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우 도서평론가가 '2015 올해의 책'으로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와 <댓글 부대>,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에세이로 함께 보내 왔습니다.
정치 상황의 퇴행과 독서 인구의 감소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내가 요즘 들어 생각하는 주제다. 경험으로 보건대, 책읽는 이가 많았을 때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듯하다. 치고받으며 고민하고 모색하고 실천했더랬다. 그런데 정치가 퇴행하면서 책을 안 읽는지, 책을 안 읽어 정치가 망가진지는 모르겠으나,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른바 각자도생의 시절을 살아가는데 교양과 지식은 필요없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시절에 책을 쓰고 펴내고 팔고 알리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부심보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만의 올해의 책은 한해의 첫머리와 마지막에 나왔다. 기실 출간 시기가 너무 이르거나 많이 늦으면 올해의 책이 되기 어렵다. 워낙 좋은 책이 많이 나오는지라 잊히기에 십상이고, 아직 평가 대상이 아니라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워낙 강한 인상을 받은 책이라 올초에 나온 책인데도 그 감동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고, 이제 막 나온지라 성급할 수 있으나, 남들이 뭐라 하든 반드시 논의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정병준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돌베개 펴냄)가 나온 것은 3월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물을 다룬 책인지라 과연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하며 책장을 펼쳤던 기억이 새롭다. 이 책은 정설에 대한 도전이다. 북한 체제가 공식화한, 박헌영은 미제의 스파이이며, 그를 스파이로 이끈 여성이 현앨리스라는 사실을 뒤집는다. 치밀한 고증과 역사적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설에 도전했다. 특히, 북한 체제를 버리고 망명한 이들도 이 정설을 인정하는 마당에 이를 뒤집는 논리를 세웠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다. 흔히 교수들이 쓰면 글도 어렵고 난삽하다고 말하기 일쑤이지만, 이 책은 추리 소설적 기능도 발견될 정도로 가독성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 점을 늘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우리는 역사를 지극히 단순히 판단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어떻든가? 이른바 중층 결정의 현상도 나타나는데다 왜곡과 조작이 버젓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곱씹어 보고 대조해보고 비판해보아야 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분단과 전쟁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 그 비극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 면에서 장강명은 대단히 현명하다. 자기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어서다. <한국이 싫어서>처럼 <댓글 부대>도 소재 자체가 흥미롭다. 어떤 때는 소설이기보다 르포같다고 여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댓글 부대>를 읽으며 <내부자들 2>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소설의 깊이가 그만큼 얕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요즘 우리 소설이 그야말로 작은 이야기에 매달리는 경향과 비교해보았을 때, 대단히 민첩하고 현명하게 이야기의 영역을 확장했다고 평가할만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댓글 사건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깨버렸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이 권력재창출에 얼마나 혈안이 되었는지 잘 드러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았어야 했다. 도대체 왜? 라고. 장강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기득권 세력의 깊은 내면 세계를 묘파해내지는 못했지만, 그 사건을 통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소설로 형상화했다. 그 노고와 도전이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만의 올해의 책이니, 농삼아 꼽을 만한 것은, 내가 쓴 책(<책 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한겨레출판 펴냄)이다.
생각해보라, 세상에서 제일 좋은 책이 내가 쓴 책 아니겠는가. 쓰면서, 펴내면서 이런저런 일화가 많았다. 어느 책에 사연이 없겠느냐마는, 유독 이번 책이 그러했다. 내 게으름이나 필력 부재도 한몫 했지만, 출판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오랜 짐을 털어내 속이 다 시원하다. 이런 유의 책은 아마도 다시는 쓰지 않을 터다. 모든 저자가 그러하듯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 웃자고 추천했으니, 죽자고 욕하지는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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