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직권 상정 기일은) 법적으로 입법 비상 사태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시점인 연말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말까지 선거구를 획정하지 않으면 내년부터 예비 후보 등록이 무효가 돼, 후보자들이 선거 운동을 할 수 없어지는 사태를 막겠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직권 상정할 방안으로 "세 가지 안을 상정할 수 있다. 지금 여야가 각자 주장하는 것과 이병석 안"이라면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40% 연동형 비례대표제까지 얘기했는데 문재인 대표에게 40%까지 검토해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7석 축소 안을 내놨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병석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양보한 상태다. 이병석 위원장은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7석 축소 안에 더해 50%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중재안으로 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병석 안'에서 10%를 뺀 40%까지를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 여야 지도부와 선거구 획정 관련 회동을 한 자리에서도 "마지노선인 12월 31일까지도 만약에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으면, 비상 사태에 준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그런 일이 예견되기 때문에 가능한 올해 중으로 여야가 잘 합의를 봐달라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여야 지도부가 연말까지 선거구 획정에 합의하지 못하면, 정 의장이 '국가 비상 사태'를 이유로 직권 상정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당장 오는 28일 예고된 임시 국회가 고비다.
"선거구 직권 상정, 의회 민주주의 짓밟아" vs. "(박근혜 관심 법도) 직권 상정해야"
직권 상정과 관련해, 개정 국회법(국회 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이 안건을 직권 상정할 수 있는 경우를 천재지변, 전시에 준하는 '국가 비상 사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경우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정 의장은 선거구가 사라지는 상황이 '국가 비상 사태'에 해당하므로 직권 상정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정 의장은 이른바 테러 방지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 관계법 등 '박근혜 대통령 관심 법안'은 직권 상정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여야의 반응은 엇갈렸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선거구 획정 회동에서 "지금까지 정치의 룰을 협상과 합의를 통해 이뤄냈지 예외를 인정한 적이 없다"면서 "이번에 예외(직권 상정)가 이뤄지면 그나마 국회가 이뤘던 의회 민주주의의 마지막 실낱같은 역사도 우리가 짓밟게 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새누리당 안이 다수결로 통과되리라고 우려한 것이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직권 상정을 내심 반겼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새정치연합이 양보했는데도 새누리당이 양보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선거 규칙을 정하는 것은 양보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성의 문제"라고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 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관심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상황을 "입법 비상 사태, 국가 비상 사태"라고 규정하며 정 의장에게 선거구 획정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관심 법안' 직권 상정까지 추가로 요구했다.
전날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일부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은 정 의장에 대한 "해임 결의안을 내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했다. '박근혜 대통령 관심 법안'에 대한 직권 상정 거부는 "직무 유기"라는 이유에서다.
친박계 의원의 '해임 결의안' 발언에 대해 정 의장은 이날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말을 함부로 배설하듯이 하면 안 된다"면서 "직무 유기를 안 한 사람에게 직무 유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의 배설일 뿐이고, 제가 참기 어려운 것"이라고 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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