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에 은거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동개악법이 중단되면 나가겠다"며 자진출두를 거부했다. 한 위원장은 2차 민중총궐기 이후 자신의 거취를 밝히겠다고 말한 바 있다. 조계종 신도회는 총궐기 다음 날인 6일까지 한 위원장이 나가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한 위원장은 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민주노총 간부들이 대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너무나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 나가지 못하는 중생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 달라"며 "제가 노동자의 밥줄을 다 책임지진 못 하더라도 노동개악을 막아야 한다는 2000만 노동자의 소명을 차마 저버릴 수 없다"고 자진퇴거를 거부했다.
그는 "벼랑 끝에 몰려있는 2000만 노동자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생명의 끈에 매달려 있다"며 "그 첫 마디를 민주노총 위원장인 제가 잡고 있다. 제가 손을 놓는 것은 싸우는 장수가 백기를 드는 것이기에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개악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피하지 않겠다고 이미 말씀 드렸다"며 "그러나 저를 구속해 노동개악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려 광분하고 있는 지금은 아니다"라고 추후 자진출두할 것임을 밝혔다.
그는 "노동개악 처리를 둘러싼 국회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이곳 조계사에 신변을 더 의탁할 수밖에 없음을 깊은 아량으로 품어주시길 바랄뿐"이라며 "그리 긴 시간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 화쟁위와 논의했으나 합의점 찾지 못해
이날 한 위원장의 입장 발표는 그간 중재를 맡아온 조계종 화쟁위원회와는 사전 교감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조계종 화쟁위 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한 위원장은 6일 밤과 7일 새벽 두 차례 만나 거취 문제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화쟁위와 한 위원장은 5일 밤에도 두 차례 만나 거취 문제를 놓고 대화한 바 있다.
도법 스님은 2차 민중총궐기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됐고, 노동법 개정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진 만큼 스스로 걸어 나갈 명분이 마련됐다고 설득했으나 한 위원장은 이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는 화쟁위나 조계종 신도회와 논의한 바 없다"면서 "앞으로 그들과 지속해서 대화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계사 나가지 않으면서 사태 장기화 국면
한 위원장이 조계사를 나가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사태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오는 16일 예고된 민주노총 총파업과 19일 3차 민중총궐기는 한 위원장이 지휘할 전망이다.
조계종 신도회는 이날 회장단 회의를 열고 앞으로의 대응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번과 같이 물리력을 동원해 한 위원장을 조계사에서 내보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달 30일 조계사 신도회 부회장 등 신도 10여 명이 한 위원장이 머무는 숙소에 난입해 강제로 그를 끌어내려 했고 이후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한 위원장에게 공식 사과한 바 있다.
박준 조계사 신도회 부회장은 이날 "최악에는 지난번과 같은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도 "다음 조치로 경찰이 조계사 내부에 진입해 한 위원장을 연행할 것을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도 조계사 경내를 진입해 한 위원장을 체포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조계사 진입이) 검토할 수 있는 대안에는 들어가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 언급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며 "지난달 14일부터 이렇게 많은 시간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봤는데 하루아침에 돌발적이고 급박하게 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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