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 인해 같은 시각에 예정돼 있던 노동부 업무보고는 오후로 밀려났다. 앞선 업무보고는 오전 7시30분에 각 부처 청사에서 열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경쟁력강화위 첫 회의를 위해 노동부 업무보고가 오후 5시30분에 열리게 됐다"면서 "이는 이 대통령이 위원회의 활동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살리기'를 사실상 국정운영의 유일한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부의 오늘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례다.
외교부-국방부-노동부…어디서든 '경제'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각 부처 업무보고의 특징은 역시 '경제 제일주의'다. 새 정부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운용할 주체인 기획재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교통상부, 국방부, 노동부 업무보고에서까지 이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지방노동청사에서 열린 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7% 성장하면 비정규직은 지금보다 절반 정도 줄 것"이라면서 "그러나 경제가 나빠지면 제도를 아무리 보완해도 비정규직을 줄인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기업은 곧 친노동",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인 나는 태생적으로 '노동자 프랜들리'"라는 달래기용 발언도 없지는 않았지만 노골적으로 반복된 이같은 '선(先)성장-후(後)분배론' 속에선 그야말로 '양념'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 목적을 갖고 파업하는 일을 국민들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기간 내내 '법질서 회복', '노사관계 회복'을 주문해 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념적, 정치적 노동운동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무엇인 진정 노동자의 권익을 찾고 계승하는 일인가"라면서 "일자리를 함께 만들 책임도 같은 노동자에게 있다"고도 했다. '열매'를 바란다면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협조하라는 우회적 '경고 메시지'인 셈.
앞서 국방부 업무보고에서도 이 대통령은 "앞으로 21세기에 걸맞는 국방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고, 한국이 고도경제성장을 해야 될 당위성도 거기에 있다"면서 "군 현대화를 위한 계획도 연평균 7% 경제성장을 전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선 남북 간 최대현안인 '북핵'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이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위한 자원외교의 중요성'을 50여 분 내내 역설했다. '경제성장'라는 단 하나의 척도가 모든 정부부처를 압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가가치의 확대가 국정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
전문가들도 '경제살리기'에 정부의 모든 부처가 도구화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국정운영 스타일이 자칫하면 더 큰 부작용을 부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림대 최태욱 교수는 "외교·안보, 국방, 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친 각종 문제들에 대해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대통령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대통령이 마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처럼 '이윤의 추구'를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척도로 제시하는 것은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도 "경제성장과 그 열매의 배분은 국정운영의 기본일뿐"이라며 "경제적 부가가치의 확대가 국정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공무원 사회의 '과잉충성'이 더욱 걱정"이라면서 "대통령이야 마이크를 잡은 자리에서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강변할 수는 있겠지만, 공무원들의 역할이 경제적 성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업무보고를 앞두고 있는 한 정부부처의 관계자 역시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우리 부는 경제와 직접 상관이 없는데, 경제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언급이 업무보고 내용에 없으면 혹시 질타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분배와 복지가 존재 근거인 사회문화 부처,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주요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외교안보부처마저 경제 살리기의 도구로 전락할 경우 정부 기능의 심각한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체댓글 0