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다. 버웰 벨 주한 미군 사령관은 최근 미국 하원에서 용산미군기지 이전비용이 10조원에 달할 것이며 이를 한국이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발언이다. 협정문이 그렇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지난 2005년 국정감사에서 "올 5월 27일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 미국 방문 때 잭 크라우치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을 만나 용산기지 이전비용에 100억 달러(약 10조원)가 소요될 것"이며 "그 비용을 한국측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2004년 12월 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필자와 권영길 의원의 중재에 따라 청문회 개최를 전제 조건으로 용산기지이전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한미동맹이라는 대의 때문이었다. 당시 위원장이었던 현 임채정 국회의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듯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가 씻을 수 없는 과오로 남을 수 있다"고까지 발언했다. 모두 속기록에 남아 있는 말이다.
2006년 여름 필자는 통일외교통상 위원이 되어 약속된 청문회 개최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참여정부 외교안보 실세였던 이종석 장관과 한나라당 통외통위 위원 등은 오로지 한미동맹을 이유로 청문회 개최에 결사반대했다. 그보다 앞서 필자는 2006년 1월 '용산 기지이전협정 부작용,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미국 측이 원하는 대로 줄 것 다 주고도, 뒤돌아서서는 다른 소리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한미동맹을 저해하는 나쁜 버릇"이라고 까지 지적하며 용산기지 이용비용은 한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프레시안, 2006.1.12)
이랬던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일부 언론의 호들갑은 참으로 경망스러워 보인다.
2004년의 경고가 맞아떨어져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용산미군기지 이전 비용은 한국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한미협정이 그렇게 정했고, 국회까지 통과됐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자기 돈 드는 일이 아니라서 미 의회의 비준조차 받을 필요가 없었다.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자면, 용산기지 이전협정 타결당시 미국측 수석대표 였던 롤리스 미 국방부 차관보는 "용산기지 이전에는 서로 다른 동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자주, 미국은 전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끝끝내 우리가 먼저 요청했기 때문에 우리가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물론 그 뿌리를 거스르자면 노태우 대통령과 현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까지 책임이 소급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용산이전협정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미 국방부 기준'에 따라 '주한미군의 기능과 임무'를 '그대로 유지'해 주어야 하고 "대한민국은 토지 시설 및 이사 용역을 제공하며 이전과 직접 관련된 그 밖의 비용을 부담한다"고 규정한다. 이런 국가 대 국가간의 계약서를 두고 우리 돈이 얼마가 드네 마네 하는 논쟁은 전혀 무의미하다. 미국이 달라면 달라는 대로 주어야 하는 것이 협정의 줄기이다.
주한미군의 기능과 임무 유지에 필요한 한도라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억울하다면 협정을 잘 체결했어야 했다. 하지만 당국은 협정 체결 당시 우리에게 유리한 합리적 비판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일각에서는 비판하는 사람들을 강경반미 자주파로 매도하기도 했다.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이제 와서는 조선일보조차도 "하지만 그 부담의 방식과 규모가 합리적이어야 하고 원칙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썼지만(3월 18일자 사설), 이는 때 늦은 일이다.
이제는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후보가 된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1월 11일 인수위 보고에서 "한국 정부가 용산기지 이전 문제를 먼저 제기하는 바람에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됐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끝물에서야 마지못해 외교안보정책의 실패를 일부 자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용기있는 행동이 아니다. 국방부는 용산기지이전협정 협상 당사자였다.
돌이키는 것조차 억울하지만, 용산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단순 찬반논의를 떠나 세금을 아낄 수 있는 합리적 비판의 영역은 엄연히 존재했었다.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는 중장기적인 큰 틀에서 '신속기동군'으로의 변환에 따른 미국 측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명백한 만큼 협상과정에서 이를 레버리지(leverage)로 십분 활용해야 했다"(최재천, '비장한 각오가 협상전략이 될 수 있나' 프레시안, 2004.11.11)는 논리가 그것이었다. 필자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과 용산기지 이전협정의 상관관계를 끊임없이 제기하며 국가전략의 체계적 수립과 대응을 주문했었다. 그런데 오로지 친미냐, 반미냐 하는 선택지에서 합리적 비판의 영역은 애당초 존재가 불가능했다.
미군 반환기지의 환경오염 치유 비용도 처음에는 미국이 부담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사실은 온전히 한국 책임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해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용산미군기지 이전비용과 관련된 논쟁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는 우리가 원했기 때문에 우리가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했고, 맨 처음에는 3조원이라고 했다가 다시 5조원으로 늘어났고, 한미 사이에서는 비공개리에 10조원을 확인했다가 이제는 미측 관계자에 의해 공식적으로 10조원에 이를 수 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동맹의 의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미 관계에 대한 어떠한 합리적 비판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저 반미일 뿐이다. 친미 아니면 반미라는 국가보안법식 이분법적 사고가 한미동맹관계를 규정한다.
간판은 '자주', 속내용은 '미국의 국익'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선임보좌관을 역임하면서 참여정부 전반기 3년간 총괄 지휘했던 마이클 그린 선임보좌관의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은 참으로 흥미롭다.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등 정책적으로 한미동맹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그 기여도는 전두환, 노태우 정부 못지 않다. 어떤 의미에선 그들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한미동맹, 좀더 좁게는 미국의 국익에 노무현 대통령이 어느 정도 복무했는가를 시사해준다. 마지막 발언이 더 시사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내를 의식한 반미 발언으로 미국을 당혹시켰다"
보수 언론의 대표격인 조선일보 강천석 주필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노무현 정권은 반미(反美)와는 거리가 멀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파병, 주한 미군의 주둔 비용 부담 확대, 주한미군 감축(減縮)동의, 한ㆍ미 FTA체결 등 미국이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내주었다. 문제라면 오히려 내준 만큼 받아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강천석, '당신 친미파구먼…나가있어', 조선일보 칼럼, 2008.1.3)" 허구적 '자주' 속에 국익의 훼손만이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참여정부는 내치를 위해 '자주'를 표방했지만, 막상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대부분을 양보해왔다. 그리고 협상 실패를 감추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을 선전"해왔던 것이다. 필자의 언론 기고문 중 일부이다.
참여정부 외교안보 정책에 철저히 비판적이었던 필자나 보수언론의 대표 논객인 강천석 주필이나, 마이클 그린 전 NSC 보좌관의 발언이나 다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서 있는 지점만 다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필자의 비판은 분명하다. "참여정부 출범 전후로 우리에게 몰아닥쳤던 북핵문제를 비롯, 탈냉전 이후 한반도 안보환경의 틀을 새롭게 짜는, 한미동맹 재조정 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외교안보 시스템은 너무나도 부실하고 무기력했다. '참여정부'란 명칭에 걸맞지 않게 현 정부는 국민들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며 '밀실외교'라는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 했다"(최재천, 2006, "한국외교의 새로운 도전과 희망", 향연)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어떠할까. 솔직히 필자는 자신이 없다.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에 대한 중심 시각은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는 냉전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한미동맹의 강화가 남북문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리라는 순진한 기대가 그렇다.
북핵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외교문제의 한 방편으로만 대하는 시각도 더욱 그렇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백번 이해하지만 균형보다는 한미동맹 관계에 대한 편중을 통해 우리 외교노선을 단순하게 규정해 버리는 것 또한 못내 안타까운 일이다. 참여정부의 실패가 이명박 정부에게 교훈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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