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새벽 국회를 통과한 '2016년도 예산안'에 노동시장 구조개편 후속조치 등에 사용할 수 있는 1조6000억 원 규모의 정부 예비비가 여야 간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로 기습 편성돼 야당과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예산을 '복면 예산'이라고 비판하며 본회의 표결 전 기습적으로 예산을 밀어 넣은 정부를 향해 "입법권 침해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4일 국회와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 오르기 직전 1조6000억 원 규모로 편성된 예비비를 노동시장 구조개편 후속조치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문구를 '예산총칙 수정안'에 기습 삽입했다.
이 예비비는 노동시장 구조개편 외에도 재해대책비·인건비·환율 변동으로 인한 원화부족액 보전 경비·재난 안전통신망 구축지원 목적에도 사용될 수 있으나 각 사업 간 예산 '칸막이'가 없어, 전액을 노동 개편 후속조치에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5개 노동시장 개편 법안(근로기준법·산재법·고용보험법·기간제법·파견법)을 두고 여야 간 공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사전 대비'를 명분으로 슬그머니 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기재부 "여야와 협의 안 한 것 맞다…집행 시 협의할 것"
논란이 계속되자 박춘섭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입법 조치가 완료되지 않으면 집행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나중에 예비비를 집행하는 상황이 되면 여야와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박 실장은 또 예비비 편성 시 정부가 "먼저 (여야에) 얘기하고 상의하는 게 맞지만 여야 간 협상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국회가 예비비 사용처 수정안을) 못 본 거로 보인다"면서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박 실장의 이날 기자 간담회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 측이 강력히 항의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野 "복면 예산으로 국회 속이고 국민 우롱…정부 사과해야"
기획재정부의 이 같은 해명에도 정부가 야당 반발을 피해가기 위해 본회의 직전 기습 편성을 해놓고 뒤늦게 해명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정치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이날 한 서면브리핑에서 "정부가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면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복면 금지법'을 추진하겠다더니 '복면 예산'으로 국회를 속이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 예결특위 관계자는 "국회 선진화법을 악용하는 가장 나쁜 선례가 발생했다"면서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야당 일각과 노동계에선 '기습 편성을 한 정부도 문제지만 막판 검토를 꼼꼼히 하지 못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책임도 있다'는 목소리가 함께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노동 개편 법안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측에서는 '아무리 협상이 다급해도 안민석 예결위 간사가 몰랐던 건 문제가 아니냐'는 성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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