천 관련 권한을 행사하지 않겠다(이른바 '시스템 공천')라고 했는데, 권한을 선대위에 넘긴다는 것은 기존의 원칙과 배치되는 것"이라며 중진들과 수도권 의원들의 제안은 '김상곤 혁신안'에 어긋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성수 당 대변인은 혼선이 빚어지자 이날 저녁 급히 기자 간담회를 열어 "문 대표가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제안에 공감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오후에 나온 중진·수도권 의원들의 제안의 구체적 내용에 공감한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 대변인은 조기 선대위의 권한에 대해서도 "혁신위가 마련한 공천 혁신을 철저히 실천하는 기조 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며 "공천과 관련해서는 대표든 최고위원회든 선대위든 전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선대위에 전권 위임을 요구한 중진·수도권 의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김 대변인은 또 조기 선대위 구성의 '전제 조건'은 "더 이상의 추가 탈당을 막는 단합의 약속이 있다면 조기 선대위 구성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추가 탈당이 이뤄지지 않아야 한다는 정치적 약속이 이뤄져야 조기 선대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김한길도 "NO!"
중진들과 수도권 의원들의 '문재인 2선 후퇴' 제안은 비주류의 좌장 김한길 전 대표의 탈당을 막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김 전 대표가 탈당할 경우, 그와 가까운 이른바 '김한길계' 의원 10여 명의 동반 탈당으로 사실상 제1야당의 분당(分黨)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김 전 대표는 문 대표가 사퇴하고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문 대표는 전날 우 의원과 만나 "야권 대통합과 총선 승리를 위해 김 전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 전 대표가 역할을 맡아주셔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중진들의 제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김 전 대표는 조기 선대위 구성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제 고민의 주제는 총선에서의 야권 승리로 어떻게 정권교체까지 실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라며 "고민 속에서 제 거취 문제는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 탈당 가능성이 여전함을 시사했다. 김 전 대표 측 관계자는 "(김 전 대표의 말은) 문 대표가 살신성인하지 않는 상황에서 총선 승리와 야권 통합을 하기 힘들다는 취지로, 사실상 조기 선대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이 많은 '구당모임(구 민집모)' 간사 노웅래 의원도 문 대표의 발언과 중진들의 제안에 대해 모두 "안 자체에 구체적 내용이 아무 것도 없다"며 "내용이 안 담긴 제안은 오해와 억측의 불씨를 담고 있는 것으로, 논란의 소지가 많다"고 평했다.
호남 중진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 역시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늦었다"며 "배수진을 치면 감동을 주지 않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박 전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이전에 박 전 원내대표가 주장했던 '통합 조기 선대위'는 문 대표의 결단을 전제로 한 새 지도체제로서의 통합 선대위"라며 "이번에는 문 대표가 사퇴하지 않는 선대위이기 때문에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즉 '현 지도부 체제로 총선까지 가자'는 문 대표 측과, '문 대표가 사퇴해야 힌다'는 비주류(김한길·박지원 등) 사이에서 중진들과 수도권 의원들이 양 측의 입장을 절충한 일종의 중재안을 낸 셈인데, 이 역시 문 대표 측과 비주류 측에 의해 모두 거부당한 모양새다. 새정치연합의 갈등은 더 길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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