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수공업, 농업, 상업, 공업, 공무원, 간호 또는 사회사업, 기타 서비스업 등에 해당하는 직업 교육을 받아야 한다. 현재 약 460개에 달하는 공인된 직종이 있으며, 이러한 교육을 받는 사람을 '수습생 또는 도제(徒弟)(Lehrling 또는 Auszubildende. 이를 줄여서 아쭈비/Azubi 라고도 함)'라고 한다.
수습생도 근로 계약서 작성
이들은 근무 시간, 급여, 수습 기간 등 근로 조건이 명시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며, 교육 기간은 보통 2~3년 정도이다. 이 기간에는 아직 100% 급여를 받지는 못하지만 각 직업별 임금 협약에 따라 약 400~1200유로(58만~172만 원)의 일정한 급여를 받게 된다. 또한 만 18세 미만의 경우에는 아동 노동법에 따라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직업 교육은 대개 학교와 현장에서 동시에 진행되는데, 현장 교육은 해당 분야의 마이스터(Meister·장인)가 실시한다. 이러한 직업교육을 받고 공인된 시험을 통과하면 해당 분야의 정식 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이후 그 분야에서 일정 기간의 경력을 쌓게 되면 장인이 되기 위한 자격시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 자격시험은 전문 실습, 전문 이론, 경영·상법·법률, 직업 교육 방법(도제 교육을 위한)의 4가지 분야로 구성된다. 보통 3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 시험들을 통과하면 누구나 마이스터가 될 수 있고, 또 도제를 받을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마이스터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수습생이다. 그런데 인기 있는 도제 자리는 보통 주어진 것보다 희망자들이 더 많기 때문에 이 자리를 놓고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한번은 텔레비전에서 미용사의 수습생을 뽑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한 미용실의 마이스터 미용사가 3명의 지원자 가운데 1명을 자신의 도제로 선발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1주일가량 그 마이스터 미용실에서 현장교육과 실습이 이루어졌다. 먼저 3명의 후보를 소개하고, 이들이 미용사가 되려는 이유와 이를 위해 그동안 어떻게 준비했는지 등을 각각의 현장인터뷰를 통해 보여주었다. 마이스터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고객을 대하는 태도, 미용 기술, 직업에 대한 적합성, 개인적 장단점 등을 지적해주고 최종적으로 1명을 선발하였다.
수습생으로 뽑힌 출연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처음에는 겨우 미용사의 도제가 됐을 뿐인데 저렇게 좋을까 조금 의아했다. 그러나 독일 사회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충분히 공감이 갔다. 그 자리를 얻게 된 사람은 이제 이 사회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원하는 안정된 직장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렇게 기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나오면 계속 유심히 보았다. 그들의 평가 방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1~2시간의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1주일의 모습을 전부 다 보여줄 수는 없지만 중간 중간에 마이스터가 각각의 지원자에 대한 짧은 평가를 통해 개선할 점들을 지적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그는 최종 합격자를 지명하고, 그 선정 이유를 명확하게 밝혔다. 덧붙여 탈락자들에 대해서도 왜 합격이 안 되었는지,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여 시청자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대학이나 관청 등 어디에서나 비슷한 것 같았다.
직업의 귀천 없는 독일
독일에서는 일부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만 잘살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하나의 직업을 갖게 되는 사람은 그 사회에서 남부럽지 않게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미용사를 하더라도, 슈퍼에서 일을 하더라도, 청소를 하더라도, 열쇠공, 도배공, 미장공, 페인트공, 운전기사, 경비원, 서비스 종사자 등등 어떠한 직업을 갖더라도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직업의 수습생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기야, 직업이 없는 사람도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또한 직업에 따른 보수의 격차가 우리처럼 심하지 않다. <한국일보>(2011년 10월 12일)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과 한국의 의사 월급은 서로 같았다. 그러나 흔히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식당 웨이터의 월급을 비교했을 때는 그 차이가 심했다. 독일의 웨이터는 의사의 32%인 반면, 한국은 19%에 불과했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반드시 좋은 직업에서 성공해야만 잘 사는 게 아니다. 그래서 모두가 대학에 가기 위해 우리처럼 목을 매달지 않는다. 꼭 대학을 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데, 무조건 대학에 가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 밖에도 각 분야에서 소수의 승리자가 많은 것을 독식해 버려서 나머지 사람들은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처럼 같은 일을 하고도 수입이 서로 다른 불합리한 경우도 드물다. 대다수 사람이 저마다 자기가 일한 몫을 제대로 받을 수 있고, 또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가장 흔한 직업의 하나인 베커(Bäcker·빵 굽는 사람)의 경우,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보통 오전이면 일이 끝난다. 그 후 오후에는 축구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는 조금 일찍 자면 된다. 여름에는 긴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누구나 안정된 일자리를 갖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다음 편에서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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