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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맘 편히 장사하게 해주세요!

[작은것이 아름답다] 젠트리피케이션·①맘상모

지난 11월 18일, 전날 강제집행을 겪은 홍대 삼통치킨에 10여명 남집이 모였다. "보상금을 준다고 해서 정당한 퇴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액수와 상관없이, 그전까지의 삶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입구에 자리 잡은 삼통치킨에서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 회원들이 교육 모임을 갖고 함께 강의를 듣는다. 강의 뒤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 한 회원분이 소감을 덧붙인다. "맘상모는 든든한 울타리 같은 느낌이야. 내가 먼저 나서기로 마음먹으면, 든든히 뒤를 받쳐주니까."


맘 상한 임차상인들, 모이다

'맘상모'는 2013년 5월에 만들어졌다. 그즈음 억울하게 쫓겨나게 된 방화동 '카페 그', 신사동 가로수길 곱창집 '우장창창' 같은 피해 상인들 대여섯 명이 자신들 처지를 알리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 것이 시작이었다. 2013년 5월 참여연대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피해사례 보고대회'를 열며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단체가 알려지면서, 혼자 고민하던 상인들이 맘상모 활동이나 아는 사람의 소개로 모이기 시작했다. 현재 회원은 300명 정도. 대부분 이미 쫓겨났거나, 쫓겨날 위기에 있는 상인들이다. 회원들은 강제 퇴거 위기에 놓인 가게를 돌보는 것에 힘을 보탠다.

▲ 2000년 뒤로 상권 중심의 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상가세입자 강제 퇴거 문제가 늘어났다. 맘상모는 쫓겨나는 임차상인들의 처지를 전하고 그들의 권리를 사회에 외치는 첫 단체가 됐다. ⓒ맘상모

지난 11월 6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강제집행을 당한 홍대 '삼통치킨'에서는 맘상모 회원들이 저마다 시간을 정해 가게를 지키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신촌 로터리에서 수제비집을 운영하는 한 회원은 같은 건물에서 장사하는 세입자 여섯 가구와 함께 싸우며 삼통치킨도 돕고 있었다.

"와서 보면, 다 내 일이거든요. 모두가 똑같은 상황인 거예요. 여기 와서 상담받고 하는 게 많은 도움이 돼요. 사실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됐을까 하는 것들을 혼자 찾기 쉽지 않은데, 여기 오면 문제점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다른 상인 분들과 힘을 합칠 수도 있으니까요."


맘상모 초기부터 활동하며 현재 조직국장을 맡은 이선민 씨(40세) 역시 피해 상인이었다. 지대가 높지 않은 주택가 골목에 작은 카페를 하나 차렸는데, 8개월 만에 재건축 통보를 받고 나가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두 달 동안 24시간을 가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버틴 뒤에야, 임대인과 협의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임차 상인이 가게 한 칸을 얻으려고 정당하게 대가를 치르는 재산들이 있어요. 임대인 재산권만큼 임차상인 권리도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 재산만을 지나치게 보호해요. 균형이 안 맞는 거예요."

올해 6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정책국장 조윤 씨(21세)는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임금 체불을 당한 경험으로 맘상모와 함께 하게 됐다. 그는 처음에 '열심히 일했는데, 왜 돈을 못 받는 걸까?'라는 생각에 무척 화가 났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이 '본사에 내야 할 돈도 많고 임대료가 비싸 너에게 줄 돈이 제일 적다'고 말한 것을 듣고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해마다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올리자고 하면 자영업자들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잖아요. 하지만 자영업자들을 정말 어렵게 하는 건 높은 월세와 지대, 임대인과 부동산이 만드는 투기 문화였던 거예요. 그런데 '을들끼리만' 부딪치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니까, 임차상인 문제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법 때문에 억울해 법을 바꿨지만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법)이 제정된 것은 2002년. 임대인들의 '소유권'을 중심으로 구성된 법이다 보니 상인들은 '법대로 하자'는 임대인들에게 번번이 지기만 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 답답한 마음에 법을 바꾸자 마음먹었다.

맘상모는 2013년 8월과 올해 5월 두 차례에 걸쳐 상가법을 개정했다. 법 개정 경험이 많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와 협력해 방향을 잡았다. 2013년 개정엔 '재건축 사전 고지 의무'를 뒀다. 특별한 사유 없이 재건축과 철거를 이유로 임대인이 계약 갱신 거절을 할 수 있었는데, 이 재건축 조항이 악용될 때가 많아 재건축 시기와 기간을 명시하지 않으면, 임대인에게 책임을 물어 쫓아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또 환산보증금(보증금에 월세를 백배 곱한 값을 더한 것) 규모와 상관없이 5년 계약 갱신을 요청할 수 있게 했다. 그전까지는 환산보증금 규모에 따라 갱신 요청을 제한해 월세를 많이 내는 상인이 보호받지 못하고 부자 임대인들이 특혜를 받았다. 올해 개정에서는 '권리금'을 법으로 명시했다. 권리금은 가게의 영업 가치를 책정해 상인들 사이에서 주고받던 돈으로, 보증금과 함께 상인들의 중요 기반이 된다. 내쫓기는 상인들은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그 가치를 임대인들이 빼앗는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상인들끼리 관례로 주고받던 권리금을 임차상인의 분명한 '권리'로 인정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법 개정에도 상인들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빠져나갈 수 있는 예외조항이 많고, 5년 기간만 계약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선민 씨는 너무 짧은 계약기간을 문제 삼는다.

"5년으로는 부족하죠. 그 정도 시간이 지나야 자리를 잡고 상권이 형성되는데, 안정되게 운영을 할 만할 때에 나가야 하는 거예요. 최소 10년은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을 줄여 이름 붙인 '맘상모'는 2013년 5월에 만들어졌다. 억울하게 쫓겨날 위기에 처한 상인들이 가게를 지키기 위해 함께 활동하던 작은 모임이 시작이었다. ⓒ맘상모

프랑스에서는 9년이 최소 임대차 기간이다. 일본은 임대인이 갱신 거절을 하는 경우에도 사유가 정당한지 여부를 심사하는데, 퇴거료 지불 여부와 그 액수가 중요 심사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불을 지핀 것이 상가법의 허술함이거든요. 상가법만 제대로 만들어도 상황이 많이 나아질 수 있어요."

그래서 '맘상모만의 상가법'을 계획하고 있다. 기존 법을 조금씩 손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며 임차상인 입장에서 법을 새로 써 보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임차상인 문제에 대한 사회 담론을 끌어내 볼 생각이다.

'장사할 권리'를 당당하게 외치는 것

그동안 강제 퇴거와 관련한 문제는 도시 재개발로 쫓겨나는 주거세입자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하지만 2000년 뒤로 상권이 발달하는 곳을 중심에 두고 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상가세입자 강제 퇴거 문제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맘상모는 쫓겨나는 임차상인들의 처지를 전하고 그들의 권리를 사회에 외치는 최초의 단체가 됐다.

홍대 전가게 '행복전'은 맘상모에게 특별한 곳이다. '같은 자리에서 계속 장사할 수 있게 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사실 임대인과 권리금을 보장받는 '상생협약'을 했다 해도,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많다. 행복전을 운영하는 신영재 씨(60세) 역시 임대인으로부터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맘상모 회원들과 힘을 합쳐 임대인에게 임차상인 권리를 알려, 임대료를 약간 조정해 계약서를 다시 쓰고 영업을 이어갔다.

"여기는 제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어요. 돈을 얼마 받고 쉽게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임대인도 저희가 임차상인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까 잘 몰랐다고,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하더라고요. 우리가 꾸준히 목소리를 낸 덕분에 사회 여론도 전과 달라지고, 임대인도 계속 갈등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두 차례 강제집행과 한 차례 강제철거를 겪은 삼통치킨은 지난 11월 20일 임대인과 협의하며 갈등을 마무리 지었다. 11월 23일까지 영업하고 가게를 비워주기로 했다. 협상 자리에서 임대인과 이야기하며 서로 유감과 사과를 표했다.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나는 대신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가만히 있지 않고, 임대인이 먼저 협상 제의를 하도록 만들어 얼굴 마주하고 합의할 수 있었다. 삼통치킨 이순애, 안병진 부부는 "잘 싸웠고, 이 정도 마무리라면 나는 계속 살아갈 수 있다.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며 웃었다.

ⓒ맘상모

우리나라 자영업자 규모는 약 600만 명. 자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임차상인 강제 퇴거 문제는 어느 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맘상모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골목사장 지킴이' 양성과정. 상인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해, 상가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사장님들을 지역 속에서 키워낼 계획이다. 지역상인 스스로가 골목사장 지킴이가 되는 것이다. 그 준비 과정으로 10월과 11월에 임차상인 권리 찾기의 역사,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대안, 해외 임대차 사례 관련 강의를 맘상모 회원 공부 모임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 8월부터 시작한 '맘상모 상품권'은 시민들에게 상가임대차 피해 상가를 알리고 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됐다. 가맹점으로 등록하면 '단골집 스티커'를 주고, 맘상모 카페에서 가게를 홍보해준다. 상품권 수익의 일정 부분은 맘상모 후원금으로 쓰이는데, 현재 30여 곳 정도가 등록되어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진행한 '상가임대정보 및 권리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가 평균 임대차 기간은 고작 1.7년이었다. 마음 맞는 가게에 정을 주고 공간을 아끼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우리가 맘 편히 장사할 권리가 있듯이, 여러분 또한 단골집을 찾아갈 권리가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쫓겨나는 가게들과 함께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같은 곳에 이런 내용들을 작게라도 올려주고 이야기해 주는 게 많은 도움이 돼요."

조윤 씨는 시민들의 '작은 연대'가 상인분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전한다. 강제집행 현장에서 삼통치킨 사장님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건 한 시민분이 사다 준 몇 개의 음료수였다. 행복전 신영재 씨는 좋은 가게는 손님과 주인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딜 가나 풍경이 똑같고, 멋스러운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요. 사람들이 가게를 찾아갈 때, 어디에 가면 어떤 가게가 있지 하는 식으로 오곤 하잖아요. 단골들은 공간에 쌓인 추억도 있고, 주인은 그런 손님들을 또 반갑게 맞이하면서 기억하고. 그런 모습들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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